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다. 거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휴가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게 하는 가장 즐거운 때일 것이다. 하지만 일단 집 밖에 나서면 즐거운 마음을 한번에 망가뜨리는 여러 가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피서전쟁의 시작인 셈이다.
고속도로를 꽉 메운 휴가차량은 명절 ‘민족의 대이동’ 저리 가라다. 그러다보니 물 깨끗하다는 동해안 한 번 가려면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10여시간씩 차를 타야 한다. 이렇게 고생고생해가며 도착한 피서지에서 마주치는 것은 바가지요금과 무질서와 야박한 인심이다. 사람들이 왔다 간 자리는 음식쓰레기와 각종 생활쓰레기로 거대한 산을 이룬다.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연은 이 과정에서 신음하며 죽어간다. 조금 과장해서 ‘물반, 사람반’인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을 다녀온 모씨는 “휴가철마다 한국인의 못된 국민성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깨끗한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도내 화양동 계곡도 올 여름 몰려드는 인파로 몸살을 앓았다. 이른 아침, 잔잔히 가라앉은 계곡은 물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고, 주변을 병풍처럼 두른 나무와 바위는 한폭의 산수화 같았다. 바위에 누워서 바라보는 계곡의 아침은 푸른 하늘과 깨끗한 물, 시원한 공기로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이런 기분도 잠시. 민박집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평소 2∼3만원 하는 방 한 칸이 8만원선까지 올랐고 방은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었다. 공중화장실은 청소가 안돼 있고, 걸레를 빠는 곳은 샤워장으로 둔갑해 있었다. 게다가 수도꼭지도 고장나 물을 틀기가 어려웠고, 물을 끼얹을 만한 바가지 한 개가 없었다. 바닥에는 휴지와 머리카락, 빈 샴푸통이 나뒹굴었다.
음식은 얼마나 비싼지 한 끼에 5000원짜리 이하가 없고 모든 생필품에 10∼20%의 바가지 요금이 붙어 있었다. 방안의 침구는 또 얼마나 지저분한지 감히 이불을 덮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객들이 드나드는 출입구에는 고장난 전등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주인도 물론 불친절에 몰상식 그 자체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 집에 앉아있는 것이 제일 좋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와 2박3일로 예정했던 여행은 1박2일로 끝났다. 이런 곳에 와보면 시골은 이제 더 이상 물좋고 인심 좋은 곳이 아님을 알게된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바가지 요금을 씌워 돈을 벌고, 어떻게 하면 감독관청의 지시를 어기고 편법으로 운영할까, 또 어떻게 하면 시설에 상관없이 많은 손님을 받아 매상을 올릴까 만을 생각하는 ‘얕은 꾀‘의 사람들만 볼 뿐이다.
놀러온 사람들도 일찍 왔다는 이유만으로 계곡을 전세낸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가장 좋은 위치의 바위에 텐트를 친 사람들은 행인이 지나갈 수도 없게 독차지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아랑곳없이 음악을 크게 틀고, 음식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고, 밤늦게까지 고성방가를 일삼는 사람들이 주변에는 너무 많다. 월드컵 때 모든 관중들이 쓰레기를 줍고 질서를 지킨 그 때 그 국민들의 모습이 아니다. 가장 작은 것이 감동을 주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법이건만 이런 피서여행은 피곤과 사람에 대한 실망감만 안겨준다. ‘일등국민’은 광고속에서나 볼 수 있는 허상일까. 월드컵을 성공리에 끝내고 월드컵정신을 사회 각분야에 심어보자고 많은 사람들이 외쳤지만, 아직도 안보이는 곳에서는 이런 식이다. 외국사람들이 보면 어떨까를 염려하기 전에 우리 국민들끼리도 예의와 상식을 지켜야 한다.
손님들에게 적정한 가격을 받고, 기분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자연을 모든 사람의 것으로 인식하고 아낀다면 피서여행길은 ‘즐거운 탈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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