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종군실화로 본 민간인 학살
경상대 신경득교수(68·국어국문과)는 지난 97년 북에서 발행된 ‘조선인민보’ ‘해방일보’에서 문학관련 자료를 정리하던 중 한국전쟁 당시 남한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기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됐다. 또한 90년대 중반부터 국내언론에서 보도하기 시작한 지역별 민간인학살사건 기사와 비교작업을 벌였다. 신교수는 피해내용을 ‘미군의 폭격과 포격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미군과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나눠 지역별로 소개했다. 충북의 경우 군경에 의한 민간인학살사건으로 50년 7월 28일 ‘조선인민보’와 같은 날짜의 ‘로동신문’에 보도된 진천 민간인 400여명, 남일면 민간인 50여명 학살기사를 인용했다.
진천 민간인 학살 기사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더욱이 오근장리 약 이킬로 서쪽 지점에서는 무고한 주민들 사백여명을 창고에 집어넣고 총기로 란사하여 학살하였는데 인민군대의 진격에 미처 다 학살치 못하고 비행기로 폭탄을 던져 모주리 학살하였다.’ 이같은 내용은 지난 94년 본보 취재과정에서 생존자 증언을 통해 확인한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또한 8월 7일자 ‘로동일보’ 기사에는 오근장 창고 속에서 400명이 학살된 내용과 함께 음성군 증평에서 500여명이 무참하게 학살된 것으로 보도했다. 또한 학살현장으로 ‘청주군 북이면 초중리 뒷산 솔밭’으로 지목했으나 이는 청원군 북이면 옥수리 옥녀봉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8월 10일자 ‘조선인민보’에는 청주에서 2000여명이 학살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같은 피해자 수는 본보가 확인한 학살현장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 매방골(1천여명), 보은 내북면 아곡리(100여명), 청원 낭성면 관정리 도장골(100여명), 청원 남일면 두산리 분터골(100여명), 가덕공원묘지 8지구 학살현장 등을 종합해 볼 때 결코 과장된 숫자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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