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으로 본 세계의 정보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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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으로 본 세계의 정보기관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5.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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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역할 통폐합 대세, 대테러·산업정보활동이 핵심
“국정원 환골탈태에 타산지석 삼아야” 여론

국정원의 불법도청과 검찰 수사는 국민들이 국가 정보기관에 대해 다시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처럼 국가 정보기관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특히 국민들의 의표를 찌른 검찰의 압수수색은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을만한 일대 ‘사건’으로 해석된다.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닉네임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그만큼 간절함을 시사하지만 한편으론 국가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식이 희석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어쨌든 정권이 바뀔때마다 부침을 거듭한 국정원은 또 한번 벼랑에 서게 됐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정원 해체라는 극단론까지 제기하며 국민들의 상실감을 위무하려 한다. 해체는 아니더라도 이번 일을 계기로 대대적인 손질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국정원의 역할변화, 예를 들어 현재 국내정보와 해외정보의 통합형식으로 운영되는 체제를 국내와 해외로 분리하거나, 아예 국내파트의 부서와 기능을 축소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국가 정보기관의 성격상 한 때의시류나 정세에 의한 판단은 반드시 실패했다는 역사적 교훈 때문에 그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헤집더라도 단도(短刀)가 아닌 장검(長劍)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래야 환부 그것만이 아닌 전체를 볼 수 있는 혜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계의 국가 정보기관은 1차대전을 기점으로 그 존재의 의의가 구체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종래의전쟁은 단순히 군사력의 우열을 다투는 것에 집중됐지만 1차 세계대전부터는 전쟁의 개념이 총력전 양상으로 바뀌면서 국민총동원이 절실했던데다 물리적 군사력 뿐만 아니라 산업이나 인적자원, 사회분위기와 국민심리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특히 심리전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정보기관의 정예화를 촉발시켰다. 이러한 경향은 2차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두드러져 국가별 정보기관이 다양화, 대규모화를 통해 더욱 강력한 조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하지만 정보는 권력을 낳는다는 속설이 말해주듯 국가별 정보기관은 필히 권력화라는 일탈을 겪었고 국정원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를 막기 위해 역할과 기능의 분리가 한 때 유행처럼 번졌으나 정보의 공유 내지 종합관리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최근엔 정보기관이나 기구를 통폐합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이 미국의 9·11테러다. 기껏 테러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도 CIA와 FBI 사이의 난맥상으로 대 재앙을 예측하지 못한 사례가 큰 교훈으로 작용한 것이다. 실제로 9·11테러는 세계가 국가 정보기관을 재정립하는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 최근엔 산업스파이가 국가간 정보전쟁의 전리품이 되면서 산업기술과 노하우의 해외유출을 막는 게 정보기관의 핵심 역할로 등장했다. 동물복제의 대명사 황우석박사에 대해 국가가 경호원을 붙여 신변안전을 꾀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불법도청이라는 국정원의 ‘원죄’는 감찰수사라는 단죄를 받고 있지만 국민들은 향후 사법적 조치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도 이목을 집중한다. 국정원의 환골탈태를 기대하는 것이다. 불법감청이라는 인간 파괴적인 범죄행위를 증오하면서도 그렇다고 국가간 치열한 전쟁의 대상이 되는 ‘정보’의 중요성마저 간과하지는 않는다. 적게는 작은 조직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정보는 그 존재의 실체와도 다름없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보 하나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어찌보면 살벌한 세상에서 우리는 상대에의 노출을 끊임없이 경계하며 긴장된 삶을 이어가는지도 모른다. 검찰수사라는 초유의 사태를 부른 국정원의 추락과 그리고 ‘새로운 탄생’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 역시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한다. 과연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럴 때 다른 나라의 사례는 향후 국정원의 지향점을 예시할 수도 있다. 세계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을 기획기사로 다뤘다.

이스라엘 모사드, 세계 정보기관의 대명사, 보복전으로 유명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는 1972년 뮌헨올림픽의 검은구월단 사건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보복을 수행하면서 모사드는 한때 정보기관의 대명사처럼 군림(?)하기까지 했다. 원래 모사드는 영국이 팔레스티나를 위임 통치하던 시절에 활동한 지하조직에서 출발했다. 시오니즘의 레지스탕스가 그 기원인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팔레스타인과 반(反)시오니즘 단체에 침투해 첩보를 수집하거나 혹은 나치독일에 대한 정보활동이 모사드의 시발점이 됐다.

