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다 보면 버린다는 의미, 진실한 땀의 대가, 자연의 질서 앞에 온전히 순응 할 줄 아는 겸손함을 배운다.

생각지도 않았던 삶의 변화에 뒤늦게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반평생 살아 온 생활 패턴의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그리하여 매사 안정적이지 못 한 것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로 다가와 자꾸만 나를 뒤흔들었다.

무슨 일이든 미리 생각하고 걱정하다보니 과거, 현재, 미래 할 것 없이 일어나는 시간의 공황증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밝은 아침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군에 간 두 아들이 집으로 돌아 올 시간들은 까마득하기만 하고, 또 이런저런 해결해야할 일들을 금방 내 눈앞에서 뚝딱 해결하지 못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갑갑함이 일면 어찌 할 바를 몰라 온 거리를 헤매기도 한다.

하늘도, 건물도, 거리의 사람들 모두가 견고한 벽처럼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럴 때면 힘든 삶의 굴레 속에서 도망치듯 허겁지겁 산을 오른다. 산은 내 삶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었다.

이 거대한 산 앞에 아주 작은 모습의 나!

그 작은 발로 고해하듯 한자욱씩, 한자욱씩 까마득한 산의 정상을 향해 오르다보면 어느새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고 가슴을 짓누르던 것들에서 잠시 놓여난다.

산길 역시 평탄하지만은 않다. 가파른 벼룻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야 할 때도 있었고, 때론 거친 바위를 기어올라야 하고, 험준한 오르막길에선 숨이 턱에 닿았다. 그러나 가끔 산야초 아름다운 미소로 반기는 오솔길도 있었다.

그랬다. 반평생!

돌아보면 그리 긴 인생은 아닐지라도 희, 노, 애, 락의 고갯길,굽이굽이 울고 웃으며 넘어왔다. 지금 나는 험준한 바위를 타고 애쓰는 순간이다. 온몸은 후들거리는데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리고 사력을 다해 바위 끝을 붙잡고 버티는 팔은 점점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시야는 흐려지고 정신까지 몽롱해져간다.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두 팔과 다리를 이젠 놓고 싶다.

아무도 없는 산길! 그 어느 누구도 같이 갈수 없는 인생길, 오직 나의 힘으로만 가야하는 길! 사람들은 많고,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세상! 그러나 혼자, 혼자서 걸어 가야하는 외로운 길이다.

곤한 육신 잠시 쉬어 가려 앉을 곳을 살피다가 눈길에 머무는 것이 있었다. 바위틈을 겨우 비집고 나온 여린 들꽃이 어느새 꽃 지운 자리 씨앗을 품었다.

작고 볼품없는 모습, 그 여린 몸으로 바위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꽃도 피우고 씨앗도 안았다. 박토든, 옥토든, 바위틈이든 그 어느 것 하나 따지지 않고 제 주어진 여건에서 그저 묵묵히 살아낸 여린 풀꽃! 그들에게서 어리석기만 했던 내 삶의 모습을 엿보았다.

‘남보다 좀 못하면 어떠랴!’

그러나 이 단순한 원리 앞에 난 늘 이유도 많고 조건도 많다. 머리로는 충분히 깨닫지만 가슴이 허세를 떤다. 가슴으로 이 좁은 가슴으로 보듬기엔 지구 밖의 언어 인 듯 알아듣지 못하고 언제나 남보다 앞서기 위해, 더 갖기 위해, 좀 더 쉽게 살아 가기위해 발버둥을 쳐댔다.

한 발 한 발 내딛지 않고는 정상에 오를 수 없는 진실함! 그렇게 흘린 땀방울로 만들어진 삶이야말로 진정 진솔한 삶이지 않을까!

어느새, 잎 새 마다 이는 맑고 투명한 바람과 가을빛에 초목들은 이미 제 모든 것들을 뿌리로 뿌리로 내려주고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소리도 없이 이별을 장엄하게 맞이하는 가을 산!

산을 오르며 삶속에서 채워온 노폐물들을 땀처럼 흘려버리는 비워냄을,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으며 흘린 땀으로 얻어낸 진실함을, 제 있는 자리에서 그저 묵묵히 살아 내고는 제 가진 것, 하나도 남김없이 그저 수분 한 방울마저도 뿌리로 씨앗으로 내주고 스러져가는 겸허함을 산은 내게 말없이 일러주고 있다.

미움도 원망도 채워가던 욕심들도 모두 한 점 바람 속으로 떨쳐내려 땀흘리다보니 어디선가 굵은 땀방울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나를 보듬는다.

내 삶 속에 서두름도, 포기도 하지 않으며 홀로 걷다가 지치고 외로우면 고목나무 등걸에 나를 뉘이고 바람이려니, 구름이려니 여유부리면 그 또한 삶에 대한 사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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