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난무합니다. 한 마디 말이 두 마디 말이 되고 두 마디 말이 다시 네 마디 말이 되어 춤을 춥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말이 온 사회에 넘쳐 나니 목하 대한민국은 말이 범람하는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들 말이라면 신바람이 납니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정당대표들도 입만 열면 신이 납니다. 신문을 펼치면 논객들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불꽃을 튀고 여야당 대변인들은 입에 거품이 마를 새가 없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건 하나같이 덕담은 없고 냉소적인 험담, 살벌한 악담만이 넘친다는 사실입니다. 사정이 그러하건대 강호(江湖)의 제현들이라고 그냥 있을 리 없고 시정(市井)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 역시 험구에 침을 튀깁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말이라면 노무현대통령을 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노대통령의 유창한 언변은 이미 경지에 다다른 듯 보입니다. 일사불란한 논리, 거침없는 언어구사, 경상도 특유의 액센트는 듣는 이를 감탄하게 합니다. 노대통령의 말은 문자 그대로 청산을 흐르는 물입니다.

취임하자마자 젊은 검사들과 난상토론을 벌이고 쉴새없이 일장 ‘말의 향연’을 벌이면서 아예 방송국을 통째로 빌려 몇 시간씩 토론을 자청하는 것도 말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 터입니다. 정부수립 이후 아홉 명의 대통령이 있었지만 노무현대통령처럼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탁월한 통치력으로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손꼽히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든 리콴유(李光耀)수상은 평소 말수가 많지 않고 얼굴 보이기를 꺼려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최고 권력자인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이 자주 매스컴에 등장하는 것을 절제했습니다. 시시콜콜한 신변잡기까지 자랑하기 좋아하는 우리 정치지도자들과는 대조적입니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매스컴이 꼭 알아야 할 정책이외에는 보도하지 않으니 수상이 독서를 하는지, 골프를 치는지 알 수 없고 수상의 말 한마디에 왈가왈부 시비를 거는 일도 없었습니다.

독재자였던 그가 1965년부터 무려 26년 동안이나 장기집권을 하고서도 아직껏 국민들로부터 욕먹지 않고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남다른 정치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고 통치권자인 국가원수가 말이 많으면 국민들이 피곤합니다. 집안어른이 말이 많으면 가족들이 괴로운 이치입니다. 대통령이 국민들을 상대로 직접 대화하려는 자세는 좋지만 너무 자주 달변을 뽐내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자주 들으면 귀가 아프고 잘난 얼굴도 자주 보면 실증이 나는 법입니다.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대통령은 도대체 시비가 끊이질 않는 얽힌 정국을 입으로 풀려하지 말고 넉넉하고 따뜻한 가슴에서 해법을 찾으면 좋을 것입니다.

지금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유창한 달변이 아니라 경륜과 지혜로 이끌어 가는 안정된 국정운영입니다. 야당을 원망하고 보수언론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품에 안는 대인의 금도(襟度)가 절실합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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