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론 인정속 득실 계산엔 각개약진
자민련 “그나마 쪽박 깨질라” 위기감 고조
여권의 신당추진은 지역정가에도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 연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중앙정치권의 풍향에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공개적 발언(發言)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같다. 민주당이나 자민련 모두 신당의 대세론을 인정하지만 그런 인식의 기저(基底)는 서로 다르다. 민주당이 앰플을 맞는 것쯤으로 여긴다면 자민련은 아예 생존의 문제로 접근한다. 신당과 관련, 충북정계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 중의 하나는 물론 자민련의 향후 행로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운명’이라고 해야 더 설득력을 얻는다.
8. 8 재보선의 승리로 한나라당이 국회 272석중 과반(137)을 넘는 139석을 차지함으로써 그동안 한나라 민주 양당의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로 생존을 이어가던 자민련은 사실상 산소호흡기마저 끊길 상황이다. 때문에 현재 중앙에선 자민련의 신당참여를 놓고 당대 당 통합이냐 아니면 의원 개인별 행동이냐로 논란을 빚지만 정작 지방에선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감이 더 하다. “솔직히 말해 지금의 분위기는 개점휴업 상태이고 언제든지 보따리를 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자민련 관계자의 말이 현재의 절박한 분위기를 잘 대변한다. 설령 자민련의 신당 참여가 당대 당 통합의 형식을 취한다고 해도 탈당 가능한 의원들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현실에서 과연 명맥을 제대로 이어가겠느냐는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충북의 경우 그동안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향후 탈당 군(群)으로 종종 분류됐던 정우택(괴산 진천 음성) 송광호의원(제천 단양)의 거취가 이목을 끌 수 밖에 없다. 이들에 대해선 잔류와 탈당의 시각이 여전히 병립한다. 자민련이 신당합류를 위해 어떤 형식을 취하든 당내 분열은 불문가지라는 게 민주당측의 시각이다.

무심한 돌에 개구리 다칠라

신당의 조직책 문제도 현재로선 예사롭지 않다. 각각의 정치세력들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지만 때가 되면 시.군지구당 조직책 인선을 놓고 경선후보들의 지분다툼과 연고원 주장이 복잡하게 얽힐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 충북은 비교적 교통정리가 쉬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자민련 인맥간에 서로 이해가 엇갈리겠지만 두당 모두 지역에 따라 조직책이 공석인데다 현역 위주로 조직책을 선정할 경우 크게 부딪힐 지역이 적기 때문이다. 우선 충북의 정치 1번지 청주 흥덕엔 민주당 홍재형의원과 자민련 김춘식 조직책(전 충북도의회 의원)이 각각 당을 대표하고 있지만 김조직책은 현실을 인정하는 자세다. 그는 “정치는 흐름인데 그 흐름을 지방에서 거역할 수는 없다. 신당 논의가 워낙 큰 틀에서 이루어지고 조율되기 때문에 지구당 문제는 크게 쟁점화되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이라면 그 틀을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며 이미 마음을 비운 상태다. 그러나 청주 흥덕구는 사정이 다르다. 양당의 조직책이 모두 원외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노영민위원장은 모든 조건의 전제하에서도 조직책의 당연한 승계를 확신하지만 자민련 최현호씨(충청대 겸임교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그는 자민련의 신당참여가 기정사실화되면 어떤 식으로든 자민련의 충청권 연고를 강력 주장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갑작스럽게 조직책을 맡았지만 나로선 정당의 선택은 곧 정치생명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소속 출마의 한계를 두번씩이나 경험했기 때문에 신당의 조직책도 당연히 맡을 것이다. 결국 현역의원이 경합되지 않는 충청권에선 자민련의 연고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들 두고 주변에선 (중앙에서) 무심코 던진 돌에도 (지방에선) 개구리가 맞아 다칠 수도 있다고 비유한다.

이용희 이젠 지역구 양보할 것

현역인 민주당 이원성의원과 자민련 허세욱씨가 각각 당을 책임지는 충주지역도 향후 조율에 별다른 걸림돌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정상을 못찾은 이의원의 건강이 변수라면 변수가 될 수 있다. 제천 단양은 민주당 이근규위원장이 선거법위반으로 공직출마 자격을 상실함으로써 자민련 송광호의원이 신당으로 옮기는데엔 큰 문제가 없다. 이곳은 현재 공석인 한나라당의 조직책 인선과도 맞물려 이래저래 송광호-신당-한나라당의 3각관계(?)를 점치려는 호사가들의 좋은 안주거리가 되고 있다. 이근규씨는 2000년 4. 13 총선의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지난 5월 대법원의 확정 판결(징역 10월 집행유에 2년)을 받은 상태에서도 당을 대표해 지난 6. 13 지방선거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본인이 판결 결과를 얘기하지 않아 잘 몰랐다. 뒤늦게 당에서 사고지구당으로 분류했다”고 말했다. 청원은 자민련 오효진위원장이 6월 지방선거를 통해 자치단체장으로 변신함에 따라 민주당의 고민이 없어지게 됐으며, 진천 음성 괴산 역시 민주당을 맡고 있던 김진선씨(예비역 대장)가 얼마전 서해교전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반발, 탈당함으로써 경합요인이 없어졌다. 보은 옥천 영동은 현재 자민련의 조직책이 공석으로 있어 민주당 이용희위원장의 운신폭이 크겠지만 당내에선 그가 나이(72)등을 감안, 신당의 조직책까지 욕심부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 본다.

