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책을 하사한 삼남 제일의 향교

▲ 청주향교 전경 청주의 우암산자락, 대성동 55번지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38호인 청주향교(淸州鄕校)가 있다. 청주는 일찍이 교육을 중시하였던 고장이었다. 그 증거로는 청주 백화점 뒤에 있는 용두사 철당간의 셋째 층에 있다. 이 철당간은 고려 초 즉 962년에 세운 것인데, 거기에 신라 때의 교육기관장이었던 '학원경', '학원낭중' 등이 이 고장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런 교육기관은 모두 없어져서 지금은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 청주향교는 이 고장에서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교육기관이다.청주향교를 찾아가려면 충청북도청 동편 담장에서 중앙초등학교 뒤에 <청주향교>라는 푯말의 화살표 방향으로 들어서서 충청북도 지사 관사 앞을 지나 우암산을 향하여 가면 정면에 향교가 나타난다. 승용차는 향교까지 가서 주차할 수 있지만 버스는 들어갈 수 없으므로 도청이나 상당공원 주변에 하차하여 걸어서 다녀와야 한다. 원래 향교는 시골에 있는 문묘(文廟)와 거기에 부속된 학교이며, 교궁(校宮), 재궁(齋宮)이라고도 하던 지방재정으로 운영했던 관학기관인데, 고려와 조선시대에 계승된 지금의 공립중등학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고려의 학제는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중앙에는 국자감(國子監), 동서학당(東西學堂)을 두고 지방에는 국자감을 축소한 학교를 설치하였다. ▲ 대성전
우리나라에서 관학 교육기관으로 학교가 생긴 것은 고려 성종 6년(987년)이니까 천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종 5년(1127년)에는 전국 12목(지금의 도 단위)에 학교를 세우고 지방의 사대부 자녀의 교육을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생긴 학교가 오늘의 향교의 모체이다. 청주도 그 때 12목의 하나였으니 학교가 세워졌을 것이며, 그 때의 학교는 문의면 양성산(養性山) 아래 창건한 것으로 추측하며,  오늘의 <청주향교>는 조선 태조 7년 각지방에 360개의 향교를 세우고 고등학교의 기능으로 인재양성을 했을 때 세운 것이라고 한다.

청주향교는 삼남(三南) 제일의 향교였으며, 세종 26년(1444년)에는 세종이 안질 치료차 초정(椒井)에 행차하였을 때 서적을 하사(下賜)한 일이 있었고, 세조 10년(1464년)에는 세조가 문묘(文廟)에 친히 제향(祭享)한 일도 있다고 한다.

조선의 청주향교는 왕이 특별한 배려를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창건 당시의 청주향교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지금의 청주향교는 조선 숙종 9년(1683년) 현령(縣令) 이언기(李彦紀)가 이곳으로 이전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명륜당 향교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건물은 가장 위쪽에 있는 29위 스승님의 위패를 모신 52평 크기의 대성전(大成殿) 즉, 문묘(文廟)이다. 전에는 이 대성전에 오성위(五聖位ㆍ공자,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의 위패를 봉안하고, 송조육현위(宋朝六賢位ㆍ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주희)와 동국십팔현위(東國十八賢位ㆍ설총, 최치원, 안유,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위패는 대성전 전면 좌우에 있는 동쪽행랑채와 서쪽행랑채에 나누어 봉안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합 29위의 위패를 모두 대성전에 봉안하고 봄 가을 초정일(初丁日)에 석전 추모제를 지내며 스승님의 학덕과 유지를 받들고 있다. ▲ 명륜학원
청주향교의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누구나 말에서 내리라는 하마비(下馬碑)가 있어서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중요 건물은 가장 위쪽에 있는 대성전(大成殿)이며, 이 대성전은 홍전문(紅箭門:홍살문)에서 외삼문(外三門)을 지나  유생의 교실이었던 명륜당(明倫堂),  그 뒤의  내삼문(內三門)을 지나야 된다. 향교의 건물은 새롭게 신축한 석조 2층의 복지회관, 유치원 등의 현대식 건물이 지금은 더 우람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과거의 향교는 공자의 도의사상을 교육하는 곳으로 조선 시대의 인본주의 윤리를 깊이 뿌리박게 했으나 이 나라의 개화와 신학교의 등장으로 현재는 유림에서 봄 가을 석전대제(釋奠大祭), 초하루 보름 삭망봉심(朔望奉審)과 명륜학원 운영으로 한문, 서예,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 여름방학에는 학생에게 예절을 가르치고, 이 밖에 글짓기 및 서예 대회, 충효웅변대회,  도의선양 강연회, 예절상담, 효열표창, 전통혼례 등을 하면서 우리의 고유한 전통을 이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에 삶의 좌표를 상실하고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은 잠시 이곳에 들러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봄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김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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