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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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 육정숙 시민기자
  • 승인 2005.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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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모든 사람들을 시인이 되게 한다.

초록 숲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에, 졸졸거리며 흘러가는 개울물에, 가을빛이 튀면 그 맑고 투명함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 가을빛을 따라 시인들의 눈은 아름다움을 쫒고 가슴은 사랑을 쫒는다. 이 가을은 잔잔한 호수면의 파문처럼 사랑이 사람들의 가슴으로 잔잔하게 퍼져 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가을이 오면 가끔 생각나는 부부가 있다.

십삼사 년 전 무렵, 청주 외곽으로 산이며 과수원, 논밭을 경지정리 하여 아파트를 짓고 분양을 했다. 그래서 아파트 근처엔 미처 아파트 부지로 들어가지 못한 허름한 집들이 더러 있었다.

작은 오두막 한 채!

늦은 저녁, 오렌지색 불빛이 작은 종이 창문 틈새로 새어 나오던 집, 가을 저녁이면 청국장 끓이는 냄새가 맛있게 나던 집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보기에 너무도 불편해 보이는 집이었다. 그러나 그 집에 사는 세 식구는 웃음소리가 늘 그치지 않았다. 소리가 위쪽으로 잘 들려서인지 아파트 9층에 살던 나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와 베란다 창에 기대어 그 오두막을 내려다보는 것이 하나의 일과가 되었고 또 그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일이 유일한 즐거움이 되었었다.

그 무렵 나는 큰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차츰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기에 아마도 그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졌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은 게으름을 피우며 농장 일을 등한시 하고 직원들에게만 맡겨 놓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농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 했다. 아들들 학교에 보내고 내가 앞장을 서서 농장에 들어갔지만 남편은 직접 일처리를 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맡긴 채, 개만 데리고 놀다가 돌아오곤 했다. 열심히 연구하며 살아도 힘든 농장일인데 늘 전화로만 지시하고 직원들에게 잘못 한다고 전화기에 대고 소리만 질러댔다.

아이들 뒷바라지며 맏며느리 역할이며 집이 크다 보니 집안 살림하랴 농장까지 다녀오려니 체력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편이 열심히 농장을 돌본다면 같이 농장을 다니려 했지만 여전히 게으른 모습에 늘 다툼이 잦았다. 남편과의 짜증스런 나날들로 힘든 생활을 견디고 있을 즈음이었으니 오두막에 살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더욱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남루한 모습으로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아들을 리어카에 태우고 남편은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며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도란도란 웃음꽃 피우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나까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들은 노점행상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아들은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겨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데리고 오곤 했다. 작은 오두막에서 벌이도 시원찮을 텐데 저토록 평온한 모습으로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드는 것이 도대체 무얼까? 나는 버릇처럼 종종 그 집 앞을 서성 거렸다.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부터 며칠동안을 남편과 아들만이 평소와 다르게 일찍 석양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내가 넘어지면서 발목에 금이 가 깁스를 했던 것이다. 그들 부부를 잘 아는 사람이 그 아내가 다치던 날, 병원에 같이 갔었는데 아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만나 지금껏 고생만 했는데 돈으로 호강은 못시켜 줘도 몸과 마음은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그렇게 울더라고.

아내의 간호를 어찌나 잘하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행복 할 정도란다. 아내의 아픔이 자기 아픔이듯 사랑을 퍼주는 남편의 마음하나!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 줄줄 아는 부부였던 것이다. 상대방의 아픔이 마치 내 아픔이듯, 절절한 마음이었으니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내가 몸살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앓고 있을 때 남편이 링거액을 꽂아 주었다. 연령생인 아들 녀석들이 두 살, 세살 무렵이다. 두 세 시간 정도만 어린것들을 봐주고 나가면 좋으련만 시간나면 봐달라고 부탁한 남의 일 보자고 하필 그때 나간다고 한다. 하도 기가 막혀 짜증을 부렸더니 나가다 말고 성큼성큼 들어와 링거액 병을 그대로 뽑아 밖으로 던진 일이 있었다. 지나간 일 새삼스레 꺼내면 무엇할까마는 경제적 여건이 좋은들 무슨 소용인가! 없는 것 보단 있는 게 낫겠지만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는 무엇보다도 그 마음속에 사랑이 고여 있어야 한다.

비록 노점상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그들이야 말로 진정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내의 아픔에 가슴 저리도록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남편을 바라보며 난 그녀가 몹시도 부러웠다. 아무리 넓고 큰집을 지니고 외제차를 끌고 다닌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루 한 끼로 주린 배를 간신히 채울지라도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그들이야 말로 진정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올 가을은 가을빛의 따사로움으로 살기 힘들어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마다 사랑으로 사랑으로 철철 넘쳐흘렀으면 좋겠다.

모두가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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