모사드의 공식명칭은 ‘ha Mossad le Modiinule Tafkidim Meyuhadim’으로 정보 및 특수임무 연구소로 번역할 수 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정보공동체에서 해외정보를 담당하는데 주로 인간정보(Humint) 비밀공작(Covert Action), 대테러활동(Counterterroism)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모사드의 활동은 “기만에 의해 전쟁을 수행한다(By way of deception, thou shalt do war)”라는 자체 모토에 잘 드러나 있고, 이에 근거해 중동전에서 치열한 정보전을 치름으로써 그 명성을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모사드는 73년 10월 전쟁을 예측하지 못해 그 이름값에 치명타를 남겼다. 이 때문에 이집트와 시리아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패전위기에까지 몰리게 된 것. 미국의 전폭적인 병참 및 정보지원 아래 결국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때까지 세계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모사드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당했다.

당시 전쟁의 시행착오는 첩보부족 탓이 아니라 입수된 첩보해석을 둘러 싼 정보공동체 내의 갈등과 대립이 원인이었다. 이스라엘의 정보공동체는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모사드와 국내보안을 맡는 신베트, 군사정보를 담당하는 아만, 외무부 산하의 정치기획. 조사센터, 내무부 산하의 경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0월 전쟁을 계기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정보공동체의 문제점을 규명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정보공동체사이의 불신과 갈등은 이스라엘 정보시스템의 총체적 위기를 부채질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은 점차 베일을 벗고 양지로 나오게 된다. 이때까지도 공식적으로 모사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철저하게 숨기던 이스라엘 정부는 전례를 깨고 모사드 국장 임명을 공개하는가 하면 신입요원을 언론사 공채광고를 통해 선발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만 모사드의 실체는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1980년대 후반의 자료에 따르면 모사드의 요원수는 1500~2000명으로 추정됐는데, 최근에 1200명 선으로 축소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전직 요원이었던 빅터 오스트로브스키가 전 세계적으로 모사드가 고용한 에이전트는 3만5000명이며 이 가운데 2만명만 활동중이라고 밝힌 후 궁금증은 오히려 더 커졌다.

모사드 비밀공작의 대표적 사례는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납치공작이다.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친위대 장교로,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는데 종전 후 신분을 감추고 잠적, 전범 재판을 피한 인물이다. 이에 모사드는 그가 아르헨티나에 산다는 첩보를 입수한 후 3년간의 추적끝에 1960년 5월 마침내 그를 납치해 이스라엘로 데려 와 62년 5월 처형했다. 그 후 모사드의 존재는 1972년 8월 뮌헨올림픽의 검은구월단 테러를 계기로 세계인들에게 확실히 각인됐다. 모사드는 올림픽에 참가한 10명의 이스라엘 선수가 납치 학살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신의 분노’라는 특수부대를 창설, 암살반을 편성하고 응징에 나선 것이다. 그해 10월 16일 검은구월단 요원 ‘즈 웨이터’가 한 야유회에 참석했다가 귀가한 후 집밖에 서성이는 것을 확인하고 12발의 총격을 가해 암살했다. 두달후인 12월엔 프랑스 주재 검은 구월단의 제 2인자인 ‘함차리’를 발견해 그의 전화기에 폭약을 설치, 아파트에서 폭사시켰고, 마지막으로 1979년엔 7년간의 추적끝에 검은구월단 테러의 주범인 ‘살라메’를 찾아 내 그가 시보레 웨건을 타고 지나가는 장소에 폭발물이 가득 찬 폭스바겐 한대를 접근시켜 폭파시킴으로써 경호원 2명과 함께 즉사케 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한 때 ‘피의 보복전’으로 상징되기도 했다.

