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천호 전 교육감 석교초, 한벌초 제자들 추모위 발족
국가유공자 서훈 이어 흉상 건립, 장학회 설립 준비중

6월20일 타계한 고 김천호 전 충북도교육감을 기리기 위한 추모위원회가 활동에 들어갔다. 관이 주도하는 형식적인 추모위원회가 아니라 김 전 교육감의 초등학교 제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추모위원회다. 그래서 단체 이름도 ‘교육감’이 빠진 ‘고 김천호 선생 추모위원회’다.

정확히 말하자면 석교초를 1970년에 졸업한 28회와 한벌초를 1971년에 졸업한 21회가 주축이 됐다. 석교초 28회는 김 전 교육감이 한벌초로 전근을 가기 전에 마지막 담임을 맡았던 당시 6학년생들이고, 한벌초 21회는 한벌초에 첫 부임할 당시 6학년생들이다.

이들은 7월14일 첫 모임을 가진데 이어 9월9일 청주시내 한 음식점에서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기인 모임을 가졌다. 석교초 출신인 노영민(49) 의원이 추모위원장을 맡았고, 한벌초 출신인 KT 임효성(48) 청주지사장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추모위 관계자들이 염려하는 것은 스승을 기리는 제자들의 순수한 뜻이 곡해되거나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의 취재에 대해서도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담임선생님의 이름은 몰라도
임효성(한벌초 21회) 부위원장이 기억하는 ‘김천호 선생님’의 옛 모습은 각별하다 못해 아련하다. “6학년 담임선생님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도 교육사랑과 학교사랑, 제자사랑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김천호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다”는 것이다.

임 부위원장은 “당시만 해도 변두리 학교였던 한벌초에 고아가 유난히 많았는데 김 전 교육감은 이들에게 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해 주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학생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후견인 역할을 하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는데, 지금은 토목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된 김 모씨 등이 그 예다.

김 전 교육감은 또 태권도와 축구 등을 지도했는데, 훗날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뒤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지낸 최순호(46·한벌초 23회)씨를 김 전 교육감이 발굴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운동복만 입고 다니던 호랑이선생님
석교초에 교편을 잡을 당시 김 전 교육감의 별명은 호랑이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제자들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남달라 ‘사랑의 매’를 맞지 않은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는 것. 그러나 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그늘진 처지에 있던 학생들에게 유난히 자상했던 김 전 교육감의 면모는 석교초 졸업생들에게도 생생하게 각인돼 있다.

김 전 교육감은 당시 늘 운동복 차림이었는데, 따라서 성년이 된 뒤에도 김 전 교육감을 체육교사로만 알고 있던 제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운동복의 비밀은 나무를 해다 땔감으로 쓸만큼 곤궁했던 살림에 양복 한 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데, 제자들이 이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성년이 된 이후에도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주 캐나다 한국교육원장으로 일하시고, 영어 번역서와 여러 권의 저서를 내시는 등 늘 행동으로 우리를 채찍질 했습니다” 추모위 황은주(49·공무원) 간사가 김 전 교육감을 그리워하는 이유다.

열린우리당 노영민(석교초 22회) 의원도 6학년 때 담임이었던 김천호선생님을 사표(師表)로 여기며 살아왔다.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고 싶다’며 늘 자신을 견책하던 김 전 교육감을 참스승으로 여기며 따랐다는 것이다.

노영민 추모위원장은 “선생님이 교육감이 된 후에도 사제지간에 끈끈한 정을 나눠왔다”며 “교육감을 안했더라도 우리는 추모위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위원장은 또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 존경할 인물이 흔치 않았다”며 “존경할만한 분을 발굴하고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모위원회를 구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노영민 위원장은 “친구들끼리 모였는데 한 친구가 ‘선생님은 아직도 우리를 가르치신다’고 말하더라”며 애도를 하기 위해 추모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모위를 만들었다는 것을 누차 강조했다.

흉상제작, 유고집 발간 등 준비
추모위는 7월 첫 모임을 가진 뒤 도 교육청과 함께 김 전 교육감의 국가유공자 서훈을 추진해 8월31일 청주보훈지청으로부터 최종 결정을 통보받았다.
추모위는 또 김 전 교육감의 흉상제작과 유고집 발간, 홈페이지 개설 등을 추진 중이다. 흉상은 석교초 제자인 서양화가 손부남(49·석교초 22회)씨의 주선으로 서울의 유명 조각가에게 의뢰할 예정이다.

추모위 결성 소식이 알려지면서 두 초등학교의 다른 기수에서도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고 교육 공무원 가운데 일부 인사들도 동참을 희망하고 있다. 추모위는 이에 따라 조직 확대를 검토하고 있지만 추모위를 발족한 정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철저히 ‘황소걸음’을 원칙으로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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