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일. 올해 4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진 한 정치인의 죽음에 지역운동계가 눈시울을 적셨다. 고인은 강구철(전 민주당 동구지구당 위원장)씨.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는 등 반독재투쟁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겠다며 지역운동에 투신한 그이기에 지인들의 가슴은 더욱 허망하게 쓸려 내렸다.
이철·박계동 전 의원과 김근태 의원 등 70년대 민청학련을 주도하던 이들과 서울에서 활동하던 고인은 일찌감치 지역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지역에 투신해 자리를 지켜왔으나 곡절 많은 삶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망자에 대해 지인들은 ‘민주애국지사’로 칭했지만 그 호칭이 주는 무게만큼 빈 자리는 더욱 커 보이기만 했다. 누구는 그를 ‘지역운동의 맏형’이라 하고 누구는 그를 ‘지역운동의 별’이라 칭했다.
대전충남지역 지역운동가들을 비롯해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그의 치열한 이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54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2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 후 대학 3학년 때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며 이철 전 의원 등과 함께 민청학련을 결성해 반독재 투쟁에 나섰다.
돌아온 것은 15년 형.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79년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을 비롯해 86년 대통령 선거 직선제 쟁취 국민대회 주도 등으로 수 차례에 걸친 투옥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후 고인은 근거지를 대전으로 옮겨 후배들을 조직 87년 6월 항쟁을 이끌며 지역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나 고인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시련도 뒤따랐다. 역대정권의 감시와 탄압으로 이렇다할 취업은 고사하고 정상적인 생활도 어려웠다. 다행히 야학에서 만난 부인 이인복 씨와 결혼해 1남1녀를 두었지만 생계는 고통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고인은 제도정치를 통한 지역의 변화를 고민하다 당시 ‘꼬마 민주당’에 입당해 대전 동구지구당위원장직을 맡으면서 정치권에 입문한다. 지난 15대 총선 때는 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낙선하고 이후 정치적 재기를 노렸으나 실패했다. 민청학련을 같이했던 이철·박계동씨 등이 모두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고인은 지역민들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 결국 고인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덕구청장 후보 경선에 나섰다 괴한의 피습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는 불의를 사고를 당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과정에서 간암 판정을 받고 채 석 달이 못돼 함께 했던 동지들 곁을 떠났다.
갑작스런 고인의 죽음에 함께 했던 지역의 운동가들은 ‘민주애국지사 고 강구철 동지’의 장례를 지난 6일 대전민주시민장으로 치렀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이인복 여사와 딸 보연(충남대 2년), 아들 경모(고3) 등이 있다. ◑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