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에서 ‘공자축제’가 열린다 하기에 틈을 내어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대화를 나누거나 글을 쓸 때면 곧잘 ‘공자님 말씀’을 약방의 감초 쓰듯 즐겨 인용해오곤 하던 터라 그 신비로운 분의 탄생지를 가보는 것은 평소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산둥성 성도(省都)인 지난(濟南)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2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난공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남쪽을 향해 3시간쯤 내려가 해 질 무렵 말로만 듣던 취푸에 닿았습니다.

유사이래 중국은 물론 동양 여러 나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위대한 성인의 고향이라는 선입감 때문인지 가벼운 전율이 온몸을 감싸 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곡부라고 부르는 취푸는 산둥성(山東省)의 서남쪽에 위치해 있는 소도시입니다. 광역으로는 40만이라고 하지만 공자묘(孔子廟)가 있는 실제소재지는 인구가 13만 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도성으로 2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시는 오랜 세월을 간직한 고도(古都)답게 그 고색 창연함이 아름다웠습니다.

전통적인 중국식 고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에는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들과 자전거로 움직이는 인력거들이 늘어서 있어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공자절축제를 알리는 원색의 대형아치와 현수막만 없었다면 이 도시는 그대로 100년 전의 옛 중국을 연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취푸에는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등 삼공(三孔)이라 부르는 유서 깊은 명소가 있습니다.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공묘와 공자의 자손들이 살았다는 공부, 그리고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무덤이 있는 공림은 바로 취푸의 상징입니다.

베이징(北京)의 자금성, 타이산(泰山)의 대묘(垈廟)와 함께 중국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는 공묘는 공자 사후 1년 뒤에 노나라 애공(哀公)이 세웠다는데 그 길이가 남북으로 1㎞, 총면적 2만㎢로 방의 수만도 466칸이나 됩니다. 그 옛날 공씨 가문의 권세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케 하는 곳입니다.

취푸시는 인구의 5분의 1이 공(孔)씨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이 도시는 공씨 집성촌이나 다름이 없는데 공문(孔門)의 입김이 하도 거세어 시 당국의 행정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한 예로 취푸에는 택시가 없습니다. 이유인즉슨 공씨들 대부분이 마차나 인력거를 생계수단으로 삼고있기 때문에 택시를 들여 올 경우 생업에 영향을 준다하여 도입을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골탕을 먹는 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외래 관광객들입니다.

또 하나 취푸의 명물이 되고있는 무용극 ‘행단성몽(杏壇聖夢)’은 그야말로 대단했습니다. 대규모 노천극장에서의 장관을 이룬 현란한 공연은 400여명이 총 출연하는 극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연출력 또한 놀랍기만 했습니다.

취푸시에서 3000만위엔(한화 45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작품은 도대체 이 작은 도시에서 어떻게 이처럼 수준 높은 공연을 펼칠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공자가 은행나무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친 고사를 인용해 만들었다는 ‘행단성몽’은 공자의 이상정치가 사해(四海)에 펼쳐지기를 염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주마간산으로 둘러 본 느낌이지만 취푸시민들은 자신들이 공자의 후손이라는데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자야말로 2000여 년이 넘게 동양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위대한 인물이기에 후예로서 그들이 갖는 자부심은 클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산둥성 취푸에서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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