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조중동 ‘메이저 3형제’가 특유의 막강 화력을 앞세워 ‘이회창 구하기’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지난 8월 1일 한나라당 의원들의 검찰청 집단항의방문(?) 이후 채 보름도 안되는 짧은 시기에 사설만 각각 조선일보 8개, 중앙일보 6개, 동아일보 5개씩을 토해내는 못말리는 열정을 과시했다. 영민하신 독자들께서는 주마간산 식으로 제목만 일별해도 조중동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강 파악하실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들
△벌써부터 ‘大選 사생결단’인가(8.3) △‘兵役논란’ 이번에는 최종결론을(8.6) △服役者가 수사관 행세를 했다?(8.7) △녹음테이프 즉각 내놓아야(8.7) △둘 중 하나는 政界 떠날 각오를(8.8) △149 차례나 불러다 무얼 했는지(8.9) △녹음테이프 眞僞 더욱 아리송(8.13) △檢察과‘김대업 조사활동’(8.14)

<중앙일보> 사설들
△검찰 수사의지를 주시한다(8.5) △’병풍’ 정국 이래도 되나(8.6) △‘兵風 테이프’ 공개 왜 미루나(8.7) △‘김대업 수사관’ 진상 밝혀라(8.8) △민주당의 언론 길들이기인가(8.9) △헷갈리는 ‘김대업 녹취록’(8.13)

<동아일보> 사설들
△’병역 공방’ 뒷감당할 수 있나(8.6) △’김대업 테이프’ 빨리 공개하라(8.7) △수감자가 수사관이었다니(8.8) △의혹만 키운‘테이프 제출’(8.13) △’김도술 否認‘ 속히 진실 밝히라(8.14)

이들 3개 신문이 쏘아올린 사설수는 모두 19개. 이는 소위 ‘마이너리그군’에 속하는 나머지 신문들이 같은 기간 내에 작성한 사설수에서 불과 4개 모자란 것이다(한겨레 6개 + 경향 3개 + 한국 5개 + 문화 4개 + 국민 5개. 검색 불가능한 대한매일은 제외했다).
이들 마이너신문들의 사설제목을 조중동의 것들과 비교해 보시면, 저들이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쳤는지 쉬 짐작할 수 있다. 지면의 제약상 각각의 신문에서 2개씩만 임의로 발췌 소개한다.
△한나라당의 오만한 검찰 압박(8.3) △테이프의 眞僞 빨리 가려라(8.14, 이상 국민)
△한나라당 검찰압박은 횡포다(8.3) △`병역` 수사 공정성 확보가 관건(8.5, 이상 문화)
△한나라 법사위원들의 몰지각(8.3) △’병역’수사 요체는 진실(8.6, 이상 한국)
△’兵風’ 진상규명을 위한 조건(8.6) △兵風수사, 진실규명이 최우선(8.13, 이상 경향)
△병역비리 은폐인가, 정치공작인가(8.5) △의혹투성이 병적기록표(8.14, 이상 한겨레)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은폐의혹사건을 바라보는 조중동의 시각은 극심한 한나라당 편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신문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해하기 쉽도록 그것을 간추려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최근 김대업씨의 폭로로 불거진 ‘병역비리 은폐의혹’을 5년 전에 이미 우려먹은 ‘병풍’의 재탕, 삼탕으로 평가절하하면서, 이를 민주당의 ‘대선용 기획’으로 폄하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중동은 일치한다.
② 다수당의 권능을 앞세워 사건의 배당에서부터 수사담당자의 고발, 나아가 검찰총장의 탄핵 등 사사건건 검찰을 압박하는 수사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한나라당의 횡포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는 점에서도 조중동은 일치한다.
③ 최규선의 폭로에 대해서는 마치 그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인냥 사생결단하며 덤벼든 반면, 김대업의 폭로에 대해서는 시급한 국가현안이 산적한데도 정치권이 저질공방이나 벌이고 있다며 한나라, 민주 양당을 싸잡아 비난하는 점에서도 조중동은 일치한다.
④ 사건의 핵심인 이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은폐의혹보다 폭로당사자인 김대업씨의 개인비리나 수사참여와 같은 지엽말단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국민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 한다는 점에서도 조중동은 일치한다.
⑤ 최규선 녹취록 때와는 달리, 김대업씨가 제출한 녹취록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부정 일변도의 평가를 내놓음으로써 김씨의 신뢰도와 증거능력, 그리고 폭로의 파괴성을 감소시키려 한다는 점에서도 조중동은 전적으로 일치한다.
조중동의 일치된 펜 끝에서 퍼부어지는 이러한 가공할 화력만으로도 대부분의 전투는 이미 종료되게 마련. 그러나 이번에는 전황이 워낙 불리하다고 생각한 탓일까. 사설을 통한 정면공격 외에 조중동은 또한 자사가 자랑하는 대표필진들을 동원해 외곽포를 퍼붓는 입체작전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하나 하나 감상해 보자.
‘직필‘로 유명한 조선일보 김대중 편집인은 자신의 칼럼 <‘거짓말 정치인’ 매장하자>(8.10)에서 기존 정치인들의 고질적인 거짓말을 배경으로 깔고 “자신과 부인이 아들의 병역문제에 관련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후보를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이회창 후보의 순진무구한 격정을 거기에 대비시키면서, 근거없는 의혹만 양산해내는 한화갑 민주당 대표를 포함하여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못하는 거짓말 정치인들을 차제에 우리 손으로 매장하자고 바람을 잡았다.
문창극 중앙일보 이사는 <권력과 미움>(8.13)이란 제하의 칼럼에서 병풍과 5대의혹 사건 등 작금의 폭로공방을 DJ 집권 5년 동안 더욱 짙어진 미움과 불신, 증오의 표출로 정의하면서, DJ를 향해 “5년 전처럼 여야간 정권교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우리 정치를 극한대결의 악순환 고리에서 끊어달라”고 주문했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의혹을 현 정권의 미움과 증오의 산물로 간주하며, DJ가 “적을 용서하고 더불어 사는 관용의 미덕”을 보이기만 하면 절로 없어질 것으로 보는 문 이사의 독특한 시각이 압권.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가장 백미는 동아일보 황호택 논설위원의 칼럼 <병역의혹 ‘진실게임’>(8.13)이다.
황 위원은 김대업씨의 폭로로 불거진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은폐의혹을 지난 97년 대선 막바지에 터진 ‘DJ 비자금 수사’에 비견하면서, 당시 심재륜 검사가 “방대한 계좌추적에만 2개월이 걸려 대선 이전에 수사를 끝내기 어렵다. 정치권에 이용돼 대선에 영향을 주는 쇼가 되고 만다”는 이유를 내세워 비자금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했듯이, 이번 사건 또한 대선 이후로 유보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은근히 제안했다.
이쯤해서 한 마디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말끝마다 후보를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며 모 후보를 무참하게 다그치던 신문이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 중의 하나인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들을 들먹이며 ‘대선 후로 넘기자’고 슬며시 귀띔하는 것이 과연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또한 이 후보의 가계사건인 병역비리 은폐의혹을 마치 여권의 정치공작인냥 밀어붙이며 DJ에게 ‘미움과 증오의 정치를 걷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과연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이것이 정녕 공정성을 생명으로 삼는 신문의 할 소리인가.
각설하고, 조중동은 메이저급의 영향력을 자랑하기 이전에 그에 걸맞은 정직성부터 먼저 회복하기 바란다. 겉으로는 불편부당과 공정성을 운위하면서 속으로는 자사의 정치적 기호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편당적인 놀음을 지속하는 것은 거짓이요 사기며 기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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