러시아 KGB, 푸틴 집권후 조직과 권한 확대, 대테러활동에 올인
한국 사람들에게 KGB(국가보안위원회)는 아주 특별한(?) 이미지를 안긴다. 마치 불한당이나 악당으로 각인된 것이다. 친미적 발상이 미국의 CIA에 맞서는 KGB를 이렇게 왜곡시켰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특히 그러했고 이를 부추긴 것이 007 시리즈다. KGB는 구 소련이 붕괴되기까지 권력이나 정권유지의 첨병이 됐다. KGB 스스로 막강한 권력기관으로 전락함으로써 이로 인한 폐해가 구 소련의 ‘철의 장막’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던 것이다.

1991년 12월 KGB는 해체의 운명을 맞는다. 국내 방첩을 담당하는 연방보안부(FSB)와 국외정보를 전담하는 해외정보부(SVR)로 분리, 개편되면서 과거의 음습한 이미지와 거리를 두게 됐다. 그러나 2000년 3월 대통령에 당선된 푸틴에 의해 KGB는 또 한번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조직 및 권한의 꾸준한 확대가 추진됐고 급기야 2003년 3월 분리했던 연방보안부와 해외정보부를 통합, 사실상 KGB 체제를 부활시켰다. 여기엔 9? 11테러와 러시아 자국민에 대한 체첸반군의 끊임없는 보복테러가 정서적인 당위성을 제공했다.

실제로 9·11 및 체첸사태 이후 점증하는 대내외적 테러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연방보안부(FSB)를 중심으로 정보기관 조직 및 권한확대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특히 감청과 국가통신망을 관리하는 연방통신정보국(FAPSI) 기능을 연방보안부가 흡수 통합함으로써 외형상으로도 막강한 진용을 갖추게 됐다. 연방통신정보국은 종사원만도 무려 5만명에 달한다는 것. 러시아 하원도 정보기관의 강화에 힘을 실어 줘 대테러 관련 예방조치 개념도입을 위해 FSB의 권한강화 및 대테러 관련기관간 협력 메카니즘 구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테러법 개정안 입법을 성사시켜 FSB의 지휘 아래 러시아 군병력이 해외에서 대테러 작전에 참여할 수 있는 절차규정까지 마련했다.

테러가 빈발하자 FSB에 대테러 관련 조치의 시행 및 감독권한을 일원화시키고 테러위험 선포권한도 부여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푸틴대통령 스스로가 KGB 비밀경찰요원 출신이라는 점도 정보기관의 역할확대를 가져 온 동인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술 더 떠 푸틴은 KGB 출신들을 각종 요직에 대거 발탁해 이들이 ‘신귀족’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된 것. 1982년부터 1984년까지 공산당 서기장으로 집권한 안드로포프도 KGB 출신이다.

중국 국가안전부와 대만 안전국, 개방·발전가속화 따라 해외정보 중요성 부각
중국의 대표적 정보기관은 국가안전부(MSS)다. 1983년 국가안전부의 설립은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중국의 대외 개방으로 외국인의 입국 및 내국인의 출국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간첩, 방첩활동의 조직화가 강력 요구됐기 때문이다. 특히 80년대에 망명이나 간첩사건이 빈발해짐에 따라 제 6차 전인대 개최시(83년 6월) 해외정보 수집 및 분석부서였던 당중앙조사부와 공안부내 방첩담당 국내 기구를 통합, 국가정보기관으로 새로이 발족시킨 것이다. 중국의 국가안전부는 공산당 1당 독재사회주의 국가라는 속성상 체제유지를 위한 국내 보안활동에 중점을 두고 출범했지만 개혁 개방에 따른 정보환경 변화에 따라 점차 해외산업 및 경제정보 등 대외관련 수집활동을 강화하는 추세다. 최근 한국의 선진기술, 예를 들어 반도체 기술의 유출논란이 빚어질 때마다 국가안전부가 거론되는 것을 보면 중국도 산업기술의 정보전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의 대표적 통신사인 신화사(NCNA)가 외국의 소식을 국내에 보도하는 통신사의 통상적 기능 외에 세계 각지의 소식을 수집, 이를 번역 요약 분석하여 중국의 고위급 지도자를 포함한 관계 부처에 수시로 보고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신화사는 정보기관 요원의 해외파견 때 신분을 은폐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신화사는 운영에 있어서도 당 중앙선전부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국가안전부는 설립초기인 85년 정보처장(과장급)으로 있던 유강성의 미국 망명으로 큰 시련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 사건으로 미국내 중국 첩보조직의 일부가 노출돼 망신을 당한다. 중국계로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활동하던 김무태(金無怠)가 간첩혐의로 검거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97년엔 로스 알라모스 국립실험실에 근무하는 대만계 미국인 피터 리가 소형 핵탄두의 폭발실험 정보 및 대잠전(對潛戰) 관련 기밀자료를 2회에 걸쳐 중국에 전달한 혐의로 체포됐고, 99년엔 역시 대만계 미국인으로 같은 실험실에 근무하던 이문화가 핵탄두 설계 및 미사일 관련 군사비밀을 다량 중국측에 유출한 혐의로 검거돼 양국간 마찰을 빚기도 했다.

