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 김승환 지회장 ·김창규 목사 남북작가대회 참여
홍석중씨 만나 ‘홍명희 문학제' 논의 해

도종환 시인, “남북한 문인들의 만남은 ‘첫 맞선’ 처럼 설레였다”

‘6·15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이하 남북작가대회)에 참여한 남북한의 작가 200여명은 지난 20~25일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등지에서 분단 60년만에 뜨거운 재회를 하고 돌아왔다.
이들의 만남은 문학을 매개로 한 내면 교류의 첫 걸음이자, 여백과도 같았던 ‘통일문학’의 첫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사건’이었다.

남북한 문인들은 방북 첫날인 20일 평양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작가대회’를 열고 ‘6.15 민족문학인협회’를 구성키로 했다. 이는 분단 60년만에 남북 문인들이 함께 하는 문학인 단체가 만들어지는 것.

또한 남북 문인을 대상으로 ‘6.15 통일문학상’ 시상과 문예지 ‘통일문학’(가칭)을 발행키로 합의했으며, 백두산 천지에서 해돋이를 배경으로 열린 시낭송회는 서로의 시를 읽으며 뜨거운 정을 나눴다고 한다. 남쪽 대표단은 기자회견에서“이르면 내년 6월 서울,광주, 제주 등을 순회하는 제2차 남북작가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측대표단은 고은 시인을 단장으로 신경림, 이기형 소설가 송기숙, 황석영, 김원일, 현기영, 평론가 백낙청 등 문인 98명이 참여했다. 북측은 시인 오영재, 동기춘, 소설가 홍석중, 남대현, 김정 4.15 창작단 단장 등 100여 명이 참가했다.

   
▲ 폐막연회장에서 찍은 단체 사진. 왼쪽에서 다섯번째부터 홍석중, 도종환, 김창규, 김승환 회장.
충북에서는 도종환시인, 김승환 충북민예총지회장, 김창규 목사가 이번대회를 다녀왔다.

먼저 김승환 회장은 “1차로 46년 2월 서울 종로 YMCA에서 북측 전국문학자대회가 열렸었다. 그후 끊어졌던 남북작가회담은 89년 판문점에서 남북 각각 5명의 문인들이 만나 성사될 뻔 했으나, 가는 도중 남측 문인들은 안기부직원들에게 체포됐다. 지난해에는 북한과 미국의 경직된 국제정세 때문에 또다시 결렬되기도 했다. 이번 대회는 민족작가회의에서 수차례에 걸친 노력끝에 성사됐다”며 이번 대회의 역사성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충북작가회의는 2000년부터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자 북한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홍석중씨를 ‘홍명희 문학제’에 초청하기 위해 일본과 중국등을 거쳐 수차례 초청장을 전달했지만 북측 사정으로 확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소설가 홍석중씨는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며 국어학자 홍기문의 아들로 다수의 빼어난 소설을 선보였다. 특히 지난해에는 소설 ‘황진이’가 제19회 만해문학상으로 선정돼 관심이 집중됐다.

김회장은 “홍명희·오장환 문학제가 10돌을 맞이했고, 그동안의 노력과 진정성이 남북한 작가들에게 알려져 충북작가회의는 ‘특별한 배려’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이는 북측대표단이 공식회의와 만찬자리에서 충북작가회의 작가들에게 남한의 쟁쟁한 문인들 보다 앞선 ‘2번’ 테이블을 내주었다는 것. 1번 테이블은 주석단이었고, 사실상 첫번째 테이블을 내주어 그의 말을 빌자면 ‘하루 아침에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 또한 김회장은 “홍석중씨가 만찬 자리에 동석해 홍명희 문학제에 관련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뿐만 아니라 특별한 에피소드도 만들고 돌아왔다”고 밝혔다.

특히 술을 잘 못하는 홍석중씨의 술을 대신 받아먹은 김회장은 ‘술서기’, 도종환 시인은 홍명희 문학제를 오랫동안 추진해왔다고 해서 ‘홍종환’이라는 애칭을 받았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특별한 관심의 표현이다.

도종환 시인 또한 “분단문학사가 통일문학사를 지향하는 시점에서 홍명희· 오장환 문학제를 이끌고, 생가복원 등을 추진한 것에 다들 높게 평가를 해주었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서로의 작품집들을 교환했고, 남측 문인들이 북측문인들에게 전해줄 선물을 개인별로 마련하기도 했다. 충북작가회의는 홍석중씨에게 고향인 괴산전경, 조상들 산소, 홍명희생가, 문학비, 남쪽 친척들 등이 담긴 사진첩 화일을 전해줬다. 홍석중씨가 사진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져 잠시 모두 숙연했다.”

또, 홍명희 선생 생가의 기와와 동부리 고가의 ‘흙’을 병에 담아 가기도 했으나 공항에서 저지를 받아 지금은 도시인의 집 한켠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홍석중씨는 문학제와 관련 “북한의 문학사에서 개인을 사회보다는 우선시 될수는 없다. 그래서 한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꼭 가고 싶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꼭 만나리라는 희망을 잃지 말자”고 했다는 것. 이에 도시인은 “북에게 전해받은 책들을 보면 개인의 프로필이나 광고성 문구들이 전혀없다. 이는 개인보다는 국가의 이념이 중요시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도시인은 이번 남북한 문인들의 만남에서 대해 “맞선자리에서 낯선 두 남녀가 만나 서로를 궁금해가며 알아가는 정도”라고 비유했다. 이는 4년전 첫 방북을 했을때만 해도 “선생님 뭐하시는 분입니까”가 서로의 인사였다는데 이번에는 “북측 작가들이 책을 읽어봤다”며 질문을 해왔다는 것.

그는 이번대회가 남긴 가장 중요한 화두는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힘의 논리, 주관적 논리, 지배적 논리가 아닌 화해와 협력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것.

또한 북측 문인들 작품에 대해서는 “개인의 감정보다는 사회적인 기조를 드러내는 활동이 대부분이지만 소수나마 지식인 사회를 비판하거나 생산력 문제의 유연성 제기, 인간의 성의 묘사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북한 사회의 조심스런 변화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