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타랍을 내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 조우를 하는 순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엊그제 광복60년 기념행사 참가를 위해 서울에 온 북측대표단일행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바라보는 소회는 그랬습니다.

현충원에 도착해서 머문 시간은 고작 10여분내외, 또 현충탑에 머리를 숙이고 묵념을 한 시간은 단 5초에 불과했지만 이는 그 상징성으로 보아 1950년 민족상잔을 벌인 6·25 전쟁이후의 가장 큰 ‘사건’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워낙 예상 밖의 일이었습니다.

현충원이 어떤 곳입니까. 두 사람의 대통령과 애국지사들이 묻혀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6.25 때 인민군과 총구를 맞대고 싸우다 전사한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북한 식으로 말하자면 ‘원쑤’들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무덤에 경건히 머리를 숙인 것이니 어찌 대단한 사건이라 아니 할 수 있습니까.

북측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는 결코 쉽게 성사 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참배를 하겠다는 북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남도 결단이 필요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북측이 파격적인 제의를 한데는 깊은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6.25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이든 아니면 다른 감추어진 속뜻이 있든 의도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속셈이 무엇이든 현충원 참배라는 히든카드를 내놓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 결정에 김정일위원장의 결단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정부로서도 북측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는 신중한 고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 뜻밖의 제안인데다 북측의 진정한 의도를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호주의에 따른다면 앞으로 방북하는 우리 대표단도 그곳의 애국렬사릉이나 혁명렬사릉을 참배해야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김일성주석의 시신앞에 머리를 숙여야 하는 난처한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기에 말입니다.

어쨌든 북측의 이번 현충원 참배는 6.15선언이후 지지부진한 남북관계에 다시 기름을 부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광복60년 행사를 한마음으로 치르고 헌정사상 처음 국회를 방문하는가 하면 백범 김구선생기념관을 찾고 6.15공동선언 당사자인 김대중 전대통령을 문병하고 노무현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인 것이 그를 증명합니다. 때맞춰 북한 화물선이 한밤중 유유히 제주해협을 통과하는 모습도 눈길을 끄는 대목입니다.

올해 광복절의 캐치프레이즈가 ‘광복60년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축제를 함께 즐기고 축구경기에서도 남북선수들을 똑 같이 응원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도 연출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이런 모습은 오로지 같은 민족이라는 동일성을 빼놓고는 달리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일부 국민들 가운데는 남과 북의 화해분위기에 회의적 시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통일이라는 대명제 앞에 닫힌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민족의 화해 없이 통일을 말하는 것은 허구입니다.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열면 세상이 밝게 보입니다. 남북이 함께 성숙함을 보여준 2005년 광복절은 그래 더욱 뜨거웠습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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