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 시·군에 지방선거 관련 동향파악 지시로 여론 뭇매
행자부는 10.26 보궐선거 관련해 전국에동향파악 지시

‘정보수집’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군사작전이나 정치사찰, 산업스파이 등의 단어가 연상되고 국가정보원 또는 기무사 등 무시무시한(?) 정보기관의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추석을 앞둔 9월14일 충청북도가 일선 시·군에 내려보낸 업무연락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한 출마예상자들의 동향을 파악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행정기관의 정보수집 활동이 다시 한 번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 충북도가 시군에 내려보낸 업무연락 일부
‘동향파악’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는 행정기관의 정보수집 활동은 요원들이 활동하거나 첨단장비를 이용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행정조직 전체가 정보를 흡수하는 ‘빨판’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저인망식’이다. 읍·면·동에서 올라온 정보가 시·군·구와 광역시·도를 거쳐 상황에 따라 행정자치부까지 전달되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의 동향파악은 1995년 민선 지방자치가 본격화되면서 시·도 단위 여론담당 부서(당시 여론계)를 폐지하는 등 기능이 약화됐지만, 2004년 2월 여론담당 부서를 부활하는 등 그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지방자치의 쌍방향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의 수렴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영동군이 공무원 노조 활동으로 중징계를 받은 공무원들의 일일동향을 파악한 사실이 드러난데 이어, 충북도가 지방선거와 관련해 동향파악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민의 수렴 등 순기능 보다, 인권침해와 정보의 정치적 이용 등 정보수집 활동의 역기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선거 동향파악, 이지사는 모르는 일
문제가 된 충북도의 업무연락은 도내 12개 시·군에 전달된 것으로, 내년 동시 지방선거와 관련한 출마 예상자(국회의원, 시장·군수 출마 대상)들의 동향과 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파악해 9월16일 오전까지 이메일로 제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 보도 이후 충청북도는 ‘행자부의 업무연락을 확대 해석해서 일어난 일’이라며 담당자의 단순 실수로 몰아붙였다.

행자부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업무연락을 통해 추석절 미담이나 우수사례 등 모두 8개 항목에 따라 동향을 보고해 줄 것을 요구했는데, 그 중에 8번 항목인 ‘10.26 보궐선거 관련 동향 파악’을 확대 해석해 ‘지방선거 관련 출마예상자 동향 파악’을 시·군에 지시했다는 것이다.

도청 간부 A씨는 이에 대해 “충북의 경우 보궐선거가 없어 해당사항이 없는데도, 시키지도 않은 업무연락을 시·군에 내려보내 의혹을 사게 만들었다”며 “사실 출마예상자들의 동향이야 신문을 보면 다 나와있는데 뭘 더 수집할 것이 있겠냐”고 이번 파문의 의미를 축소했다.

이원종지사도 이와 관련해 9월15일 열린 간부회의에서 “마치 디지털시대에 유성기를 쓰는 것과 같이 생각자체가 구시대적 발상이고 조직에 매우 위해한 행위를 한 것”이라고 간부들의 지도 부족을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궐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행자부로부터 업무연락이 내려온 만큼 각종 선거와 관련한 정치사찰 성격의 동향파악이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저명인사의 전입, 애경사까지 파악
행정기관의 동향파악은 상향식 구조를 택하고 있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특별히 파악해 올리는 보고도 있지만 읍·면·동의 자발적(?)인 보고를 기본으로 한다. 화재나 붕괴 등 사건·사고는 필수 보고사항이고 읍·면·동 단위로 이뤄지는 특수시책도 상부에 보고돼 행정 전반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집단 민원도 빼놓을 수 없는 보고사항인데, 읍·면·동 단위에서 동향보고를 은근히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이밖에도 건수를 채우는 차원에서 미담사례는 동향보고의 단골 메뉴다.

