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출신 독립운동가 8명 서훈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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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출신 독립운동가 8명 서훈 추서
  • 권혁상 기자
  • 승인 200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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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권태응옹, 도종환 시인 자료수집 노력

제60주년 광복절을 맞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충북지역 출신 독립운동가 8명이 새롭게 발굴됐다.국가보훈처는 8·15 광복절을 계기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47명을 포함해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 등을 전개한 총 214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 대해 서훈을 추서했다.

도내에서는 8명의 독립운동가가 공적을 인정받아 각각 서훈이 추서됐고 유일하게 안병구옹(77·괴산)만이 생존하고 있다. 서훈 대상자는 ▶건국훈장 애족장 안성연(단양), 이세영(제천) ▶건국포장 안병구(괴산) ▶대통령표창 권태응(충주), 방재구(단양), 성축용(청원), 신태동(충주),장출봉옹(영동) 등이다.

특히 ‘감자꽃’의 시인 권태응 옹은 학적부와 독립운동사에 나와 있는 한 줄의 공적내용을 근거로 도종환 시인이 일본내 자료수집에 나서고, 열린우리당 오제세 의원(청주 흥덕갑)이 국가보훈처에 자료발굴을 촉구하면서 결실을 맺게 됐다.

권옹의 독립유공자 신청작업은 작년부터 사작돼 충북작가회의 도종환 시인의 주도로 일본 현지 지인을 통해 자료수집에 나섰다. 권옹은 일본에서 유학생 독서회를 조직해 항일 독립사상을 고취하다 일경에 체포돼 스가모형무소에 1년간 수감됐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고인의 유자녀 2명이 미국 이민을 가는등 유가족이 없어 도 시인이 직접 수감자료 찾기를 시도한 것.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한계에 부딪쳐 국회 정무위 소속의 오제세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오 의원은 작년 9월 국가보훈처 국정감사에서 “역사정기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친일 진상규명 못지않게 묻혀진 항일 독립운동의 복원이 절실하다”며 고 독립운동가의 해외자료 수집에 국가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따라 국가보훈처는 국내 및 해외자료 조사단을 강화하는등 적극 나서 권 옹의 공적 사실을 뒷받침하게 됐다. 국가보훈처가 제시한 권옹의 공적은 1935년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시 비밀조직인 UTR 구락부에 참여하였고, 졸업식 당일과 졸업후에는 친일학생구타사건 주도와 조국의 독립방안을 논의하다가 각각 체포된 사실이다.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안성연옹은 1920년 9월 함남 원산시 중심가에서 조선독립만세 운동을 벌이고 일본인 상점을 파괴하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돼 징역 1년6월의 옥고를 치렀다.이세영옹은 1907년 8월 이강년 의진의 감군(監軍)에 이어 중좌군장과 우군장에 각각 임명돼 제천 등지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벌였다.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안병구옹은 1940년 서울 조선문화학원 중등과 재학당시 등교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벌였으며,사직공원 정문 앞 국세조사선전 입간판에 ‘대한독립만세’라고 대서한 사건과 관련해 징역 8월의 옥고를 치렀다.

방재구옹은 1919년 서울 고등보통학교 재학중 서울 남대문 역전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다가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성축용옹은 1941년 대구사범학교 재학당시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비밀결사인 ‘문예부’에 가입, 활동하던중 대구사범 ‘사상사건’으로 체포돼 3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신태동옹은 1919년 청주면 청수동 김현구의 집에서 독립운동과 관련된 경고문 3백여매를 인쇄할때 청주농학교 학생으로 동료 임창수 등과 동참했다가 징역 3월을 받았다.장출봉옹은 1919년 영동군 황금면,추풍령 헌병대가 만세시위 주동인물을 체포하자 이들을 구출하기 위한 독립만세시위 운동을 주도하다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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