뜨거운 햇볕 때문에 벌겋게 익은 목덜미며 팔뚝처럼 줄기가 붉은 꽃, 가난했던 집집 마당이나 대문 옆에 빨갛고 노랗게 피어 사는 일이 누추하지 않고 반짝이게 했던 꽃, 자세히 보면 여느 잎사귀도 닮지 않고 가시도 아니면서 끝이 몽톡하게 닳아서 고생한 부모 생각나는 꽃, 골목 귀퉁이 보도블록 틈에서 목덜미 붉히고 있어 발길이 쉬 떨어지지 않는 꽃.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채송화 한 포기씩 작은 화분에 담아 건네고 싶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며 땀 흘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저녁 대문 밖에 내놓은 쓰레기를 언제 가져갔나 싶게 깨끗하게 치워준 환경미화원 고맙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일하며 싱싱한 농산물을 길러준 농민들 감사합니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싱싱한 생선을 식탁에 올려준 어민들 고맙습니다. 축산인들, 자영업, 소상공인들, 수많은 현장의 노동자, 배달노동자, 택배 노동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늘 현장에 있는 경찰, 소방관 여러분 감사합니다. 공공의료 종사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외침을 통해 조금씩 세상을 바꿔가고 있는 현장 활동가들, 열악한 후원 속에서도 올곧은 목소리에 변함이 없는 독립 언론과 기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여러분 고맙습니다.

 

투정 부리지 않고 꼭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아이들. 자식들 걱정에 한사코 내려오지 말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 시골의 노부모들. 아우성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 백신을 접종하는 국민. 어떤 일에 종사하든,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다. 숲속의 나무처럼 각자 든든하게 서서 버텨주고 있는 일상의 모든 것이 고맙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비탈 아래 콘크리트 배수관을 만들고 있던 늙은 목수들의 벌겋게 탄 얼굴과 팔뚝에 감사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매년 찾아오는 장마가 결국은 지나가고 높고 푸른 하늘이 보이듯 한 곳을 바라보고 힘을 모으고 있는 국민이 자랑스럽다. 우리 사회가 비록 더 나아가야 하고 여러 틈이 있다 하더라도 직접 집을 짓듯 하나하나 문제점을 해결하고 또 한 장 한 장 벽돌을 올린다면 얼마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겠는가. 코로나19 덕분에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를테면 우리 국민의 힘이 얼마나 부드럽고 강한지, 위기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신속한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세계 속에 긍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등등. 새삼 새롭고 자부심을 느낀다.

 

꽃을 좋아하는 옆집 아저씨가 작은 채송화 화분을 담 위 평평한 곳에 올려 두었다. 해가 뜰 때마다 노란 꽃이 피어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잡는다. 지금은 노인이 된 세대들도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목덜미가 붉었을 것이다. 그 치열함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이제 그 자식들의 팔뚝이 붉다. 나중에는 또 그 자식들이 붉게 탄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줄기가 붉은 꽃. 가늘고 몽톡한 잎이 촘촘한 꽃. 자세히 보면 사람 닮은 꽃. 꼿꼿이 서지도 않고 땅에 엎드리지도 않으면서 서로 어깨동무 하는 꽃. 꽃 하나가 그럴진대 우리 삶은 얼마나 뜨겁고 붉을 것이냐? 손을 잡고 어깨동무하고 함께 걷자. 고민하고 반성하다가 문득 곁에 있는 사람이 보인다면, 나직이 “고맙습니다.”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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