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출신 비정향 장기수, 북에 있는 아내와 4남 상봉못해

진천 출신으로 청주상고를 졸업한 비전향장기수 정순택씨(84)가 정부의 북송거부로 북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상봉하지 못한채 끝내 숨졌다. 아내와 아들을 북에 두고 남파됐다 체포돼 장기 복역했던 정씨는 30일 오후 6시 50분께 숨을 거두었다. 정씨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서울 대방동 보라매병원에서 한달 가량 투병생활을 했다.

정씨는 상공부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1949년 월북, 기술자격심사위원회 책임심사원으로 일하다 1958년 남한으로 내려왔다가 간첩혐의로 체포돼 31년5개월을 복역했다.

정씨는 2000년 9월 단행된 비전향장기수 송환 당시 전향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북송 대상에서 제외됐다. 북한에 아내와 아들 4명을 두고 있는 정씨는 북녘 땅을 밟기를 애타게 고대하다 이날 숨을 거둬 통일인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유족으로는 북한에 있는 아들 태두, 태삼, 태성, 태건 등 4명이 있다.

한충목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은 "애절할 정도로 북녘으로 돌아가길 원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유족이 모두 북에 있기 때문에 통일진영의 모든 사람들이 상주가 돼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빈소는 10월 1일 보라매병원 장례식장 6호에 마련될 예정이며 2일 오전 11시 발인과 벽제에서 화장한 뒤,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여사가 묻힌 파주 보광사에 안장된다.  
 <정순택씨 약력>  
 1922년 충북진천 출생
1942년 경성고등상업학교(현 서울상대)입학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 45년 동경사단에 배치
1946년 상업학교 졸업 후 신한공사 재무부기장 계장으로 입사
1947년 상공부 재무부 감사관리 감사관
1949년 월북 후 강동 정치학원 수학. 북 상업성 관리부 영업관리처 부장
이후 외국인 접대 관리소 소장
1952년 상업성. 전쟁 끝난 뒤 북 기술자격 심사위원회 책임 심사원
1958년 남으로 내려옴. 체포됨
이후 31년 5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한 뒤 석방.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기거하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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