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5명 뜻모아 내달 24일 충북본부 창립식 가져
투명한 본부 운영위해 20명 이사로 위촉할 예정

1992년 국내 최초로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한 첫 뇌사자 기증으로 기록된 주인공이 충북인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제천고 2학년에 재학중이던 고 권영일 군은 오토바이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지자 장기를 기증한 뒤 아름다운 생을 마감했다.

권 군이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지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현재 충북은 지역본부가 결성이 안 된 유일한 지역으로 장기기증운동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이런 충북에 장기기증운동의 ‘닻’이 오른다.
30대가 주축이돼 작년부터 추진해온 장기기증운동 충북지역본부 창립식이 내달 24일로 목전으로 다가왔다. 충북지역본부 대표를 손인석(37) JC충북지구회장이 맡았다. 막바지 행사준비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본부를 23일 미리 찾아봤다.

9월 1일 중앙회 재단이사회로부터 충북본부 승인 결정
손 대표와 뜻을 같이 한 창립멤버들은 사후 자신의 시신을 연구실험용으로 기증하겠다는 서약을 이미 했다. 사무실은 청주시 수곡동 광진빌딩 지하와 1층에 마련했다. 손 대표의 진뒤지휘로 창립식 준비가 한창 이었다.
이렇게 사무실을 내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타 지역의 경우 목사들을 중심으로 본부를 이끌고 있어 젊은 30대들이 본부를 설립하겠다고 나서자 중앙회에서 설립 의도에 반신반의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중앙회를 찾아가 순수한 뜻을 전달하고 임원들을 설득하기를 수 차례. 마침내 지난 1일 중앙회 재단이사회로부터 설립 승인을 받았고, 이달 중순에는 중앙회 임원들이 청주까지 내려와 실사도 무사히 마쳤다.

중앙회에서 지역본부 설립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장기기증운동의 본부의 시스템때문. 장기기증서약자가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을 경우 사망 6시간내에 수혜자와 연결이 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장기 이식은 불가능해 진다.
24시간 뇌사자와 수혜자를 연결시켜주기 위해서는 사무실을 갖추고 상근 근무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렇게 조직을 갖추고 운영비를 모두 지역본부가 충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경제력은 필수다.

손 대표는 “지역본부를 설립하기 위해 여러차례 중앙회를 찾아가 의지를 전달하고서야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충북은 한때 본부가 설립됐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폐쇄되는 쓰라린 경험이 있어 중앙회에서 지역본부 승인에 더욱 조심스러워 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중앙회로부터 승인을 받은 충북본부가 내달 24일 청주시 용암동 선프라자 컨벤션센터에서 조촐한 창립식을 갖기로 한 것이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18만명의 등록 인원 보유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는 1991년 창립된 이래로 등록된 인원만 약 18만명에 달한다. 기증분류 건수로는 37만여건의 엄청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장기기증은 크게 사후와 생전 기증으로 분류된다. 사후 기증으로는 각막, 장기, 시신, 조직 기증이 있다. 생전에도 골수와 신장은 기증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젊은층의 장기기증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경기지역은 20~40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새로운 정보나 경향을 쉽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결정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연령층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충북본부 설립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작년이다. 손 대표와 뜻을 같이 한 4명의 고교 선후배들이 모여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기기증운동에 관심을 갖고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약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장기기증운동의 운영체계를 알고부터 마음이 달라졌다. 지역본부가 없는 충북 제천은 강릉본부, 나머지는 시·군은 모두 대전본부에 소속돼 있다. 그래서 충북에서 뇌사자가 생기면 중앙회에서는 대전과 강릉본부로 연락이 가고 이들 본부는 자기 지역 수혜자들에게 연결을 시켜 주고 있다. 뇌사자와 수혜자를 이어줄 연결고리가 없는 충북은 장기를 이식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하우진씨는 “충북본부를 창립하면 가장 먼저 대전이나 강릉본부에 있는 충북 기증자들을 모두 청주에서 관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는 충북사람들에게 더 많은 수혜가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익광고와 법장 스님 시신 기증으로 본부설립 탄력 받아
작년 11월부터 지역본부 설립을 추진해오던 이들에게 최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두 사건은 본부 설립에 큰 자극제가 됐다. 그중 하나가 장기기증 TV 공익광고였고, 또 다른 하나는 법장 스님이 입적하면서 남긴 시신 기증이 그것이다.

최근 고 김상진(당시 31세·회사원)씨가 생전의 장기기증 약속을 지켜 5명에게 새 새명을 불어 넣어 이들이 새 삶을 살고 있다는 공익광고가 TV전파를 타면서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김씨의 장기기증은 국내 8만여명의 `뇌사 시 장기기증 서약자’ 중 실제로 서약을 지킨 첫 사례로 전해졌다.

여기에 지난 11일 입적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시신 기증 약속 이행은 한동안 큰 화젯 거리였다. 1994년 생명나눔실천회(현 생명나눔실천본부)를 설립하고, 자신의 각막 등 장기를 포함한 시신 전체를 기증할 것을 서약한 바 있는 스님이 약속을 지킨 것이다.

스님의 법구가 다비식을 하지 않고 병원에 기증되는 것은 한국 불교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원래 불가의 스님들이 입적하면 지상에는 아무것도 남길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육신도 화장을 해 그야말로 흔적을 없애는 것이 오랜 관습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장기기증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크게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면서 장기기증 서약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손 대표와 회원들은 지역본부 설립에 반신반의 하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회계를 공개하고 투명한 운영을 약속하고 있다. 그래서 지역의 명망있는 인사 20명을 운영회이사로 위촉할 구상도 갖고 있다. 본부 운영의 제반 사항은 모두 이사회를 거치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장기기증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기증자 가족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교회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인 홍보를 벌이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양남빈 사무국장은 “충북의 장기기증자 수가 전국에서 꼴찌다. 젊은 사람들중에는 장기기증을 두려워하고 혐오감마저 갖고 있어 아쉽다. 기증자들도 유족들의 반대로 사후 기증을 못하는 경우가 70%가 넘어 홍보를 통한 의식전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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