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공군비행장, 항공소음·비행규제로 민간공항 반쪽 기능만
주민민원 25년째 방치, 청주시 항공관련사업 역으로 발목잡아

충북의 인구수는 전국의 4%, 경제규모는 3%에 불과하다. 이른바 도세가 약하다는 것인데, 왜소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2가지 시설은 가히 전국구 규모다. 하지만 ‘님비(NIMBY)’로 남들이 꺼리는 기피시설이다. 70∼80년대 ‘시범도’ ‘멍청도’란 말이 나돌던 시절, 충북의 안방을 차고 앉아버렸다. 불청객은 다름아닌 다목적댐과 군사비행장. 대청댐과 청주공군비행장-충주댐과 충주공군비행장이 서글픈 조화를 이룬다. 수도권 상수원인 다목적댐에 떠밀려 내 땅, 내 집, 내 고향을 떠난 이주민이 몇이던가. 국가안보에 발목잡혀 귀를 찢는 전투기 소음을 견디며 살아온 이들은 또 몇이던가.
다행히 댐주변 주민들은 수도법에 광역상수원보호구역 주민지원사업 규정이 마련되면서 다소나마 덕을 보게 됐다. 현실적 피해에 대한 응분의 보상으로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공익이란 미명아래 숨죽였던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숨통을 텄다는 의미가 컸다. 하지만 군용비행장 시설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성으로 남아있다. 전국 20개 지방자치단체에서 한 목소리로 지난 99년부터 피해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단,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작년부터 군비행장 인근의 축산피해 농가에 대한 배상결정을 연거푸 내려 관심을 모았다. 완고한 성벽에 손가락 구멍 하나가 뚫린 셈이다. 어쩌면 작은 구멍 하나가 봇물을 터트려 성벽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청주국제공항과 등을 기대고 살아온 청주·청원 피해 주민들도 이러한 심정으로 ‘청주공군비행장 소음피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을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와 함께 청주국제공항의 탄생과정을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최근 청주시가 계획했던 항공관련 행사 및 사업계획이 물거품이 되면서 시민여론이 분분하다. 오는 10월로 예정됐던 산업자원부 주최 ‘제1회 로봇항공기 경연대회’가 청주시의 예산확보 지연으로 취소됐다. 또한 흥덕구 문암동 쓰레기매립장 부지에 70억원을 들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산하 항공체계종합 및 성능시험센터를 유치한다는 계획도 전남 고흥으로 확정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일부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청주시가 항공엑스포 등을 강행하고 각종 행사와 사업을 추진한 것은 청주공항을 기반으로 항공산업 도시를 육성하겠다는 청사진 때문이었다.
하지만 항공체계성능시험센터 예정지가 뒤바뀐 속사정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청주시가 예정한 문암쓰레기매립장 부지가 청주공군비행장이 설정한 절대 비행금지구역에 포함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항공우주연구원이 최종 입지를 변경했다는 것이다. 충북도가 야심차게 내놓은 청주시 주중동 밀레니엄타운 조성사업도 인접한 공군비행장 때문에 간접피해를 당한 경우다. 사업의 핵심인 국제컨벤션센터 건립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공군비행장의 소음과 고도제한 등을 이유로 입지조건의 취약성을 집중부각시켰다.
청주국제공항이라는 인프라를 지역개발의 핵심고리로 활용하고자 하는 청주시의 바람이 군비행장이라는 암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형국이다.

