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어느 도시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박물관에 근무하면서 우리 박물관을 찾는 외지의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면 항상 청주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곤 한다. 이들은 과연 청주의 이미지를 어떻게 가지고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가로수터널, 무심천, 교육의 도시 정도로 이야기했다. 박물관을 개관한지 10년이 지난 요즈음의 상황은 『직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야기인 즉, 청주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가 있는데, 인쇄 장소인 흥덕사지에 고인쇄박물관이 있다는 이야기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 터가 1985년 발굴되면서 세워진 국내 유일의 고인쇄 전문박물관으로써,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 인쇄를 창안하여 발전시킨 사실을 알리고, 인류 문명사에 빛나는 선조들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길이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건립되었다. 그 동안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100만명이 넘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독일 구텐베르크박물관과 중국인쇄박물관과 자매결연을 맺어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써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200년대 초에 금속활자가 발명되었으나, 기록만 전할뿐이다. 그러나 현재 금속활자로 간행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직지』로 1377년에 흥덕사에서 인쇄한 것이다. 이 책은 서양인들이 자랑하는 독일 『구텐베르크 42행성서』보다 약 78년이나 앞선 것으로, 작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으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직지』의 편저자(編著者)는 백운화상인데, 법명은 경한(景閑)으로 어려서 불가에 입문하여, 중국으로 건너가 석옥화상으로부터 불법을 전수 받고, 인도의 지공선사에게 법(法)을 물어 54세에 득도(得道)하였다. 귀국하여 선법(禪法)을 전수하고자 노력하였으며, 74세에 성불사(成佛寺)에서 노안을 무릅쓰고 제자들에게 선법을 가르치기 위해 145가(家)의 선에 관한 내용을 상·하권으로 엮었다. 여주 취암사(鷲 寺)에서 77세에 입적함에 따라 그의 제자인 석찬(釋璨)·달잠(達湛)스님은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펴기 위해 비구니 묘덕(妙德)의 시주를 받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간행사업을 전개하였다. 석찬은 백운화상을 모시던 시자(侍者)로써 『백운화상어록』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비록 스승은 돌아가셨어도 스승이 남긴 책을 펴냄으로써 그 뜻을 전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였을 것이다. 제자들이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었던들 『직지』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직지』는 사제지간의 정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직지』를 찾고, 세계화하기 위한 노력이 청주를 비롯하여 각계각층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번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교과서에 고인쇄박물관과 『직지』가 14페이지가 수록되었다. 이제 청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직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청주의 이미지가 『직지』로 굳어지는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도(師道)가 무너져 가는 교육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직지』를 통해 금속활자 인쇄를 한 조상들의 지혜와 스승의 뜻을 펴기 위한 애틋한 사제지간의 정을 느껴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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