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실향민 강태원옹이 전 재산인 270억원을 불우이웃을 위해 내놓아 신선한 감동을 안겨줬다. 또한 지난해 1백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음성 꽃동네에 익명으로 기부한 장본인도 강옹으로 밝혀졌다. 해방직후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강옹은 막노동판에서 쉰 떡을 사먹어가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어렵게 모은 재산일수록 집착이 강하고, 혈육이 귀할수록 피붙이 챙기기가 남다는 우리네 인지상정에 비추어 그의 결단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는 언론인터뷰를 통해 ‘돈이 있는 사람이 앞장서야 우리 사회가 산다’ ‘자식을 제대로 키우려면 재산을 물려주면 안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부의 사회환원이란 측면에서 선진적인 기부철학 몸소 실천한 셈이다. IMF이후 80:20이라는 빈부격차의 강화에 대해 사회통합의 기본철학이 무엇인지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져준 것이다. 이튿날 대학교수 출신의 50대 사업가가 200억대가 넘는 재산을 모교인 아주대에 쾌척한 미담이 보도돼 또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의 창업자인 황필상씨는 19일 아주대를 방문해 회사 주식의 90%인 12만주(시가 200억원)와 현금 15억원을 전달했다. 73년 아주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황씨는 학교측의 지원으로 프랑스 국비장학생으로 유학해 공학박사학위 취득했다. 84년 귀국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91년 수원교차로를 설립하면서 교단을 떠났다.
황씨는 ‘오늘의 내가 있도록 해 준 아주대에 감사한다. 앞으로 더 벌어들이는 재산이 있다면 그것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대학병원에 자신의 시신기증 서약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져 ‘남김없이 주고가는 삶’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신의 기부를 환영해 준 두 딸에게는 ‘유산은 주머니에 남는 게 아니라 머리와 가슴에 남은 것’이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강옹과 황씨의 결심은 어떤 공익광고의 문구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죽어서 한점 흙으로, 티끌로 돌아갈 이승에 돈과 인연의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은 어쩌면 무욕의 경지라고 할 수도 있다. 가진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우리 주변에는 나눔의 미덕을 발휘한 이웃들이 적지않았다. 청주의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는 충북대에 자신의 전 재산을 기탁했던 분이다. 홀몸으로 억척스레 평생을 모은 1억원의 돈을 지역대학에 장학금으로 내놓은 할머니도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이같은 기부에 대해 재산을 물려줄 후손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평가절하의 시각도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강옹과 황씨가 자식들의 ‘주머니’가 아닌 ‘머리와 가슴’에 유산을 남겨주기로 한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뭉친 한국사회에서 최상위인 혈연에 초연한 것은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필자가 두 사람의 미담을 언론에서 접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학연의 굴레로 마음을 썩이던 상황이었다. 학교동문인 지역유지의 신상에 관한 문제성 기사가 본보에 보도되면서 몇몇 선배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대표이사로 보나 자네로 보나 어떻게 동문지간에 그런 기사를 낼 수가 있느냐’는 원초적 감정표현이었다. 엉거주춤 응대하며 화살을 피해갔지만, 인간적 자괴감이 한동안 가슴을 짓눌렀다. 이상적인 인연과 현실적인 연고가 뒤엉켜있는 한국적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한번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내 평생 자식에게 물려줄만한 재운이 따르진 않을테고, “그 놈들의 ‘머리와 가슴’에 무언가는 남겨주고 떠나야 할텐데”라는 새로운 고민도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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