시민단체 참여, 범대책위 구성

여기에 국가안보의 명분앞에 각종 생활피해를 감수해온 비행장 인근 주민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 본격적인 권익찾기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피해가 가장 심각했던 청주시 오근장동 주민들은 이미 지난 95년 이주대책위원회를 구성했었다. 대책위는 정부를 상대로 이주대책과 보상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지난 7월 청주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구성한 ‘청주공군비행장 소음피해 대책위원회’는 구성부터 광역적이다.
소음피해 지역인 청주시 오근장동, 강서동을 비롯해 청원군 내수읍, 북이면, 오창면 주민대표들이 총 망라됐다. 상임대표 3명과 공동대표 12명을 지역별 주민대표로 안배했고 운영위원회에는 상임대표들과 변호사, 시민사회단체 실무자등이 참여해 체계적인 반대투쟁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박관규 상임대표(북이면 이장협의회장)는 “그동안 국회, 국방부 같은 곳에 여러번 진정서를 냈다. 맨날 오는 대답은 ‘단시일에 해결하기 곤란하니 장단기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25년을 참고 살았으면 됐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 피해를 당하고 살수는 없지 않은가? 비행기 소음 때문에 사람도 살기 어렵고 가축도 살기 어렵다. 뭣보다 어린 애들이 밖에서 잘놀다 귀를 막고 방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속이 터질 노릇이다. 후대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뭔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겠기에 이번에 모두가 나서서 대책위를 만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피해유형은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다. 공군비행장 담장을 낀 마을인 외남 2통 통장 이형원씨(42)는 “제트전투기가 한번 뜨면 귀가 찡하다 못해 가슴까지 찌르르하다. 소음 때문에 자연히 동네 사람들 목소리가 커져서, 청주에서 시내버스를 타보면 오창 사람들보다 훨씬 시끄럽다고 우스개 얘기를 하기도 한다. 시집간 딸들도 뱃속 애한테 해롭다구 집에 오기를 꺼리구, 더구나 갓난애기 놀랄까봐 애 낳구도 친정나들이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피해학교 여름철 에어컨 시급

소음의 직접피해지역에는 사실상 외부손님을 들이기가 두렵다. 특히 아이들이라도 딸리면 영락없이 ‘기응환’을 먹여야 한다. 이곳에서 나서 자란 아이들은 면역성(?)이 생겨 덜하지만 외지에서 온 아이들은 놀라거나 아예 경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일단 전투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주민들의 대화가 중단된다. 전화통화도 불가능하고 텔레비전도 전파장애를 받아 화면이 엉망이 된다. 군비행 특성상 단독비행은 드물고 최소한 2대, 4대 단위로 편대를 이뤄 발진하기 때문에 연속적인 소음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따라 청주시는 지난 95년 TV수신료와 전화료 감면조치를 요구하는 오근장·외남동 주민의견에 따라 한국방송공사·한국통신과 협의를 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항공기 소음피해의 심각성이 두드러진 곳은 학교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커뮤니케이션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교현장에서 항공기 소음은 가장 큰 훼방꾼이 되고 있다. 청주 강서2동 내곡초교 장관수교감은 “비행기가 뜰 때는 마이크 소리도 안들려서 운동장 조회를 잠시 멈출 수밖에 없다. 방음을 위해 모든 교실 유리창을 2중창으로 바꿨지만 이륙할 때는 창문이 울릴 정도로 소음이 발생해 수업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여름에는 2중창을 열고 수업하다가 비행기 소음이 나면 다시 닫고 하다보니 학생들의 수업 집중력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이런 특수한 상황 때문에 교육청에 에어컨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지만 아직 예산문제 때문에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학교현장부터 저감대책을 위한 지원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충북도교육청이 8월초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청주·충주공군비행장의 항공기 소음으로 수업에 지장을 받고 있는 학교는 14개교(분교 1개교 포함)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별로는 고교 2개교, 중학교 3개교, 초등 8개교로 청주권에서는 오창고, 오창중, 내수중, 북일초, 북이초, 석성초, 서촌초, 내곡초 등이 포함됐다. 익명을 요구한 피해학교 모교사는 “비행기 굉음은 어린 초등학생의 성격형성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속적인 심리적 자극등으로 공격성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수업 집중력이 떨어져 안정적인 환경을 갖춘 학교에 비해 학력차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공군부대 학부모 가운데는 청주시내 초등학교로 취학시키는 경우도 적지않다”고 말했다.
충주공군비행장과 인접한 금가면 금가초교는 항공기 소음이 극심해 지난 96년 학교를 이전한 경우다. 하담리에서 3km가량 떨어진 현재의 도촌리로 이전해 소음피해를 한결 줄일 수 있게 됐다. 하담리에서는 공군사격장의 유탄이 3km 떨어진 운동장에 떨어지는등 안전사고 위험성도 높았다. 당시 공군은 직접피해지역에 대한 집단이주사업을 추진해 금가초교도 매각이전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공군의 매입대금이 이전신축 사업비에 턱없이 부족해 교육청의 예산을 보태야 했다. / 권혁상 기자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