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을 빨리 나오게 해주세요”

“석방되면 같이 살 겁니다. 집사람을 가두어 두는 게 못마땅합니다. 안에 있으면 뭐합니까. 빨리 나오게 해 주십시오.”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윤락여성 구아무개씨에 대한 3차 공판에서 남편 박아무개(43·김해 진례)씨가 한 마지막 진술이다. 박씨는 구씨의 가출 이유가 카드빚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재판 내내 구씨를 “집사람”이라 불렀다. 그는 변호사와 검사, 판사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했다.
김해 진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남편 박씨는 1999년 봄, 아는 동생의 소개로 구씨를 만났다. 1년간 동거하다 2000년 5월 혼인신고를 해 법적으로도 부부가 되었다. ‘집사람’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은 혼인신고 얼마 후 김해보건소에서 알려주었을 때였다. 남편은 부인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부부관계를 계속 가졌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한 달 평균 10회 정도 부부관계를 가졌고,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이전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 남편 박씨는 “믿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보건소에서 에이즈 감염검사를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는 김해보건소에서 발행한 ‘음성’ 판정 확인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구씨는 전 남편과 사이에 딸이 있는데, 건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은 ‘집사람’이 가출한 뒤에도 찾아 헤맸다. 이내 경찰과 보건소에도 알렸다. 에이즈에 걸린 부인을 찾아 나선 것이다. 부인이 가출하기 전에는 안정되었지만, 가출하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생활이 엉망이 되었다. 남편은 “(집사람이) 가출한 후 카드빚 독촉장이 계속 날라 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카드빚 연체에 시달리다 보니 가출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재판장에게 ‘집사람’의 선처를 호소하면서, “가두어 두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빨리 석방해 달라”고 말했다.
재판장에 모습을 나타낸 구씨는 건강해 보였다. 고개를 숙인 채 법정에 들어섰다. 남편 박씨의 증언이 계속되는 동안 구씨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으며, 괴로운 듯 간혹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남편 박씨는 증언을 마치고 난 뒤에도 법정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공판을 마치고 나가면서 구씨가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남편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남편은 증언을 마친 뒤 바로 일행과 함께 법원을 빠져나갔다. 김해보건소 등 관계자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3차 공판에서는 구씨가 윤락행위를 한 곳으로 알려진 전남 여수의 보건소에서 보내온 1500여명의 ‘신체검증 확인서’가 증거자료로 채택되었다. 재판부는 여수보건소에서 보내온 확인서에 의하면 ‘양성’ 반응자는 없다고 밝혔다.
이날 공판장에는 사단법인 ‘창원여성의 전화’, 대한에이즈예방협회, 김해보건소 관계자들이 나와 방청했다. 창원여성의 전화 이경희 회장은 “에이즈 환자의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다”면서 “박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보건소에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자세한 안내를 해주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에이즈 예방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구씨에 대한 3차 공판은 8월 6일 오후 창원지방법원 215호 법정에서 심규홍 판사의 진행으로 열렸고, 4차 공판은 8월 20일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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