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부음 소식에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오기로 한 지인들이 아직 도착 하지 않아 잠시 기다리는 동안, 땀에 끈적이는 손과 팔을 씻을 요량으로 화장실 세면기 앞에 섰다. 수도 꼭지를 틀자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물줄기는 세면기 속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내 손과 팔뚝을 시원하게 씻어 내리고는 이내 작고 검은 홀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물줄기! 무엇이 되었든 이 세상에서 존재하던 모든 것들은 그 존재의 시간이 짧든 길든, 또한 생명이 있든 없든, 그 모습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한번 존재하면 언젠가는 소멸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던가!
요즘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되었다 할 지라도, 쇠붙이로 만든 기계도 오랜시간 사용하면 닳고 닳아 고장도 나고 부서져 고치거나 아니면 버리고 새것으로 교환해야 하듯, 우리 육신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다. 영정 사진 속 망자 역시 오랜 동안 위암으로 고생하면서 이름난 병원을 찾아다니며 애를 썼지만 할 일 끝내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세면기의 물처럼 좁고 어두운 검은 홀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들녘에 꽃들이 소리 없이 피고 지듯, 불현듯 왔다가 불현듯 사라져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 인것을. 사랑하던 사람들을 두고 홀로 가야 하는 길! 또 보내야만 하는 길!
그것이 누군가에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아득한 이별의 순간이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 세상 어느 산부인과 병동에선 한 송이 새 생명의 꽃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 누군가에겐 감동과 환희의 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아직은 봄인 듯싶어 돌아보니 내 인생 어느덧 녹음 짙은 여름을 벗어나고 있었다. 허전함이 몰려와 문득 병원 뒤쪽으로 난 창가에 기대섰다.
창밖엔 언제부턴가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분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내 삶의 모습이 듯, 이 무더운 여름에 때 아닌 코스모스가 나를 보고 화사하게 웃어 주었다. 아직 중복도 지나지 않은 무더운 여름인데 무엇이 급해 그리 서둘러 피었던가!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가을은 기어이 오고야 말 터인데.
때도 아닌데 미리 피었다 지면 미련처럼 추억만 남아 몸살처럼 그리움이 찾아들어 가슴을 엉키게 하고 말 것을. 나는 자꾸만 푸념만 내 뱉었다. 이제 머잖아 다가 올 나의 가을 앞에 서려니 어쭙잖은 생각과 고집으로 매양 소홀하게 보낸 시간들이 아쉽기만 했다.
지인들은 무슨 할말들이 그렇게도 많은 지 망자얘기며 세상 이야기며 살아가는 잡다한 일들에 대해 끝없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갔다. 나는 그들 곁에 앉아 말없이 담백하고 시원한 황태 국에 밥 한 공기 말아서 세상 이야기로 벌겋게 버무린 김치며, 짭쪼름한 삶으로 간을 맞추고 어쩌다 달콤했던 날들로 윤기를 낸 멸치, 꽈리볶음이며, 내 생애 꽃피던 봄날 같던 새콤달콤한 맛을 낸 오이 초무침이며 말랑말랑한 인절미까지 골고루 다 먹어 치웠다.
그 어떤 일들에 대해 때가 따로 있어야만 할까?
한치 앞도 모르고 바득바득 살아가는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 않은가! 코스모스가 때 아니게 피었다고 나무랄 일도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세상으로 여전히 꽃은 피고 지는데...
다만 살아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리라.
우리의 삶 속에서 죽음보다 더 큰 깨달음이 무에 더 있으랴!
육정숙 시민기자
silverwhitetree@yahoo.co.kr
이 글을 보니 나도 하나 올리고 싶네요
비슷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