읍·면·동이 건수에 집착하는 것은 시·군의 읍·면·동 평가에서 동향보고 건수나 언론보도 건수가 가산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청주시내 한 동사무소 관계자 B씨는 “친절도, 예산절감 등과 함께 동향보고 건수도 동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다”며 “경쟁하듯 보고를 올리다 보니 하루 2~3건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저인망식으로 정보를 훑다 보니 저명인사의 전입이나 애경사, 주민들의 각종 행사 및 대회 수상 여부까지 낱낱이 보고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읍·면·동의 동향파악 보고는 업무연락 수준으로 기본 서식만 있을 뿐 별도의 결재라인을 갖추지 않고 있어 자칫 인권침해의 우려가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충청대학 행정학과 남기헌교수는 이에 대해 “자치단체의 시책에 대한 주민여론을 수렴하는 것은 동향파악의 순기능이 되겠지만 요인에 대한 감시 수준의 정보수집 활동은 명백한 인권침해로 볼 수 있다”며 “더구나 정보기관의 역기능을 애써 국민의 몫으로 돌려놓은 마당에 행정기관이 같은 행태를 되풀이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다시 관선 시대를 꿈꾸는가
어찌 됐든 지방자치가 본격화되면서 동향파악과 관련해 상·하급 기관 사이의 유기적 기능이 약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선 시대가 열리면서 민선 단체장 사이의 위계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관선 시대에는 읍·면·동에서 시·군으로 모아진 정보가 어김없이 도에 보고됐지만 지금은 시·군의 주요 행사나 미담사례만 가끔 올라올 뿐, 도에서 보고를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서도 제대로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관선 시절 동향 담당 부서에서 근무했던 공무원 C씨는 “과거에는 일간, 주간, 월간동향으로 나누어 보고체계를 갖췄으며, 주요 정책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시장·군수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지휘보고서를 올렸지만 지금은 시장·군수에게 불리한 내용은 어차피 다 걸러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도 단위에서 시·군 단위의 정보망을 장악하려는 노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신호탄은 지난 1996년 전국적으로 폐지됐던 도 단위의 여론수렴 부서가 2004년 2월 일제히 부활되면서 쏘아올려졌다.

1996년 당시 도 단위 자치행정과 산하 여론계는 민선 본격화와 맞물려 폐지되고 행정계원 가운데 한 사람이 동향 업무를 담당해왔지만 2003년 화물연대의 파업 등으로 말미암아 행정기관 간 정보공조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이듬해 전국의 광역시·도에 다시 여론담당(계)이 신설된 것이다. 이에 따라 충청북도에도 사무관 한 명을 포함해 4명이 여론담당(계)에 배치돼 있다.

특히 충청북도는 9월22일~23일까지 수안보에서 도내 시·군의 동향파악 담당자들을 불러모아 워크숍을 열 계획이었지만 이번 사태가 불거지면서 무기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워크숍은 민선 이후 도와 시·군 동향파악 담당자 사이에 유대관계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에서 유기적 기능을 복원하기 위한 의도를 내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향 담당자들 “우리도 애환이 있다”
일선에서 뛰는 동향 담당자들의 복장 및 소지품은 언론사의 취재기자들과 유사하다. 업무행태도 비슷해 동일한 장소에서 외근 활동을 벌이지만 기사 대신 보고서를 올리는 것이 다른 점이다.

시·군 동향 담당자들은 읍·면·동에서 올라온 정보와 자체 수집한 정보를 정리해 이튿날 오전 8시 이전에 보고서를 비서실에 제출한다. 매일 아침 보고되는 ‘언론보도 스크랩’에 앞서 시장·군수가 출근과 동시에 받아보는 첫 번째 보고서다.
여러 공공기관에서 유용하게 이용하는 ‘주간행사표’도 이들이 정보를 취합해 만든다.
‘민심을 파악해 시정에 반영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지만 읍·면·동 단위에서 올라오는 내용이 부실해 ‘영양가(?)가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이 이들의 하소연이다.

특히 읍·면·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터로 전환되면서 직원들이 크게 감축돼 읍·면·동장이나 주무(사무장) 등이 몸소 발로 뛰지 않으면 생생한 정보가 모아지지 않는다는 것.

사무실에 앉아 있을 틈도 없이 거리로, 논밭으로 뛰며 상황에 따라서는 각종 민원에 대한 해결사 역할도 자임하지만 유류비나 활동비 등 별도의 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동향 담당자 전용 휴대폰이 지급되거나 사안에 따라 접대비 등을 처리할 수 있는 신용카드가 지급되는 것이 이들에 대한 남다른 대우라면 대우다.

청주시의 경우 동향 담당자를 청주청원통합 관련 부서에 배치해 놓았고 청원군은 공무원 단체 관련 부서에 배치하는 등 시·군의 현안에 따라 소속 부서도 뒤죽박죽이다. 민선 시대가 되면서 관선 시대에 비해 위상이 약화된데 따른 결과다. 일선에서 뛰는 현역 담당자들의 경우 자신의 활동 범위에 대해 스스로도 감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다.

실제로 관선 시대에는 아예 정치인의 연설문까지 받아 적어 보고 할 정도로 구체적인 정치사찰이 이뤄져, “정보수집 활동을 하던 동향 담당자가 관계자들에게 붙잡혀 혼쭐이 빠지게 당한적도 있다”는 것이 한 동향 담당자의 귀띔이다.

충청대학 남기헌교수는 이에 대해 “민선 시대의 동향파악은 행정의 쌍방향성을 확보하기 위한 통로로 활용돼야 한다”며 “이에 걸맞게 그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