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면 소각장 사례

얼마 전 소각장 인근에 사는 청주시 북이면 주민 60명이 10년 사이 암에 걸려 사망하였는데 환경부의 건강영향평가 결과 소각장과 주민 암 발생 사이의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전문가가 뉴스에 나와 환경부 결과에 대해 설명하는 얘길 듣자니 헛웃음만 나왔다. 다이옥신이나 카드뮴 같은 발암물질이 다른 대조지역보다 높았지만 허용기준보다는 낮아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아니 환경부장관더러 그 마을에서 살아보라지. 지나가는 사람 잡고 한 번 물어봐라. 소각장 옆에 사는 사람들이 가족력도 없이 폐암, 담낭암, 신장암으로 죽어나가는데 그게 소각장 때문인지 아닌지. 이런 말들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환경부는 왜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판단 근거로 삼은 독성물질의 허용기준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되었을 수도 있고, 주민들의 주장처럼 충분한 양적, 질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북이면 소각장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소위 전문가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채로 굴러가고 있으며,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성물질 배출량이 누군지 모를 이가 정해 놓은 허용기준에 도달했는지, 못 미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각장이 생긴 이래 수십 명의 주민이 암으로 사망했다는 사실, 그리고 전국 소각량의 20%를 한 지역에서 처리하고 있는 불평등한 현실이 다른 판단보다 앞서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야말로 주민들은 ‘허용’하고 있지 않은데 ‘허용기준’을 들먹이며 건강 위협을 감수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국가가 “전문가의 판단”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건강권 침해를 용인하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관료제에서 전문가의 위상

북이면 소각장 사례는 이 나라 관료제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관료제를 “국가로부터 전문적인 능력을 인정받은 행정관(들)이 의사결정 권한을 갖고서 국민을 통치하는 제도”라고 정의한다면, 관료제는“전문가의 권위”에 근거하고 있고, 그 이면에는 “전문가가 좋은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그 좋은 판단이라는 것이 “누구”에게 좋은 판단인지에 대해서 검증하거나 교정할 수 있는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사회 약자들에게 좋은 것인지, 부동산을 소유한 중산층에게 좋은 것인지, 특정 기업에게 좋은 것인지, 지역 주민에게 좋은 것인지, 수도권/비수도권 시민들에게 좋은 것인지 등등…

가깝게는 최근 논란이 되었던 음성군 청소대행업체 보조금 횡령 사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음성군은 총 4개 업체에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위탁하면서 해마다 충북지역 모 대학 산학협력단에게 대행업체들을 평가하도록 맡겼다. 대학 교수를 위시한 산학협력단은 지난 5년간 문제가 된 업체에 가장 높은 점수를 평가해왔다. 음성군에서 조례를 통해 설정한 평가지표 상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고 심지어 가장 우수한 업체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땠는가? 사업주는 친족과 지인을 유령 직원으로 등록시켜놓고 임금을 지급했다. 환경미화원들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 오라고 한 뒤 통장을 통해 보조금을 유용했다. 환경미화원들은 낡고 좁은 컨테이너 박스 휴게실에서 쉬었고, 겨울에 핫팩도 지급받지 못해 동상에 걸렸다. 산학협력단 교수는 왜 이러한 현실을 평가에 반영하지 못했을까?

마지막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발족한 “탄소중립위원회”를 들여다보자. 위원장은 김부겸 총리와 윤순진 서울대 교수다. 위원장 포함한 민간위원 78명 면면을 살펴보면 기후위기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업계를 대변하는 사람들(현대자동차 부사장, SK E&S 대표, 한국시멘트협회 회장, 한국석유화학협회 회장 등) 14명이 눈에 띈다. 전문가 집단을 대학교수와 연구원으로 설정한다면 대학 교수 23명, 연구원 18명으로 총 41명으로 전체 인원의 절반이 훌쩍 넘는다. 그에 반해 노동계는 단 한 명, 청소년/청년을 대변하는 단체나 사람도 한 명 또는 두 명이다. 여성·장애인·농민을 대변하는 단체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기후위기가 현존하는 불평등을 가중시키고 사회적 약자들이 위험에 우선적으로 노출되는 점을 고려할 때 탄소중립위원회에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탄소 배출을 하며 이윤을 누려왔던 업계와 그들의 기업활동에 이론적·과학적 정당성을 마련해주고 기술적 대안까지 제공해주는 학계·연구진이 위원회 좌석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탄소중립위원회를 전문가, 대변하는 사람들 등의 기준으로 필자가 나름대로 구분한 목록은 글 마지막에 실었다.)

