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일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공동체’의 문제로 전환됐습니다. 충북인뉴스는 위기의 시대에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는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풀꿈재단과 함께 2주일에 1회씩 매주 ‘풀꿈 칼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무엇을 먹을 것인가?

글 : 김경중 청주국제에코콤플렉스 관장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환경교육을 하면서 왜 환경을 보전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이 필요했다.

환경운동가로서의 나의 삶을 되돌아 보면 환경파괴 현장에서 몸으로 막아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보전이 되더라도 그것은 공공의 이익으로 돌아왔고, 활동가에게 경제적인 이득을 주지 않았으며, 급여도 높지 않았다.

이런 현실이라면 내가 환경운동가의 삶을 살기보다 차라리 친구를 꼬셔서 환경운동가로 만들고 친구가 환경보전을 잘하면 그것으로 지켜지는 환경을 누리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경제적이라는 회의가 들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환경보전은 왜 해야하는 걸까.

 

나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우리가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매일 3끼의 식사를 한다.

그 식사의 재료를 보면 모두가 생명을 가지고 있던 생물들이었다. 닭고기볶음은 보통 10년은 더 산다는 닭을 1년도 안되어 잡아 만든 음식이다.

밥을 짓는 재료인 쌀은 봄에 씨앗뿌려 모내기하고 한여름을 지나 가을에 수확한 벼의 열매였다.

밥상에 오른 음식중에서 생물이 아닌 것은 소금, 물뿐이었다. 내가 먹는 음식은 생물 그 자체 혹은 생물의 열매였다.

생태계의 생물적 요소를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로 구분할 때, 식물은 이산화탄소, 햇빛, 물, 토양의 영양소만을 가지고 자신이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어낸다.

소비자인 동물, 인간은 생산자인 식물에 기대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나는 고기만 먹고 살아요' 할 수 있지만 그 고기도 풀을 먹여 살을 찌워야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먹는 밥은 어떤 환경에서 재배된 것일까?

사진 뉴시스
사진 뉴시스

낙동강의 상류에는 영풍에서 운영하는 석포제련소가 있다.

산업계에서 중요하게 이용되는 비철금속을 제련하는 곳인데 많은 오염물질이 배출되어 논란이 되었지만 여전히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제련소 아래의 농경지에서 재배한 벼와 심산유곡 맑은 물을 이용해 재배한 벼, 어느 곳에서 생산된 쌀을 먹고 싶은가.

내가 먹는 계란에는 등급이 있다.

계란에는 여러 숫자가 찍혀있는데 마지막 숫자는 이 계란을 낳은 닭의 사육환경을 알려준다.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4는 케이지식 닭장에 사는 닭이 낳은 것이고(사육면적 0.05m2), 3은 4보다는 조금 개선된 케이지(0.075m2)에서 낳은 것, 2는 케이지와 축사를 자유롭게 다니는 평사일 경우, 1은 자연방사하여 키운 닭이 낳은 알을 의미한다.

1번 계란은 그만큼 비싸고 시중에서 잘 유통되지 않는다. 마트에서 한 판씩 저렴하게 파는 계란은 대부분 4번이다.

영양학자들은 1번이나 4번이나 영양상의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어떤 계란을 먹을 것인가?

어떤 쌀을 먹을지, 어떤 계란을 먹을지는 환경학자, 영양학자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맑은 물로 농사지은 쌀과 좋은 환경에서 사는 닭이 낳은 알을 원한다.

그것이 내 몸도 건강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생물은 지구라는 닫힌공간에서, 물로 대표되는 물질순환이 이루어지는 생태계에 살고 있다.

어딘가에 환경오염이 발생하면 결국은 생태계의 먹이 사슬을 통해 내 입으로 온다. 우리나라는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무역국가이고 전 세계의 농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은 어떤 환경에서 생산된 것일까?

