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의 종 박물관
상태바
진천의 종 박물관
  • 임병무 고문
  • 승인 2005.09.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사의 종은 번번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신앙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뜬금맞게도 갈래 머리를 땋은 여학생이 보고 싶어서다. 마리아라는 세레명을 가진 그 여학생은 신심(信心)이 두터워서 우리 같은 ‘나일론 신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금도 어쩌다 라애심의 ‘미사의 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그 여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빠져든다.

종은 경건함 그 자체인데 내게는 그리움으로 와 닿았다. 정신적 그리움뿐만 아니라 학교종이 땡땡거릴 때면 내 배는 어김없이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를 일으켰으니 나는 어지간히 속물이었나 보다. 노트르담의 종지기 콰지모도. 집시의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모한 그는 몸으로종을 연주하며 뜨거운 마음을 전하고 사랑을 찬송한다. 일그러진 몸, 세상이 꼽추라고 놀려대지만 사랑이 무엇인 줄은 그도 안다.

원래의 종소리는 구원의 메시지요 끝없는 법열의 맥놀이지만 속인이 느끼는 감정은 제 각각이다.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에밀레종(성덕대왕 신종)은 구도의 법음이지만 홍진(紅塵)에 범벅이 되어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중생들에게는 단장의 바이브레이션으로 감정의 촉수를 건드리며 엄마 찾는 봉덕이의 애절한 목소리로 들리기 십상이다.

새벽에 울려 퍼지는 범종소리는 화엄의 바다로 나아가는 고동소리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잡된 생각을 씻어야 함에도 고단한 육신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깊은 잠으로 빠져드니 아마도 불심(佛心)이 부족한 탓이리라.종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시각을 알리는데 있다.

시계가 귀할 때는 교회나 절의 종이 예배시간, 공양시간을 알렸다. 시각적 기능을 중시한 종이 있는데 그게 바로 금구(禁口)라고 하는 청동 종이다. 금구는 고려시대로 내려오며 흔히 반자(半子, 飯子)라고 불렸는데 이외에도 금고(金鼓)로도 불렸다.

금고는 절의 기둥에 매달아 두며 주로 공양시간을 알리는데 사용하였다.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지에서는 모두 3개의 금구가 수습되었는데 하나는 ‘흥덕사’명문이 새겨져 있는 금구요 또 하나는 명문은 없지만 가장 규모가 크고 제작수법이 뛰어난 금구다. 이 금구는 발견자가 골동품상에 판 것을 골동품상이 신고해옴에 따라 보존된 것이다. 세 번째 수습된 금구는 거의 파손되어 복원치 못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다 ‘종 쳤다’고 하면 으레 끝을 의미한다. 종의 본래 기능과 다른 해석이다. 학교 종은 배움의 시작인데 사회의 종은 끝장으로 인식되는 것일까. 종소리마다 조종(弔鐘)이라면 삭막하여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밀레의 만종(晩鐘)과 조종은 지구촌에서 매일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태, 이라크 사태, 쓰나미, 하리케인 사태, 고유가 사태 등.

종소리는 사랑이다. 저주의 종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강원도 평창 상원사의 동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이다. 음향이 맑고 깨끗한 신라 동종의 교과서 같은 종이다. 국립청주박물관에는 운천동 절터에서 나온 동종이 있는데 규모는 비록 작으나 신라 3대 동종의 하나로 꼽힌다.

몸통이 약간 일그러져 있으나 신라 동종의 특징인 유두(乳頭)가 뚜렷하게 도드라져 있다. 진천 종 박물관이 개관하여 전국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을 만든 선인의 장인정신이 생거진천에서 되살아난 것일까. 삼국에서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는 배달의 맥박을 맥놀이에 담아 전 세계로 힘차게 전달했으면 한다.                           / 언론인·향토학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