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태양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녹여내기라도 할 듯 강렬했다. 숨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 흐르는 땀을 씻어내며 사람들은 이렇게 몇 날만 더 견디고 나면 머잖아, 아침, 저녁 선들 바람 부는 가을이 소리 없이 달려와 우리 곁에 머물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가슴으로 희망의 샘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 힘겹지만 수없는 일상을 맞이하고 보낸다.

지인의 부음 소식에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오기로 한 지인들이 아직 도착 하지 않아 잠시 기다리는 동안, 땀에 끈적이는 손과 팔을 씻을 요량으로 화장실 세면기 앞에 섰다. 수도 꼭지를 틀자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물줄기는 세면기 속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내 손과 팔뚝을 시원하게 씻어 내리고는 이내 작고 검은 홀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물줄기! 무엇이 되었든 이 세상에서 존재하던 모든 것들은 그 존재의 시간이 짧든 길든, 또한 생명이 있든 없든, 그 모습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한번 존재하면 언젠가는 소멸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던가!

요즘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되었다 할 지라도, 쇠붙이로 만든 기계도 오랜시간 사용하면 닳고 닳아 고장도 나고 부서져 고치거나 아니면 버리고 새것으로 교환해야 하듯, 우리 육신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다. 영정 사진 속 망자 역시 오랜 동안 위암으로 고생하면서 이름난 병원을 찾아다니며 애를 썼지만 할 일 끝내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세면기의 물처럼 좁고 어두운 검은 홀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들녘에 꽃들이 소리 없이 피고 지듯, 불현듯 왔다가 불현듯 사라져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 인것을. 사랑하던 사람들을 두고 홀로 가야 하는 길! 또 보내야만 하는 길!

그것이 누군가에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아득한 이별의 순간이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 세상 어느 산부인과 병동에선 한 송이 새 생명의 꽃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 누군가에겐 감동과 환희의 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아직은 봄인 듯싶어 돌아보니 내 인생 어느덧 녹음 짙은 여름을 벗어나고 있었다. 허전함이 몰려와 문득 병원 뒤쪽으로 난 창가에 기대섰다.

창밖엔 언제부턴가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분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내 삶의 모습이 듯, 이 무더운 여름에 때 아닌 코스모스가 나를 보고 화사하게 웃어 주었다. 아직 중복도 지나지 않은 무더운 여름인데 무엇이 급해 그리 서둘러 피었던가!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가을은 기어이 오고야 말 터인데.

때도 아닌데 미리 피었다 지면 미련처럼 추억만 남아 몸살처럼 그리움이 찾아들어 가슴을 엉키게 하고 말 것을. 나는 자꾸만 푸념만 내 뱉었다. 이제 머잖아 다가 올 나의 가을 앞에 서려니 어쭙잖은 생각과 고집으로 매양 소홀하게 보낸 시간들이 아쉽기만 했다.

지인들은 무슨 할말들이 그렇게도 많은 지 망자얘기며 세상 이야기며 살아가는 잡다한 일들에 대해 끝없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갔다. 나는 그들 곁에 앉아 말없이 담백하고 시원한 황태 국에 밥 한 공기 말아서 세상 이야기로 벌겋게 버무린 김치며, 짭쪼름한 삶으로 간을 맞추고 어쩌다 달콤했던 날들로 윤기를 낸 멸치, 꽈리볶음이며, 내 생애 꽃피던 봄날 같던 새콤달콤한 맛을 낸 오이 초무침이며 말랑말랑한 인절미까지 골고루 다 먹어 치웠다.

그 어떤 일들에 대해 때가 따로 있어야만 할까?

한치 앞도 모르고 바득바득 살아가는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 않은가! 코스모스가 때 아니게 피었다고 나무랄 일도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세상으로 여전히 꽃은 피고 지는데...

다만 살아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리라.

우리의 삶 속에서 죽음보다 더 큰 깨달음이 무에 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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