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페미야?”

눈썹을 올리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질문을 던지는 이 말이 무척 우스운 까닭은 비단 단어 ‘페미니스트’를 ‘페미’라고 줄여 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일 내가 no라고 답하면 지금부터 우리는 함께 오늘날 남성이 얼마나 불쌍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이야기할 것이 분명하며, 만일 내가 yes라고 답하면 당장에라도 우리의 관계는 끝이며 너를 차별하겠다는, 너는 차별받아도 괜찮은 것으로 규정하겠다는 혐오의 의도가 확연히 담겨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질문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페미니스트’가 뭔지 잘 모른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 질문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페미니스트=남성 혐오자’이다.

나 역시 위 질문에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페미니스트’는 내가 알고 있는 사전적 의미와는 달리 느껴졌다. 흔히 말하는 ‘극펨’, ‘메갈(메갈리아의 줄임말)’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을 향한 관념, 세상에 떠도는 그들을 향한 알 수 없는 혐오감들을 나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나를 다른 포지션에 배치해두었다. 성평등은 실현되어야 하지만, 내가 페미니스트냐고 물어본다면 잘 모르는 사람 말이다. 부끄럽게도 20대의 나는 페미니스트에 대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페미니스트를 궁금해하게 된 계기도 누군가가 내게 “메갈이냐”고 질문을 던졌을 때 비로소 시작했다. 그 질문에는 메갈을 향한, 아니 정확하게는 ‘메갈임이 분명하다 단정 지은 나’를 향한 혐오감이 눌어붙어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느껴졌다. 무언가로 지칭되는 이들이 이러한 혐오 속에서 살 것이라는 걸 처음 느껴본 나는 부끄럽게도 2015년에 생긴 단어 ‘메갈리아’를 2020년이 되어서야 검색해보았다. 찾아보니 메갈리아는 이미 2017년 사라진 사이트이지만 20, 30대 여성 페미니즘에 큰 시발점이 된 사이트였다. 페미니스트들은 성평등을 바라는 데에는 같은 뜻을 갖은 집단이었다. 페미니스트에게 먼저 필요한 이름은 ‘혐오’가 아니라는 걸 깨달으며, ‘혐오’ 속에서 피어난 페미니즘의 꽃은 내 안에서 빠르게 피어났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물결은 무척 거대하다. 그만큼 여성들이 삶은 남성과 다르기 때문이다. 성적 대상화는 일상이요, 자신의 겪은 폭력에 문제 제기만 하더라도 2차 피해는 당연한 수순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폭력과 혐오의 경험을 모든 여성이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가부장 문화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진 사회가 되길 바라는 페미니스트의 간단한 요구를 거절했다.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눈을 감은 채 페미니스트를 ‘남성 혐오자’로 세팅하여 퇴치하기로 결정했다. 여성을 향해 오랜 세월 저질러온 성적대상화, 성폭력, 타자화를 반성하기보단 백래시(backlash, 진보적인 변화로 인해 영향력이나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기득권 세력이 집단 반발하며 반격하는 현상)를 선택한 흐름은 우습기만 하다.

최근 유행한 숨은 메갈 찾기가 그 대표적 예시이다. 메갈리아에서 만들었다던 손 모양과 유사한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 업체를 찾아 사과를 받겠다는 건데, 옷가게, 은행, 경찰, 국방부 등에선 너나 할 것 없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일단 사과’하는 중이다. 한 편의점 포스터 디자이너와 마케팅팀장은 징계까지 받았다. 초콜릿, 햄버거를 먹는 손가락조차 남성 혐오의 증거라 억지 부리니, 세상 사람들의 모든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잘라내야 할 판이다.

페미니스트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배우 엠마 왓슨(Emma Watson)은 2014년 UN에서 연설을 통해 “페미니즘을 말할수록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 남성 혐오와 동의어로 느껴진다.”라며 이를 멈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백래시로 덮인 대한민국 온/오프라인의 수많은 말들은 2014년 엠마 왓슨의 연설로부터 조금도 나아가지 않은 채 혐오를 쏟아내는 중이다. 백래시와 혐오까지 감내해가며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투쟁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어깨가 무겁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에 가부장 문화가 공고했던 만큼 ‘페미’들을 향한 혐오는 더욱 강력하다. 쏟아지는 혐오의 단어들이 어지럽다. 단언컨대 페미니즘은 결코 ‘혐오’를 위한 움직임이 아니다. ‘페미’를 향한 혐오의 단어를 생각할 시간에 페미니즘 책을 한 권 읽기를 권유한다. 한 번이라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라. 여성이 살아가는 세계가 남성이 살아가는 세계와 얼마나 다른지를. 페미니즘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공부해보라. 페미니즘은 남성 혐오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엠마 왓슨 연설의 마지막 문구를 인용한다.

“저는 여러분께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 스스로 묻기를 청합니다. ‘내가 아니라면, 누가 하겠어?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하겠어?’ 라고요. 감사합니다. (I am inviting you to step forward to be seen and to ask yourself, ‘If not me, who? If not now, when?’ Thank you very, very much.)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