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습관처럼 산을 오른다.
시도 때도 없이 가고 싶다 생각하면 하던 일도 내던지고 집을 나선다. 혹여 그리운 이 가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정상을 향해 걷다보면 조금씩 즐거워지고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산길은 내가 사유하고 몽상하는 곳 이기도하고 철따라 피고 지는 들꽃들은 삶의 회의가 들 때마다 경이로움으로 다가와 위안을 주고 삶의 겸손함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가을 멀미를 시작하는 내게 산길 옆에 피어난 작은 풀꽃들이 눈을 맞추고 미소를 띠며 반겨준다. 개 여귀와 물봉숭아 쑥부쟁이 며느리밑싱게 고마리가 팔월의 끝자락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구월이 깊어갈수록 온 산이 들꽃의 향연이다. 그 중에서도 고마리 풀꽃이 장관이다.

산자락을 따라 군락을 이루며 피어난 흰 꽃은 마치 봉평의 메밀밭을 옮겨온 듯 하며 하얀 꽃 위로 날아다니는 빨간 고추잠자리와 쪽빛 하늘의 삼색조화는 세속의 근심을 말끔히 씻어준다. 잎이 창검과 같이 생겼고 별 모양을 닮은 꽃은 여러개의 꽃봉오리가 한데 뭉쳐서 피어나 새벽하늘에서 졸던 별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려앉은 듯 반짝거리고 있다.

흰색과 연분홍색이 섞여 무리지어 피어있는 꽃들은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름다움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리보이는 듯 하다. 하수도 주변이나 개울가 근처에서 볼 때는 하찮은 풀꽃으로만 보였으나 산자락을 온통 뒤덮고 있는 광경은 자신이 몰랐던 의외의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풀꽃의 매력은 고혹과는 거리가 멀다. 교태가 없기 때문이다. 소박한 듯 은근하면서도 돋보이는 존재감이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 은 계절 탓 일까. 그들끼리 어울리고 뿌리로 엉켜서 끈질기게 버티는 고마리 풀은 태풍이나 장마에도 끄덕없이 산을 지키는 잡초이지만 사람들은 등산로에서 발목을 잡는다고 밟고 베어내고는 한다.

 나름대로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멸종 시키려 애를 쓴다.
산을 오르내리며 유심히 살펴보던 고마리 풀의 사계는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 진실 되고 아름다운 삶이다.  예전에는 봄이면 연한 새순은 뜯어다 나물로 무쳐먹기도 하고 상처가 났을 때 는 뿌리와 잎을 으깨어 상처 난 곳 에 부쳐 지혈을 시키기도 했다.

여름장마가 끝나면 풀은 무성하게 자라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독성은 강해져 먹을 수 도 없는 외면당하는 잡초가 되어 버린다. 가을로 접어들어 꽃이 피기 시작해야 예상치 못했던 변화에 놀라고 보잘 것 없던 들풀이 저렇듯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는 경이로움에 감탄한다. 그리고 꽃이 지면 또다시 잊혀지는 풀꽃, 그러나 고마리풀은 숲을 기름지게하고 산을 지키며 묵묵히 견뎌내는 인내심을 가르치고 뭉쳐야 산다는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다.

삶의 여정 속에서 많은 이 들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있는가 하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듯이 고마리 풀은 환영받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말없이 자연을 지키고 있다.

가을은 인생의 정직한 열매를 요구하는 계절이다. 고마리풀은 꽃이 핀 자리마다 단단한 열매를 만들어 바람에 흔들릴 때 마다 검은 씨를 땅에 떨어뜨리며 화려하지도 않고 부끄러울 것도 없었던 삶을 조용히 소멸 시킬 것 이다.

서툰 삶을 살아오면서 나는 어떤 모양과 색깔, 또한 무슨 향기의 꽃이었으며 어떠한 열매를 맺을 것 인가. 남은 여정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들풀의 삶을 닮아 가리라.

서서히 단풍들기 시작하는 나무들과 쇠잔해져가는 풀꽃들을 바라본다. 스스로의 자리를 알고 물러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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