 

초대되지 못한 사람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사회 관료제는 전문가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문제 해결과 거리가 먼 인사들을 ‘모시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각종 위원회를 구성하고 의사결정 권한과 발언권을 부여한다. 마치 지역 사회 빈곤을 해결하겠다며 기업가들과 부자들을 테이블에 불러 토론하지만 정작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은 초대하지 않은 것처럼. 음성군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임금 노동자이지만 노동자 권리를 위해 일하는 부서는 존재하지 않고, 주요 안건회의에 노동자를 초대하지 않는다. 이른바 ‘탁상공론’이라고 비판을 받는 정부 행정의 잘못은 ‘책상’에서 의사결정을 하는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 책상에 누구를 초대했는지, 누구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누구의 입장을 고려하였는지에서 잘못은 시작된다.

현실은 어떠한가.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정치’에서도 우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참석 수당까지 받으며 시간을 낼 수 있는 교수들, 협회 임원들, 시민사회단체 임원들…. 정부의 주요한 의사결정은 보통 평일 낮에 이루어지는데 그 시간에 농민들은 밭에 나가 일하고, 노동자들은 밤까지 야간 노동에 시달린다. 개인적인 이유로 연차휴가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저상버스가 없고, 장애인 콜택시가 태부족한 지역에서 이동권을 보장 받지 못한 장애인들은 회의 자리에도 원활하게 참석하기 어렵다. 이런 현실적인 제약에 대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시 북이면 소각장으로 돌아가 보자. 북이면 주민에게 인터뷰 마이크를 가져온 언론사는 지역 언론사 몇 곳뿐이었다. 문제의 심각성과 지역 간 불평등에 비추어볼 때 반드시 전국 방송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이지만 단 한 줄도 나가지 않았다. 북이면 소각장에서 태우는 쓰레기는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에서 찾아왔지만 정작 쓰레기를 배출한 타 지역 사람들은 이곳 주민들이 겪는 비극을 모른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어떻게 지워지는가. 테이블 위로 올라오지 못한 숱한 목소리들이 바닥에 깔리고 있다. 그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회의 자리에 의자를 내어주지 않아서다. 마이크를 주지 않아서다. 그래서 아우성은 바닥에 깔린다. 그 바닥을 짓밟은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한다. 그의 말은 공중파 라디오를 타고, 엘이디 모니터를 타고, 유튜브를 타고 퍼진다. 

 

<2050 탄소중립위위원회 구성(박윤준 정리)>

교수 23명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서왕진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교수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과 교수

▲전의찬 세종대 기후에너지융합학과 교수

▲조홍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하나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안병옥 호서대 AI 융합공학과 교수

▲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부 교수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김정인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김혜애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이규진 아주대 지속가능교통연구센터 교수

▲이명주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

▲김좌관 부산가톨릭대학교 응용과학대학 교수

▲임성진 전주대 행정학과 교수

▲전명숙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김승완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

▲유가영 경희대 환경학과 교수

▲이기택 포항공대 환경공학부 교수

▲박덕영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선경 청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

▲정성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구소·공공기관 18명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조용성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김부기 선박해양플랜트 연구소 소장

▲이창훈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원

▲임춘택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 본부장

▲강명수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

▲박진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이상 녹색생활 분과)

▲고재경 경기연구원 연구원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

▲김종남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이미혜 한국화학연구원 원장

▲정병기 녹색기술센터(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설) 소장

▲김성우 김·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 소장

▲박현정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부소장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 원장

 

산업계 14명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추소연 알이도시건축 대표

▲추형욱 SK E&S 대표(이상 기후변화 분과)

▲박혜린 ㈜이노마드 대표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

▲임대웅 ㈜에코앤파트너스2℃ 대표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대표

▲류성필 제주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 단장

▲김희철 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 회장

▲최정우 한국철강협회 회장

▲강삼권 벤처기업협회 회장

▲이현준 한국시멘트협회 회장

▲문동준 한국석유화학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노동계 1명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협의회·거버넌스 기구 3명

▲이은희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 상임대표

▲송하진 대한민국 시·도지사 협의회 회장

▲이재준 기후위기대응·에너지전환 지방정부협의회 회장

 

시민사회·NGO단체 14명

▲김춘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홍혜란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 시민운동연합 대표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 운영위원(청소년)

▲조규리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 대표(청년)

▲김민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대표(청년)

▲김선명 원불교 시민사회네트워크 상임대표

▲백종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총무

▲안홍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문화 위원장

▲윤영미 녹색소비자연대 대표

▲이동학 UN 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전문위원

▲최경선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사회적협동조합·공공재단 등 5명

▲양흥모 에너지전환 해유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권오현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 이사장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박태현 Ocean5 동아시아지역 코디네이터

▲박형건 녹색기후기금 팀장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