중국 국가안전부의 정보활동중 가장 역사가 깊고 최고 업무로 평가되는 것은 對 대만 공작이다. 중국통일의 문제와 연관됐기 때문에 모든 영역을 망라하는 총체적 정보수집과 공작을 책임지고 있다.

대만의 정보기관은 안전국과 조사국으로 대별된다. 안전국은 국가안전과 관련된 국내 정보업무는 물론 해외정보 수집 및 공작까지 책임지고 통신감찰 보안업무를 수행하면서 각급 정보기관 전체를 지휘통솔하는가 하면 총통의 경호까지 책임진다. 이에 반해 조사국은 테러 마약 위폐 등 국제범죄예방과 불순외국인 동향감시 등을 전담한다.

대만 역시 9·11테러를 계기로 정보기관의 통합을 지향하면서 기능강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대 테러활동에 있어 사전예방이 사후제재보다 중요하다고 판단, 통신감찰을 허용하는 한편, 필요할 경우 인민의 긴급한 위난을 피할 수 있도록 통신차단 및 제한의 권한을 아예 국가안전국장에게 부여해 이채를 띤다.

영국 M15와 M16, 007의 비밀정보국, 활동은 여전히 베일
국내정보는 SS(보안정보국? 일명 M15), 해외정보는 SIS(비밀정보국? 일명 M16) 가 담당한다. 코드넘버 007의 영국 첩보원 제임스본드가 소속된 기관이 바로 M16으로 알려진 비밀정보국이다. 영국의 정보기관은 1, 2차대전을 통해 세계에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자국에서 활동하는 독일첩자와 소련첩자를 검거할 때마다 대단한 기세를 올렸다.

M15는 공개적 활동인 반면 M16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1994년 제정된 정보국법에 의하면 M16역할은 “영국의 국토 밖에 있는 인물들의 행동과 의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 제공하며, 국방 및 외교정책과 관련된 국가안보 이익 증진, 영국의 경제적 이익추구, 범죄방지 및 탐지와 관련된 기타업무를 수행”이라고 명시돼 있다.

한 때 냉전이 종식되고 공산권의 몰락으로 적성국가가 사라짐으로써 M16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런던에서의 정보활동을 강화하자 96년부터는 다시 M16의 활동이 되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면서 그해 5월 영국과 러시아가 각각 4명씩의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직원들에게 회사(The Company)로 통하듯 M16도 내부에서는 상사(The Firm)로 통한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통합정보기관 없이 부문별 기관이 수평적 관계
일본엔 통합정보기관이 없을뿐더러 국내정보 또는 해외정보 전담기관도 없다. 대신 각 부문의 정보기관들이 소관업무의 범위내에서 국내및 해외정보를 취급한다. 내각정보조사실, 공안조사청, 경찰청, 해상보안청 등 부문별 정보기관들이 상호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며 개별적으로 정보활동을 편다. 그러나 일본 역시 9·11테러에 놀라 정보기관의 통합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일부 정보기관과 정치권의 반발로 성사되지 않고 있다.

내각정보조사실이 정보활동의 핵심으로 1952년 창설후 몇 번의 부침을 거쳐 76년 12월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며 기능도 확대됐다.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외곽 민간기관을 활용해 정보수집 및 분석, 평가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정보망은 역시 경제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경제분야에서 만큼은 거미줄 정보망을 자랑한다. 전세계 산업정보의 일거수 일투족을 한 눈에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민간 연구기관을 내세운 정부수집이 다른 나라의 부러움마저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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