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壯子)’ ‘소요유(逍遙遊)’에 보면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글인즉슨 ‘아무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이니 장자가 추구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이상향을 뜻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선경(仙境), 그리고 도원경(桃源境)은 상상의 세계일 뿐이지 실제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 옛날 많은 몽상가나 모험가들은 세상 어딘 가에는 반드시 이상향(理想鄕)이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15세기에 시작된 유럽인들의 대륙 발견도 원래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따른 ‘황금의 전설’에서 유발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스페인의 모험가들은 남아메리카의 아마존강기슭에 ‘엘도라도(Eldorado)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엘도라도는 스페인어로 ‘황금의’라는 뜻, 즉 ‘황금향(黃金鄕)’을 말합니다. 콜롬부스가 1492년 신대륙을 발견 한 것도 사실은 엘도라도에 이끌려 모험에 나선 결과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런데 엘도라도는 남미의 안데스산맥 북쪽, 콜롬비아의 한 복판인 보고타 고원에 사는 티브치족의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전합니다.

이 부족의 추장은 종교적 의식으로 온 몸에 금가루를 바르고 호수에 들어가 희생물을 바친 뒤 호수 물로 금가루를 씻는 행사를 거행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유럽인들에게 전해져 ‘황금향’의 환상을 낳게 했다는 것입니다.

16세기초 잉카제국의 정복자 피사로는 엘도라도를 찾아 안데스산맥 너머로 탐험대를 보냈으나 그들은 배를 타고 내려 간 큰 강에 ‘아마존’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얻은 것도 없이 돌아 왔습니다.

또 영국의 모험가 롤리 경(卿)도 두 번이나 엘도라도 탐험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어느 곳에도 엘도라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동양이고 서양이고 ‘이상향’은 없는 것인데 꿈을 좇는 몽상가들이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를 찾아 부질없는 고행을 거듭했던 것입니다.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Utopia)는 본래 ‘이상향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스어 Ou(없다)와 Topos(곳)의 합성어로 ‘어디에도 없다’는 뜻의 Utopia는 16세기 영국의 토머스 모어의 작품에 묘사된 이상향으로서의 공상의 섬 이름인데 그 뒤 ‘이상향〓유토피아’로 일반화된 것일 뿐입니다.

세계 유일 의 초강대국 미국이 일진광풍에 ‘물 지옥’이 되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다더니 맞는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첨단과학문명도, 막강한 군사력도, 넘치는 경제력도 대자연의 조화에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이번 재앙은 깨닫게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엘도라도를 찾아가듯 아메리칸 드림의 희망을 안고 이역만리 태평양을 건너 간 우리 교포들이 천신만고로 이룬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일입니다. 실의에 빠져있을 그들이 하루 빨리 용기를 되찾아 일어서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무릉도원이 어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겸허히 자위할 수밖에 없습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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