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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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여름나기
  • 임병무 고문
  • 승인 2005.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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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 띤 하늘이 연일 땅덩이를 삶아대고 있다. 겨울추위를 동장군(冬將軍)에 비유한데 비해 삼복더위를 염제(炎帝)로 더 높여 부른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름이 익어가면 바다와 계곡은 숫제 거대한 목욕탕이다.

고려나 조선시대에 무슨 비치 파라솔이 있었으며 아찔아찔한 비키니 수영복이 있었겠는가.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치지 않는다’고 신체의 전부를 물 속에 담가버리며 수영을 하는 모습은 거의 전하지 않는다.

산수 좋은 곳을 찾아 복달임을 하며 원기를 보충하고 흐르는 계곡 물에 발을 씻는 정도의 탁족(濯足) 풍경은 김홍도, 신윤복 등의 풍속화에서 구경할 수 있다. 아무리 덥기로 서니 팬티를 입지 않았던 시절에 무슨 수로 물 속에 뛰어들었을까. 계곡 물은 얼음장같아 탁족하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쫓을 수 있었다.

화양동 암서재와 같은 바위 위의 정자에는 산들바람이 더위를 저만치 밀어낸다. 파천 계곡을 따라 내려온 물굽이는 암서재의 절대온도를 낮추고 인근의 화양구곡은 감상만으로도 상대 온도를 떨어드렸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로 방안의 절대온도를 낮춘 게 아니라 자연의 조건을 십분 이용하여 염제를 피해가는 방법을 썼던 것이다.

배낭을 매고 온갖 수선을 피우지 않아도 한옥의 대청마루나 초가 토담집은 그 자체가 피서지 역할을 하였다. 대청마루의 앞, 뒷문은 마주 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문을 동시에 열면 저 산마루에서 내려온 시린 바람이 대청마루에서 대류현상을 일으킨다.

마당에는 잔 자갈이나 백토를 깔았다. 뙤약볕은 방안으로 직접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백토 깔은 마당에서 굴절되고 식혀지며 마루로 올라섰다. 마루에 올라선 햇볕은 다시 창호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자외선이 여과되어 순한 빛깔만 방안으로 모았으니 이 스리쿠션의 방법 앞에 염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양반 집만 그런 게 아니다. 서민의 초가도 훌륭한 냉방시설이다.

두꺼운 볏 집 지붕은 햇볕을 막아주며 토담 벽은 습도를 잘 조절하였다. 우기에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기에는 반대로 내뱉어 사계절 보온, 보냉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사대부 집 양반들도 집안에 초당(草堂)을 지어 한 여름을 보내었다.

아무리 덥다해도 지구 안에서 도망칠 곳이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열치열의 피서 법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피서(避暑)가 아니라 극서(克暑)에 해당한다. 더위로 더위를 이기는 법, 이 방법이야말로 수 천년 이어져 내려온 전통의 여름나기다.

모시 적삼을 입고 머리를 곱게 빗은 여인네를 보기만 해도 시원해진다. 여름엔 온갖 노리개로 단장한 여인보다 모시 저고리를 입은 여인네가 더 소박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모시제품은 촉각적 청량감과 시각적 청량감이 결합하여 시원함을 더해준다.
삼베와 모시는 가볍고 통풍성이 강해 여름철 옷감으로서는 최고로 친다. 대나무 돗자리는 여름나기의 필수품이다. 대나무 숲에서 바람을 그대로 가져와서 그런지 깔아만 놓아도 시원하다. 대나무 방석과 죽부인은 열대야를 잊게 해주는 여름의 반려자다. 이제는 승용차 안 시트에서도 대나무 방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저녁별이 돋을 무렵이면 모깃불을 놓았고 마당에는 큰 멍석을 깔았다. 가마솥에서 갓 쪄낸 옥수수와 샘물에서 동동 띄운 수박으로 만든 화채는 잠 못 이루는 여름밤의 별난 디저트다. 그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다 지쳐 떨어지면 북두칠성은 어느새 머리맡에서 회전을 여러 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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