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려 아르바이트하는 장소에 도착하기 직전, 제 폰이 울렸습니다. 친한 친구 녀석이 한 시간 후면 군대에 들어간다면서 전화해 왔더군요.
99학번인 그 친구는 요즘 군대에 주로 입대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나이가 좀 많은 편에 속합니다. 그가 그렇게 늦게 군대에 가게 된 것은 아마도 신문사 생활을 열심히 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제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도 같은 대학 영자신문사에서 활동한 경험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경북대에서, 그는 성균관대에서 각각 영자신문사 활동을 했었고, 전국 모임을 통해서 그를 만나게 되었죠.
하지만 그를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전영기련(전국대학영자지기자연합) 활동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친구는 전영기련 의장으로 취임하던 다음날, 대학 언론인들 모두가 모인 자리(대학언론위원회 출범식)에서 그는 ‘아침이슬’을 부르며 기자들에게 절을 했었죠.
앳된 얼굴의 그가 ‘아침이슬’과도 같은 푸릇푸릇한 젊음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그는 전영기련 의장으로, 저는 그를 도와 정책국장으로 활동하였지요.
함께 했던 시간들이 힘들었던 만큼 기억에 남는 추억들도 많습니다. 언론권력에 항의하는 뜻을 알리고자 했던 IFJ 총회 시위, 안티조선 문화제, 국제노동미디어, 언론학교 등등의 사업을 함께 준비하고 치러내는 과정을 통해 그와 나는 소위 ‘불알친구’가 되었지요.
그는 “왜 그렇게 전영기련 활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며 그것을 지켜나가려는 마음”때문이라고 답하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소중한 것들 중에서도 ‘아침이슬 같은 기자들’, ‘한국의 부패한 것들을 바꾸어 나가려는 사람들’,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곤 했지요.
그런 저의 친구가 오늘 군대에 입대하였습니다. 그것도 자진해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해병대 내의 모 부대에 시험쳐 합격하여 들어가게 되었지요.
그런 그와 오늘 통화하면서 저는 “편지 자주 할 게”, “거기 갔다 오면 주가가 올라서 멋진 여자친구 사귈 수 있을 거야”란 말로 격려하곤 했지만 그래도 안타까움에 계속 가슴이 아린 것은 어쩔 수 없네요.
2년 2개월 동안 그 친구는 새로운 인생경험을 할 테지만, 반면에 지적 능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되겠지요. 그리고 녀석을 보고 싶어하는 많은 가족과 친구들과의 만남과 우리들의 이야기도 한동안은 단절될 수밖에 없겠지요.
하루빨리 평화통일이 이루어져서 청년들이 모조리 군대에 가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개선되는 것만이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근본대책이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저의 소중한 친구가 너무 고생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 한구석이 아파옵니다.
요전에 만났을 때, 저는 그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이제까지 살던 세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군대에서도 잘 적응하길 빌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가 군대생활을 건강하게 잘 마치고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은 변화가 없습니다만, 그가 지니고 있던 순수하고 소중한 꿈들은 언제나 그의 마음 속에 살아 숨쉬리라 믿습니다.
그 꿈처럼, 힘든 군대생활 잘 견뎌내고 멋진 청년이 되어 돌아오라고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훈길아, 군대 잘 갔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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