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군에 입대하면 보통 이십몇 개월 생활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군복무 기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내가 군에 들어갔던 1979년에는 삼십삼 개월 동안 복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삼 년에서 삼 개월이 빠지는 기간이니 정말 기나긴 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는 상고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가 21세 때 가을인 1979년 10월 말에 입대했습니다. 입대하기 직전에 그만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입대하자마자 군대의 매섭고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군 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군 전체가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경계를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애꿎은 우리 훈련병들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어 겁을 잔뜩 집어먹은 상태로 생활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군에 들어가 본부대로 들어가기 전 일 주일 동안 대기 부대에서 생활했습니다. 거기에서 내가 맡은 일은 하루에 8시간 동안 무를 닦는 것이었습니다. 군에 들어간 사람이 웬 무냐고요? 그 때가 군대 김장철이거든요. 큰 통에 물을 받아놓고 무를 많이 넣은 다음에 긴 장화를 신고 들어가서 밟아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그것도 한두 시간이지 계속해야 하는 데에는 질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노동도 그런 중노동이 없을 것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 단순한 일이 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참고 견뎌낼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대기 부대에서 일 주일을 생활한 다음에 여러 부대로 갈라져서 가게 되었습니다. 수도권에 있는 어느 부대로 발령이 나, 거기에서 두 달 정도 모진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진짜 사나이로 태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을 들어선 것입니다.
8주간의 신병 훈련은 몹시 혹독했습니다. 1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계속되었는데, 추운 겨울철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 힘들고 고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첫 주는 그 부대도 김장을 준비하느라고 훈련병 전원이 동원되어 김장을 하였습니다. 이번에 내가 맡은 것은 마늘을 까는 일이었습니다.
한 자리에 앉아서 마늘을 얼마나 깠는지 나중에는 손가락 끝에 마늘 독이 올라 고생했습니다. 의무대에 약도 변변치 않아 잘 낫지를 않아 훈련을 받을 때에 아주 괴로웠습니다. 다행히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우리 내무반장의 배려로 그 고통스런 훈련을 조금은 빼주었습니다.
날이 몹시 추운 어느 날 연병장에서 우리 훈련병들은 교관의 지도에 따라 땀을 흘리며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군대는 늘 50분간 훈련하고 10분간을 쉽니다. 그때도 꿀맛 같은 10분간의 휴식을 취하며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한 조교가 뛰어와 박영수(가명) 훈련병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는 박 훈련병에게 아버지가 오셨다며 빨리 가자고 했습니다. 구령대 옆에 무궁화를 두 개 단 중년의 군인 한 명이 보였습니다. 박 훈련병은 조교를 따라 급한 걸음으로 갔습니다. 중령 계급의 그 군인은 바로 박 훈련병의 아버지였습니다. 뭐라고 교관과 이야기를 하더니 아들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박 훈련병은 그날 저녁에 훈련소를 떠났습니다. 더블백을 싸들고 동료 훈련병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자세하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모 부대의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깨끗한 군복으로 갈아입고 떠나간 뒤에 30여 명 되는 남은 우리 훈련병들은 서로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가 장교인 아버지의 ‘빽’으로 힘들고 고된 이곳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일을 보고 군에 입대하기 전에 말로만 들었던 ‘빽’의 어마어마한 힘을 확인했습니다. ‘빽’이 있으면 군 생활도 편하고 좋은 곳에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강력한 힘을 지닌 ‘빽’이 전혀 없는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그가 떠난 뒤 형언할 수 없는 허탈감과 착잡한 기분을 오랫동안 느껴야만 했습니다.
내가 속한 소대는 흔히 ‘일빵빵’(100)으로 불리는 소총수들이 대부분인 소총소대였습니다. 난 기관총을 다루는 화기분대에 속했는데, 소대원 30여 명 가운데 학력은 중퇴나 중졸, 혹은 고퇴가 10여 명, 대재가 5명 정도 있었고, 거의 다 고졸이었습니다.
그 당시 군복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고졸까지는 33개월이었고, 대재는 학년에 따라 혜택이 있었습니다. 1학년을 마쳤으면 2개월, 2학년을 마쳤으면 4개월, 3학년을 마쳤으면 6개월이 적었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 소대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와 비슷하게 들어온 동료가 6개월 혜택을 받고 먼저 예비군복(일명 ‘개구리복’)을 입고 제대를 했습니다. 그는 서울의 모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입대했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일찍 제대를 한 것입니다. 그가 나보다 6개월 일찍 나간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내 앞에서 제대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니 말할 수 없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불같이 타올랐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나의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는 대학 다니면서 나라에서 정한 교련 과목을 정식으로 이수하여 그만큼 군복무가 단축된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는 내가 못나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를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한 동료는 나보다 2개월 먼저 제대했습니다. 지방의 모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제대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사회 생활을 잘해나가도록 덕담을 해주어야 내 마음도 편할 텐데, 난 끝끝내 그런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속으론 그를 부러워하고 시기한다 하더라도 겉으로는 미소지으며 축하의 손을 잡아주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한 아름다운 말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 채 그의 제대를 힘없이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 병역비리에 관한 수사가 요즈음 가장 관심 있는 뉴스입니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 퍽 궁금합니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겠지만 아직도 이른바 ‘빽’이 통하는 군대라고 합니다. 동료들 간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그러한 그릇된 모습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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