신당은 맘대로 그러나 여론은 냉정

신당논의에 대해 지역의 대체적인 여론은 반신반의다. 정계에 일대 변화가 올 것이라는 데엔 공감하면서도 워낙 이합집산의 성격이 강한데다 당의 정체성이 모호하기 때문에 그 시너지 효과에 의문을 갖는 시각도 많다. 한 정치 전문가는 “지금의 분위기라면 단순히 재집권을 위한 반창(反昌) 세력들을 규합하는 꼴이다. 결국 패거리 정치를 획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보수가 아닌 수구세력까지 거론되는 것을 보면 민주당의 존립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 한가지, 지금까지의 신당 논란은 정치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 논란의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됐던 국민들의 반격이 어떻게 나타날지도 궁금하다. 그것은 또 다른 쿠데타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지금처럼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짝짜꿍을 한다면 어떤 계기가 드러날 경우 반발은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 신당을 마치 재집권을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시각은 위험하다. 과거 3당야합 때 앞에 내세워졌던 ‘국구의 결단’은 그래도 지금보다는 명분을 얻었다. 지금은 단순히 재집권하겠다는 목적 하나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이러고선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 한덕현 기자

노무현과 관련된 한가지 가설
“또 다른 쿠데타가 차라리 낫다”
지역에서도 “독자노선 천명” 주장

국민경선을 통해 기껏 집권당의 대선후보로 뽑히고서도 엉뚱하게 당내에서조차 정치적 생사의 기로에 선 노무현에 대한 지역 여론중 최근 두드러지는 것이 하나 있다. 굳이 명분없는 신당타령에 휩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수도권에서 불기 시작한 ‘노무현 지키기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독자 논선을 천명해 개혁적 후보로의 이미지를 역으로 부양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계보 계파정치 타파를 주창한 노무현의 입장에선 사실 부담스럽다. 어차피 정치가 세(勢)의 게임인 점을 감안할 때 노무현으로선 당의 울타리를 쉽게 걷어치울 수만은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다른 시각의 의견이 많다.
우선 노사모 회원인 K씨(43. 청주시 율량동)의 말을 들어 보자. “노무현이 신당에 가더라도 반대파에 의해 어차피 끄들린다(시달린다). 이럴바엔 차라리 자신의 선명성으로 승부할 필요가 있다. 지금 논의되는 신당은 설령 나오더라도 필연적으로 깨진다. 굳이 그런 부담을 껴안고 출발할 이유가 없다. 현재의 추세라면 노풍의 바람이 빠쪘듯이 한나라당 바람, 이른바 한풍과 창풍(昌風)도 조만간 시들해진다. 김대중 정권에 대한 반발표를 한나라당이 계속 흡수하기엔 앞으로 어려움이 많다. 조만간 모든 것이 타 터질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의 지지도는 이미 바닥를 쳤다. 이젠 회복기만을 남겨 두고 있다.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의 3자구도에서 노무현이 최하위 지지도를 기록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이회창의 지지도가 점차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노무현도 한참 동안은 이회창을 10% 포인트 이상으로 앞서지 않았는가. 정몽준에 대해선 언론과 여론의 자질검증이 아직 시작도 안 됐다. 그의 현재 지지도는 당연히 허수다. 노무현이 이들과 함께 자질 검증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 유리하다. 노무현은 차별화된 이미지, 즉 개혁과 참신의 카테고리를 벗어나면 절대 실패한다. 지금같은 곡예 처신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주장도 있다. 노무현이 계속 유지하는 30~35%대의 지지도는 그야말로 더 이상 빠질 수 없는 ‘골수 표’의 영향이라는 것. 가장 바닥을 친 지지도가 이 정도이면 민주적 선거가 보장되는 현실에선 일단 당선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노무현의 지지층들은 사실 지난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 다소 무관심했다. 그 결과만을 놓고 노무현을 재단하는 건 무리다. 막상 대선후보가 결정되고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민주당의 정당지지도가 20% 아래를 헤매고 있지만 노무현의 지지도는 바닥을 친 상태에서도 계속 35% 내외로 꾸준하게 나타난다.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 지지층이 다시 움직이면 노풍의 재건은 시간 문제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에선 시사평론가 유시민씨를 비롯한 문성근 명계남씨 등이 각계인사 2500명의 서명을 시작으로 ‘국민후보 노무현지키기 시민운동’에 돌입해 대선정국의 또 다른 변수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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