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찜통이 돼 연일 수은주가 30도를 훨씬 웃도는 폭염 속에 우리 쌀을 지키려는 일단의 농민들이 지금 고행을 계속하며 남쪽에서 서울을 향해 북으로, 북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각 종교의 농민 단체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귀농운동본부 등이 주축이 된 ‘우리 쌀 살리기 100인 100일 걷기’ 대 장정에 나선 이들이 바로 그 들입니다.(www.indramang.org.) 지난 7월 1일 전남 진도를 출발한 이들은 하루 20킬로 가량을 걸으면서 경남∼전남북∼경북∼충남북∼강원∼경기도를 지그재그로 오가며 두 달 뒤인 10월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 할 예정입니다. 100일(실제는 105일)동안 이들이 걸어야하는 거리는 자그마치 1800킬로의 멀고 먼 길입니다.
첫 날 진도의 용장산성을 출발한 이들은 그동안 해남 강진 보성 벌교 순천을 거쳐 하동 진주 산청 실상사 남원 순창 광주 장성 고창 정읍 부안 김제 전주 진안 무주를 지나 13일 영동군 용화면 불당골에 도착해 충북에서의 첫 밤을 맞습니다.
한창 바쁜 농번기에 농사일도 버려 둔 채 이들이 뙤약볕 고행 길에 나선 것은 우리의 농촌현실이 그만큼 절박한 데 서 나온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의 목숨 줄이나 다름없는 쌀이 완전히 개방되면서 수입 농산물에 의한 농촌의 몰락이 눈앞에 와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바라 볼 수만은 없었던 게 이들의 목 메인 절규입니다. 이들은 행군을 계속하며 노숙지 에서 마을의 농민들을 만나 농업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함으로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오늘 날 우리의 농촌은 참담한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 일 할 사람이 없이 공동현상(空洞現像)이 된 황폐한 농촌, 일년 내내 땀 흘려 일해봤자 제 값도 받지 못하는 적자영농,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값싼 곡물들. 설상가상으로 2년 뒤부터 쌀 수입이 자유화되면 500만 농민의 90%이상이 벼농사를 포기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 농촌의 현주소인 것입니다.
98년 외환위기 때 금방 나라가 망할 듯 온 국민이 난리였지만 목숨줄인 농촌이 망해가는데는 정치권도, 매스컴도 그리고 국민들도 누구하나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습니다. 오 천년 이 나라역사, 이 민족을 지켜 온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농촌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깃발아래 풍악을 울린 때가 언제였습니까. 아득한 옛 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도시의 어느 누가 농민들이 피땀 흘려 지은 곡식으로 하루 세끼 배를 불리면서 고마운 줄을 알고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휴가철이 되어 도로가 마비되고 피서지마다에 수백만의 인파가 몰려 희희낙락이지만 누구도 농민들의 애끓는 절규를 들으려 하지조차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들만의 아픔’일 뿐입니다.
100일걷기 농민들은 영동에서 이틀을 보내고 경북으로 넘어가 김천 대구 군위 선산 상주를 거쳐 30일 보은 땅에 들어섭니다. 이들은 9월1일 옥천을 거쳐 대전 공주 청양 등 충남 땅을 돌아 15일 진천군 백곡면 백곡초등학교 근처에서 야영을 합니다. 이들은 16일 초평면, 17일 음성 원남면, 18일 괴산 소수면, 19일 불정면, 20일 충주를 거쳐 강원도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길만이 살길이기에 쓰러져도 멈출 수 없다”며 폭염 속 4500리 길을 걷고 있는 농민들, 그들은 누구입니까. 대열이 지나는 길목에 나가 땀에 젖은 형제들의 손이라도 잡아 주면 어떨까요. 그것이 동시대를 함께 사는 국민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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