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의 뒤끝에 정치인들이 떨고 있다. 연예인 성 상납의 불똥이 정치권에까지 튀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은 연예인 성 상납 비리의혹과 관련 “민주당 의원들의 명단을 구체적으로 확보했다”며 C·J·K 의원을 거론했다.
연예계 ‘PR비’가 불거지면서 나온 정치인과 연예인의 스캔들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단지 공개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공개되지 않은 연예계 성 상납 실태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소설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김동성 <스포츠연예신문> 편집국장이 펴낸 <스폰서>(열매출판사)가 바로 그것. 20년 동안 연예계 기자 생활을 한 독특한 경험이 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동성씨는 책머리에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모두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으며, 묘사된 사건들은 대부분 실제 상황”이라면서,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연예 기자의 생생한 취재 수첩”이라고 설명했다.

공개되지 않은 정치인-연예인 스캔들

<스폰서>에는 기자와 연예인, PD와 연예인 성 상납, 연예인과 성형수술, 연예인과 CF에 얽힌 에피소드, 기획사와 연예인의 먹이사슬 구조뿐 아니라 정치인과 연예인 사이의 이야기도 상세히 소개돼 있다. KBS, SBS, MBC 등 방송사들 이름을 ABS, RBS, ,NBS로 바꿨을 뿐이지 조금만 추적해 가면 금방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유추가 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정치인도 물론 마찬가지다.
<스폰서>에 소개된 정치인과 연예인과의 이야기로 잠깐 들어가 보자.
차은지가 타워호텔 1505호 들어섰을 때 방에는 이미 배주완 장관이 와 있었다. 배 장관은 마주앙을 이미 다섯 병이나 비우고 있었다.
“죄송해요. 패션쇼가 늦게 끝났어요.”
차은지는 서둘러 바바리를 벗고 소파에 앉았다.
“채성신 국장과 오늘 아침에 통화했다. <사랑의 기쁨>에 너를 캐스팅하겠다고 약속했다.”
브라운관에 진출하기 전 대학로를 맴돌던 무명의 연극 배우 차은지는 우연한 기회에 ABS의 단막극에 출연한 이후 조금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미니 시리즈에 주연급으로 등장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차은지가 서서히 떠오르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매니저와 몇몇 PD뿐이었다. 방송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배 장관이 차은지 뒤에 있었던 것이다. PD들 사이에 ‘차은지는 배 장관의 애첩’이라는 소문이 은밀히 퍼졌다.
두 사람이 타워호텔 1505호를 밀회 장소로 택한 이유는 이곳이 보안 유지에 적합하기 때문이었다. 배 장관은 밀회가 있는 날이면 지배인에게 미리 연락을 해놓았고, 지배인은 1505호 문을 미리 따놓고 있다가 적당히 변장을 한 차은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입실할 수 있게 조치를 했다.
차은지는 아무리 바쁜 스케줄이 있어도 배 장관의 호출에는 무조건 응했다. 내각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배 장관이기에 방송국에서는 알아서 차은지를 밀어주었고, 그녀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 뿐 아니다. 연예인과 스캔들로 정치적 생명이 끊긴 국회의원들 사건도 소개돼 있다. 여가수와 염문 때문에 곤욕을 겪은 국회의원 이야기를 비롯해 그 기사를 쓴 기자가 구타당한 사건까지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연예인과 관계가 있는 정치인들이 공교롭게도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이란 점도 흥미 있는 대목이다.

‘수청’든 여배우 비행기 태워 사우디로

<스폰서>가 연예계 전반에서 벌어지는 성 상납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소설이라면 8월 14일 출간된 신일하씨의 소설 <광화문에 소나무를 심자>(여울미디어)는 70, 80년대 영화계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고 있다. 작가 신일하씨도 역시 기자 출신. <TV가이드> 부장을 거쳐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영화를 비롯해 대중문화에 대한 글들을 스포츠 신문에 기고하고 있다. 이 소설도 사실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글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실명을 붙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모두 현역이거나 아직 살아 있어 불가피하게 발생할지도 모를 그들의 명예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는 일념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광화문에 소나무를 심자>의 주인공은 영화를 제작하고 수입하는 진영일 사장이지만 이 책에서도 역시 정치인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정치인과 영화제작자가 어떻게 얽혀서 공생을 유지하고 있는지, 요정에 나가는 술집 아가씨가 영화 제작자와 정치인을 등에 업고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이 소개돼 있다.
이 소설에는 70, 80년대 연예인의 성 상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가 등장한다. 석유 수출 문제로 한국에 온 사우디 국왕을 한 여배우가 ‘수청’을 든 일이 있었다. 정부에서는 사우디 국왕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석유 수입이 힘들어 방문기간 중 국빈 대우를 해주었는데, 마음에 들었던지 그만 여배우를 비행기에 태우고 자기 나라로 가 버렸다. 예상치 못한 황당한 일이었다. 국익에 해당되는 일이라 외무부가 겨우 손을 써서 그 여배우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연예인에게 정치인은 접근하고 싶은 대상이다. 예전에 대통령이나 정치인에게 수청을 드는 일이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면, 요즘은 연예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섹스 커넥션을 맺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연예계에서 ‘돈과 인기’를 동시에 거머쥐기 위해서는 권력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쯤은 연예인들에게 상식이 돼버렸다는 뜻이다.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인 연예인 성 상납 사건이 어디까지 파장을 몰고 올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연예인들 입에서 누가 거명되느냐에 따라 정치인권에 태풍을 몰고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인, PD, 기자, 기획사 등으로 연결되는 사상 최대의 ‘섹스 스캔들’로 비화할 수도 있다.
힘있는 사람들에게 몸을 받쳐야만 스타로 화려하게 변신할 수 있는 악순환의 고리가 청산되지 않는 이상, 연예인에게 정치인은 언제까지나 든든한 빽이 될 수밖에 없다. 덕분에 그 숨겨진 이야기가 소설로까지 등장하게 됐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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