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냐 실종자냐 올 연말까지가 고비

지난 2일 청주 영운동성당에서 조촐한 행사가 하나 열렸다. 고작 100여명이 참석한 외형만 본다면 말 그대로 작은 행사였지만 의미는 특별했다.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촉구대회, 하지만 무려 18년이나 지난 사건을 이슈화하는 것은 아무래도 버겁다.

 실제로 우리에게 곱상한 얼굴의 마유미로 각인된 이 사건은 이미 많은 국민들에게 잊혀졌다. 이날 행사에 앞서 주최측이 기자회견까지 열었지만 막상 행사장은 언론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언론에서조차 이 사건은 점차 잊혀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KAL858기 사건이 청주에서 얘기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곳 성당의 신성국신부 때문이다. 그는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오래전부터 활동해오고 있다. 당시 안기부가 발표한 수사내용이 거짓과 조작이라고 누구보다도 확신한다. 그래서 성직자로서 모든 신념과 양심을 걸고 이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신성국신부는 늘 주장한다. KAL858기 사건은 우리사회의 상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으로 이 사건을 정리해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한 순간에 무려 115명의 행방이 묘연하게 된 이 사건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지난 18년동안 끊임없이 의혹만 제기됐지 이에 대한 속시원한 대답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남은 가족들은 이들 115명에 대해 ‘희생자’라는 말이 붙여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종자로 규정해주길 바라면서 그들 스스로 유족이 아닌 실종자 가족이라고 부르며 20년 가까이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다. 안기부에서 특별 관리하는 마유미의 ‘입’ 외엔 사라진 가족들의 죽음을 확인할만한 아무런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유족들이 사고 후 18년동안이나 대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KAL858기 사건은 또 한번 전환점을 맞았다. 실종자 가족들의 절규가 비로소 반향을 일으켜 이 사건이 참여정부의 과거사 진실규명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2월부터 가동에 들어 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물론 국정원은 전신인 구 안기부의 초등수사 오류를 이미 인정한 상태다. 진상규명대책위는 적어도 올 연말까지는 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만약 참여정부에서도 이 사건의 의혹들을 풀지 못하면 국민들의 실망감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엄밀히 말해 친일규명이 과거사의 재정립이라면 KAL858기의 진상규명은 현대사의 재정립인 것이다. 그만큼 이 사건은 국가 미래에 관한 정체성의 문제이고, 때문에 그 결과에 쏠리는 국민들의 시선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숙명적인 의미를 띤다.

국정원이 불법 도청이라는 오명을 씻고 새로운 위상을 갖추기 위해서도 이 사건은 반드시 규명돼야 할 필요가 있다. KAL858기의 진실, 최근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들에 근거해 이를 집중취재했다 . / 편집자 주

   
▲ 실종자 가족들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탑승자의 죽음을 입증할만한 근거를 제시해 달라는 것이다. 2일 진상규명 촉구대회에서 그간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KAL858기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1분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한공 소속 보잉 858여객기가 인도양 안다만해 상공에서 갑자기 실종됐다. 탑승객 115명 가운데 승무원을 제외하곤 모두 중동 근로자였다. 정부는 공중 폭발에 의한 사고로 보고 바레인 태국 미얀마 등 사고 해역의 국가들과 공조해 긴급수색에 나섰으나 폭발의 단서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단 이틀만에 폭파사건으로 단정, 그 범인으로 하치야 마유미(김현희)와 하치야 신이치(김승일)를 바레인에서 검거한후 사건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한다. 하지만 사고 발생 불과 10일만인 12월 9일 한국정부는 수색작업 중단과 함께 현지조사단까지 철수시켜 유족들의 반발을 샀다. 실제 수색은 8일밖에 안 된다.

범인으로 체포된 김현희는 대통령 선거 하루전인 12월 15일 극적으로 한국으로 인도돼 대중앞에 공개됐고, 다음날 여당의 노태우후보는 갑자기 증폭된 국민들의 반공정서에 힘입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다. 다음해 1월 15일 안기부는 공식발표를 통해 KAL858기 사건을 △88서울올림픽 방해 △선거분위기 혼란야기 △남한내 계급투쟁촉발 목적으로 김정일이 김승일 김현희 두 북한공작원에게 친필 공작지령을 내려 대한항공기를 폭파한 사건이라고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이 사건이 조작이란 의혹은 이 때부터 불거졌고 지금까지 그에 따른 공방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후 김현희는 89년 2월 3일 서울지검에 의해 살인죄, 항공기폭파치사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다음해인 90년 3월 27일 대법원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한달도 안된 4월 12일 이례적인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김현희는 수기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발간하며 반공강연 등 사회활동을 벌이다 97년 12월 전직 안기부 수사요원 정모씨와 결혼,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평범한 주부로 살고 싶다는 김현희는 그러나 KAL기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던 2003년 돌연 잠적,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김현희에 대한 조사를 가졌는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 운동은 2002년 9월 국회청원과 2003년 11월 천주교 사제 115명 선언으로 급물살을 탔다.