어떤 환경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가공한 것일까. 지구 반대편의 자연이 오염되어 있다면 결국 먹을 것을 통해 내 입으로 들어온다. 왜 환경을 보전해야 하는가. 결국 내 몸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것이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존 라빈스의 “육식은 세상을 망치고 건강을 망친다”를 읽었다.

존 라빈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라먹는 “아이스크림 회사인 베스킨 라빈스”의 상속자였는데, 오히려 유제품과 육식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우리가 먹는 소, 닭, 돼지 들이 어떤 환경에서 키워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환경오염이 발생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꼭 고기를 먹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축산업은, 그냥 소 몇 마리, 돼지 몇 마리가 아니라 대상이 가축인 산업이다.

당연 투입과 산출에 있어 적게 투입하고 많은 산출을 얻는 데서 경제성을 확보한다. 그래서 산업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 소는 빨리 살을 찌워야 한다. 본디 소는 풀을 먹는다. 사람은 풀을 먹지 못한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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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셀룰로오스 때문이다. 소는 위를 4개나 가지고 있고 그 안에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는 미생물을 가지고 있어 풀을 소화하고 살이 찐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천천히 살이 찐다는 것이다. 그래서 빨리 살찌우기 위해 사람도 먹을 수 있는 곡물을 소에게 먹인다.

문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10명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을 소에게 먹이면 1명만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소는 풀이 아닌 곡물을 먹으면 소화불량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많은 이가 소고기를 먹게 되면서 더 많은 곡물이 필요하게 되고, 소화불량에 걸린 소는 더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다른 것을 차치하고 심각한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만 하더라도 축산업이 교통분야보다 더 많이 발생시킨다.

 

그렇다면 소고기를 먹지 말아야 할까?

 

소는 사람이 소화시키지 못하는 풀을 먹는다. 자연계가 공급하는 풀을 먹고 자란 소를 먹는다면 환경문제, 윤리적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지금 먹는 만큼 소를 먹을 수는 없다. 한 달에 한 번이든 분기에 한 번이든 하는 식으로 줄여야 한다.

고기를 꼭 먹어야 하는 질문에 나는 꼭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실천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기쁜 날, 혹은 회식을 할 때 늘 고기를 먹는다.

그 자리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에게 이야기하고 자리를 어색하게 만든다는 것에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

‘분위기 깨는 거 아냐?’ 그 벽을 넘어서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채식은 여러 단계가 있다.

고기를 적게 먹는 것에서, 닭고기는 먹는 것, 어류는 먹는 것, 우유는 먹는 것, 계란은 먹는 것, 이런 것은 다 안 먹는 것 등등.

그런데 다 안 먹고 나면 밖에서 다른 사람과 만나 먹을 것이 없어진다.

사진 :뉴시스
사진 :뉴시스

 

최근에는 우유, 계란을 넣지 않은 빵도 있지만 대부분 들어가고, 김치에도 젓갈이 들어가며, 냉면 육수에도 고기를 삶아 국물을 낸다.

어떤 경우에는 콩나물 해장국에 소고기를 넣는 경우도 있었다.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육식에서 오는 환경적 폐해도 고려하는 적절한 타협점으로 고기는 안 먹고 물고기는 먹는 것으로 정했다.

우유, 계란도 먹으니 비건인 사람이 부족하다는 비타민 B12도 굳이 챙겨먹지 않아도 되었다. (최근 물고기 양식과정에서, 어류의 남획에서 많은 환경문제가 발생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물고기도 고민이 된다.)

먹는다는 것은 내가 생태계에서 생산자가 아닌 식물에 기대 사는 소비자임을 자각하게 한다.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내가 소비하는 것은 대부분 생명이 있던 것들이다.

먹는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는 일이고 이 과정에서 윤리가 발생한다.

인간은 자연계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지만, 결국 생산자 없이 살 수 없는 소비자에 불과하며 생태계의 한 구성원이고 자연환경의 영향권을 벗어날 살 수 없다.

그렇기에 내 생존의 기반이 되는 자연환경보전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생존을 위해 먹는 음식에서 시작된다.

나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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