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돌리기에서 골프 회동으로 문화 이동
‘누구랑 골프쳤냐’에 따라 정치흐름 읽을 수 있어

박정희 전 대통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밀실과 씨바스 리갈이다. 시해 당시에도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측근들과 어울려 술시중을 받으며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화국까지만 하더라도 이같은 요정문화가 밤의 정치를 대변했다.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돌리는 것은 예사였고, 가끔 술이 덜 깬 정치인들의 돌출행동이 가십거리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5.16 쿠데타 직후 골프장(서울컨트리)을 자주 드나든 기업인들을 잡아들여 부정축재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이는 등 골프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가졌던 경우다.

그러나 조사대상 1순위로 일본에 머물다 귀국한 고 이병철 전 삼성 회장과 면담을 하면서 시각을 교정하게 된다.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행한 기업인들을 모두 풀어준 것도 이 전 회장의 설득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2인자였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지독한 골프 마니아였다. 1990년 민정당과 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민자당)으로 뭉치는 3당 합당의 단초를 마련한 것도 김종필 신민주공화 총재와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골프 회동이었다.

그 이후로 ‘골프 회동’이라는 단어는 신문 정치면에 단골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가에서는 ‘누구랑 골프쳤냐’에 따라 정치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골프장 회동을 발판으로 집권에 성공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작 골프를 장려하지 않았다. 골프를 한국병으로 간주해 공직사회 전반에 ‘골프장 금족령’을 내렸던 것이다. 골프장에서 골프만 치지 않는데 따른 폐해를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골프장이 막후접촉의 장소로 손꼽히는 데는 충분히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골프를 함께 치면 5시간 정도를 함께 움직이게 되고, 숨이 가쁘도록 격렬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의 문이 열리게 된다.

‘굿샷’을 외치며 상대를 추켜세우다 보면 인간적인 친밀도도 금세 높아지게 된다. 여기에다 클럽하우스 등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긴밀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요정이나 유흥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것 보다 비용면에서도 저렴하다.

이렇다 보니 이른바 골프 회동은 정치권에서 우리사회 전반으로 급속하게 확산됐다. 지역정가는 물론 공직사회, 경제계에서도 골프로 정치를 하고 로비를 한다. 그린피나 식대를 내는 것도 모자라 내기 골프(속칭 빼먹기)등을 하면서 돈을 잃어주는 경우도 있다.

일반인들의 내기 골프 금액은 보통 20만원 안팎이지만 그 몇 배에 이르기도 한다. 늦깎이로 골프를 시작한 D씨는 “골프에 대해서 한동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울리는 사람들의 화제가 온통 골프라는 것을 느낀 뒤 골프채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며 “골프는 이제 대중 스포츠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