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복역, '전향' 이유로 장기수 송환에서 제외돼
북에 아내와 네 아들 생존, 북 송환여론 일어

충북 진천 출신의 장기수 정순택씨(84)가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 병석에 누워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청주상고 출신으로 지난 58년 남파된 정씨는 고교동문인 극작가 한운사씨를 만나려다 검거된 뒤 31년간 간첩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89년 석방된 정씨는 2000년 정부의 장기수 송환정책에도 불구하고 '전향 장기수'라는 이유로 제외됐다. 북에 아내와 아들 넷을 두고 있는 정씨는 북송허가를 요구하며 통일시민단체가 서울에 마련한 장기수 보호시설에서 생활해왔다. 다음은 12일자 <한겨레신문> 관련기사 전문이다.  
 
 
<한겨레신문>“몸이 이래도 조만간 북녘 땅을 밟을 거라는 생각만 하면 기운이 펄펄 나. 요 며칠 별다른 좋은 소식은 없지?”

   
▲ 말기암을 선고받은 정순택씨가 11일 병실에 누워 있다. 그는 2000년 9월 비전향장기수 1차 송환 때 전향했다는 이유로 가족이 있는 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사진 한겨레신문 펌
호흡조절기와 음식물 튜브 등을 잔뜩 몸에 붙이고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도 정순택(84)씨는 ‘북쪽’ 이야기가 나오자 주먹을 불끈 쥐며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2000년 9월, 비전향장기수 1차 송환 때 ‘전향 장기수’라는 이유로 북으로 가지 못했던 정씨는 최근 대장암이 간에 전이돼 6개월을 넘길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이 차마 그에게 이를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자신이 탈장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으며, 곧 퇴원하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북송 허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8일 입원한 뒤에도 그는 병실을 들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없느냐”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언제 갑자기 돌아가실지 알 수 없는데, 저렇게 간절히 북송 허가 소식만 기다리니 암에 걸렸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을 편히 마감할 시간을 드려야 할텐데….” 비전향장기수북송추진위원회 권오헌 대표는 안타까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충북 진천이 고향인 정씨는 상공부 공무원으로 일하다 49년 월북했다. 그는 6·25전쟁 뒤 북 기술자격심사위원회 책임심사원으로 일하다 1958년 남으로 내려와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무려 31년5개월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고서야 89년 ‘사상전향서’를 쓰고 가석방 됐다. 그러나 그가 ‘신념의 고향’ 북한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99년 그는 “고문과 강압에 의한 전향서는 무효”라며 공식적으로 ‘전향철회’를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1차 북송 때 정씨는 전향자로 분류되어 북으로 가지 못했다. 그와 함께 1차 북송에서 빠졌던 정순덕씨가 지난해 세상을 떠나 이제 1차 송환대상자 가운데 그만이 홀로 남쪽에 남아 있다.

정씨는 자신을 ‘마지막 비전향장기수’라고 불렀다. 2차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28명의 또다른 비전향장기수들이 있지만, 자신의 북송 여부가 남은 사람들의 ‘운명’을 가늠하는 방향타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정씨를 돌봐온 권오헌 대표는 “의문사위원회도 전향제도가 위헌성과 위법성이 있다고 밝힌 마당에도 정부가 북송을 미루고 있어 75~90살이 넘은 고령의 비전향장기수들이 고통 당하고 있다”며 “인도주의와 동포애적 차원에서라도 이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가족과 만날 수 있도록 북으로 보내 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뇌출혈로 병상에 있던 이인모 선생도 송환 됐잖아. 나는 아직 건강하니 가능성이 있는 거지? 북한에 아들 넷과 아내가 있어. 살아 있기나 한지 모르지만…. 기자 양반, 나 좀 빨리 보내달라고 써 주오.”

계속되는 밭은 기침과 구역질을 애써 참아내면서 짜낸 정씨의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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