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헌 석(서원대 법학과 교수)

   
최근 들어 폭탄사건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이런 저런 소란이 일고 있다. 우선 몇 일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자살폭탄테러로 인해 지구촌이 떠들썩했던 사건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주성영 의원의 소위 「폭탄주 사건」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두 사건들 모두가 폭탄과 관련이 있지만, 폭탄테러는 세계를 경악과 공포로 몰고 갔고 테러에 대해 전지구적 고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면, 주성영 의원의 폭탄주는 우리 정치판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일 뿐이며, 잠시 시끄럽지만 결국에 가서는 헤프닝으로 끝나버릴 일회성 사건일 뿐이라는 데서 차이가 있다.

우리의 정치판에서는 과거나 지금이나 후안무취한 자들의 저질 코메디가 이어져 왔지만, 이번의 주성영 의원의 폭탄주 사건은 저질 코메디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사건의 실체라고 해봤자, 썩은 정치인들이 그 부류의 검사들과 어울려 폭탄주를 돌리면서 추태를 부린, 그렇고 그런 사건에 불과할 터인데, 불똥이 생뚱맞게도 정치공작으로 비화되면서, 졸지에 주성영 의원이 야당을 사수하는 수호자가 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건인 즉, 대구지검 국정감사를 위해 지난 22일 대구를 방문했던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동료의원들과 피감기관 검사들이 동석한 술자리에서 종업원들에게 성적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등 추태를 부려 물의를 빚었다는 것이다. 그 덕에 주 의원은 지난 14일 “폭탄주 없는 건강한 국회를 만들어 청정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취지로 국회의원들이 발족한 ‘폭소클럽’(폭탄주 소탕클럽)에 가입했지만, 겨우 작심 8일 만에 또 다시 주화(酒禍)에 휘말려 스타일을 구긴 꼴이다.

물론 술자리에서 추태가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고 확인할 길도 없지만, 법조계 인사들 중에 극소수일지언정 그들이 벌이는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광란에 대한 경험담을 들어왔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날의 술자리 풍경이 어느 정도 그려지기도 한다.

특히 주성영 의원은 평소 애주가로 소문나 있고, 그동안 술로 인해 구설수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 테면 지난 98년 전주지검 공안부 검사 재직시절 술병으로 전북도지사 비서실장 얼굴을 때려 중상을 입혔고, 91년 춘천지검 재직시절에는 음주운전을 하다가 단속경찰관에게 폭언을 한 전력시비이 비추어 본다면, 상당한 추태가 있었던 쪽으로 심증이 가게 한다.

정작 우리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국정감사를 하러간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인 검찰간부들과 아무런 거리낌없이 술자리를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이처럼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왜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는 술자리에서의 욕설이 아니라 국정감사를 하는 국회의원들과 피감기관 관계자가 같이 놀아나는 은밀한 유착관계가 지금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술자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국정감사에 임하는 의원들의 자질과 도덕성 그리고 우리 권력기관 전반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부패구조가 진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가 시정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국정감사는 ‘눈가리고 아웅’일 뿐이며, ‘국민을 향한 기만적인 쇼’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세간의 말들 중에서 ‘국정감사무용론’과 ‘국회무용론’이 힘을 얻고 있는가 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들조차 가세하여 진짜 문제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은 채, 오로지 술자리에서 욕설이 있었는가의 진실공방으로 몰고 가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정치행태와 언론행태가 삼류 주간지 기사보다 더 유치하게만 느껴진다.

이제라도 진정으로 우리 정치를 바로잡고,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부패의 사슬을 끊어 내려면, 이번 사태를 단순한 헤프닝으로 호도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진상규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피감기관과 술자리를 주선하고 추태를 부린 주 의원에 대한 엄중한 징계가 있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술자리에 동석했던 여야 의원들과 검사들에 대해서도 상응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권력층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이번에 터져 나온 폭탄주는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가는 흉악한 무기가 아니라, 우리 정치를 정화하고 국민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화려한 폭죽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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