KAL858기 사건의 의혹은 그동안 숱하게 제기돼 왔고 최근엔 관계자와 전문가들에 의해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남으로써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 중에서 관심을 끌만한 사안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블랙박스 수색의 허점
항공기사고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블랙박스 분석이 필수다.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는 블랙박스 발신음을 감지하기 위한 수중공명위치 탐지기 동원이 절실했는데도 제작사인 보잉사로부터 이 장비를 가져오지 않은채 형식적인 수색을 한 후 불과 10일만에 이마저 중단했다. 때문에 블랙박스는 물론 비행기 잔해나 탑승자들의 유품으로 인정할만한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물론 당국은 사고 후 일부 비행기 잔해와 유품들을 제시했지만 오히려 번번이 의혹만 증폭시켰다. 기체 잔해라고 제시된 이것마저 안기부에 의해 슬그머니 폐기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KAL858기가 실종되기 하루전 인도양에서 추락한 남아공의 점보기의 경우 수심 4천미터에서도 잔해가 발견됐고, 소련의 미사일에 요격된 KAL007기 역시 1년여가 지나도록 부유물이 발견된 것과는 극명하게 비교된다. KAL858기처럼 시체 한구, 유품 하나, 블랙박스조차 발견되지 않은 여객기 사고는 세계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다.

● 북한은 과연 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테러를 저질렀나?
“사건이 난 1987년 남북한의 상황은 88올림픽을 둘러 싸고 분산개최 문제로 줄다리기를 할 때다. 당시 북한은 탁구 등 5개 종목 이상을 요구했고, 남측에서는 곤란하다며 서로 밀고 당기는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 언론의 보도를 보면 북한은 오히려 올림픽 공동개최에 대비해 경기장과 선수촌을 짓고 있었다.” 이는 전 감사원 직원 현준희씨가 2001년과 2002년 언론에 공개한 것으로, 사건의 진실규명과 관련,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공교롭게도 당시 북한은 남측이 김정일 지령에 의한 테러로 몰고가자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사 등을 통해 계속해서 성명 및 논평을 내며 남측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을 달았는데 이 역시 한참 후에야 확인됐다. (사진) 시종일관 북측이 누명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 비난을 쏟았고, 북한의 이같은 대응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신성국신부가 최근 북한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쪽 관계자에게 “북한이 테러한 게 맞냐”고 물으니까 “그 문제는 남쪽에서 다 만들고 떠든 것이니 남쪽에 물어 봐라”는 답변이 돌아 왔다는 것이다.

● 안기부 발표대로 KAL858기는 김현희가 사용했다는 PLX와 C-4 콤포지션으로 폭파됐을까
이에 대한 최근 전문가들의 증언은 “사실이 아니다”이다. 사용된 폭약이나 그 전후 과정에 대한 당국의 발표는 억지로 꿰맞춰진 의혹이 짙다.

● 김승일의 실체
김현희와 함께 테러에 가담한 김승일(하치야 신이치)은 북괴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사부소속 특수 해외공작원이라고 처음 발표됐다. 안기부 자체 조사에서 김승일은 1984년 9월 21일부터 26일까지 한국에 체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진상규명대책위가 조사한 결과는 다르다. 김승일은 제주도 출신으로 실명이 이지우이고 1942년 께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60년대 초 입북했다.

그후 1967년부터 1970년까지 남한에서 간첩으로 활동하다 체포된 적이 있다.(한국일보 87년 12월 4일자 보도) 이후 1984년 9월 21일 서울에 입국, 9월 26일까지 프레지던트 호텔에 투숙하기도 했다. 이런 전후관계에 근거해 신성국신부는 김현희와 김승일은 북한지령을 받은 테러범이 아니라 ‘안기부 공작원’일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한다.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가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임을 확인시키기 위해 72년 11월 평양을 방문한 남북조절위 남측대표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증정하는 화동을 김현희라고 했지만 나중에 정희선이라는 여인으로 밝혀졌고 그 때 같이 제시된 2장의 사진도 김현희가 아님이 확인됐다. 이 때문에 김현희가 가공인물일 것이라는 의혹은 여전히 불식되지 않는다. 특히 김현희의 수기가 안기부의 수사발표내용과 무려 80여군데나 달라 의문을 증폭시켰다.

KAL858기가 실종된 1987년은 전두환 정권 말기로, 시국 사건이 특히 많았다. 1월에 발생한 수지김 사건, 박종철고문치사사건 등 역사의 단죄를 받은 시국 조작사건은 물론 6·10 민주화항쟁, 6·29선언 등 국가 운명의 대세를 가른 굵직 굵직한 일이 많이 터지는 바람에 연말 대통령선거까지 혼란한 정국이 계속됐다. 이 때문에도 KAL858기 사건의 조작의혹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전두환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아웅산 테러사건(1983), 김포공항 폭파사건(1986), 평화의 댐 국민사기극, 수지김 사건, KAL858기 사건 등은 하나같이 국민들에게 반북, 반공정서를 자극해 국면전환용으로 악용됐다는 점에서 불신은 더 불거지고 있다.

지금으로선 KAL858기의 폭파나 추락을 입증할만할 보편타당한 물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의 전말은 어차피 당시 안기부 관계자와 김현희에 의해 밝혀질 수 밖에 없다. 결국 당초 수사가 철저하게 김현희의 입에만 의존한 것 못지 않게 진상규명의 열쇠 또한 김현희의 입에 달렸다. 굳이 실종자 가족들의 주장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정할만한 비행기잔해나 유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 사건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 준다. 때문에 김현희의 수기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의 속편은 언젠간 ‘이제 진실을 말하고 싶어요’가 될지도 모른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를 애타게 기다리며 지난 18년을 인내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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