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무더위 대단합니다. 삼복이라고는 하지만 연일 30도를 치솟아 푹푹 찌는 불볕더위는 영락없는 가마솥이요, 잠 못 드는 한밤중 열대야 또한 찜통을 방불합니다.

옛 사람들이 혹한을 동장군(冬將軍)이라 하면서 폭염을 염제(炎帝)라 칭했던 뜻을 알만합니다.

지난주는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핫 뉴스가 잇달았습니다. 아시아나 조종사노조 파업, 병원노조파업, 동해안 총기탈취사건, 두산그룹 형제들의 분쟁, 안기부 불법도청파문 등이 온 나라를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했습니다.

거기다 웬, 초를 치느라고 만취한 판사가 택시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경찰에 붙잡힌 웃지 못할 해프닝마저 있었으니 아무래도 날씨가 더우면 사람들도 정상을 일탈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각종 특종에 가려 반짝뉴스로 끝났지만 지난주 대법원의 여성 종중회원 인정판결은 우리 여성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습니다. 남존여비라는 유교적 관습의 희생물이 되어 온 여성들이 비로소 남성과 같이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게 된 것은 그야말로 파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확정 판결이 나자 눈물을 보이며 만세를 부르던 여성들의 감동적인 모습은 마치 잔다르크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의 환한 얼굴들은 이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한을 안고 죽어간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의 피 어린 얼굴 위에 영화 장면처럼 오버랩 되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3월의 호주제 폐지가 전 여성계가 범 국민적 운동으로 성취한 것이라면 이번 종중회원 인정판결은 평범한 가정주부들 몇몇이 6년여에 걸친 눈물겨운 투쟁으로 일궈 낸 ‘작품’이라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사실 우리 나라의 남존여비사상은 조선왕조 600년의 국교가 유교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유별났던 게 사실입니다. 여자라는 그것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천시를 당하면서 평생을 노예처럼 살다가 일생을 마쳐야 했던 것이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의 운명이었습니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흔치 않은 여성천시가 왜 우리 나라에서는 그처럼 혹독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칠거지악(七去之惡), 삼종지도(三從之道), 여필종부(女必從夫),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유교이념은 거역할 수 없는 계율이 되어 이 땅의 여성들에게 굴종을 강요했습니다. 여성들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거나 “북어나 계집은 사흘마다 패야한다”는 사회적 편견의 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대법원이 그 동안의 판례를 깨고 출가한 여성에게도 종중회원 자격을 인정한 것은 양성평등의 헌법정신과 시대변화에 부합하는 ‘명 판결’로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또 이번 판결은 양성평등의 이념을 구현한 것으로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옥죄어온 족쇄를 풀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습니다.

우리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단순히 ‘딸들의 반란’이란 말로 화제 삼아 논할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우리 사회의 그릇된 관습과 전통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새롭게 바꾸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 본사고문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