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성박사, 개인 천문관 전시품 청주시 기증서약 ‘물거품’ 위기
나일성천문관 예산지원한 예천군, ‘한 점도 내줄 수 없다’ 반발

오는 9월 준공을 앞둔 청주 우암어린이회관내 천문전시관(이하 청주천문관)의 전시품 기증여부를 놓고 청주시와 경북 예천군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당초 청주시에 천문관련 전시품을 기증키로한 사람은 국내 천문학계의 ‘대부’로 통하는 나일성박사(69·연세대 석좌교수)였다. 지난해 3월 천체망원경을 비롯한 256점의 전시자료를 청주시에 제공하기로 기증서까지 작성했다. 나박사가 기증하려는 전시자료는 현재 예천군에 위치한 ‘나일성천문관’에 전시돼 있는 상태다. 문제는 사설 기관인 ‘나일성천문관’이 예천군으로부터 수억원의 시설지원을 받고 매달 운영경비까지 지원받았다는 점이다. 나박사의 청주시 기증서약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예천군과 군민들은 법적대응 움직임까지 보이며 적극 반발하고 나섰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박사는 청주시에 기증물품의 ‘축소‘라는 조정안을 제시하고, 예천군에는 ‘나일성천문관’ 유지를 약속하는등 진화에 나서고 있다. 결국 원로 천문학자의 불분명한 처신 때문에 양쪽 지방자치단체의 실무자들이 피곤한 협상을 벌이게 된 것이다. 청주천문관 자료기증을 둘러싼 기증자와 청주시·예천군의 미묘한 3각 갈등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2000년 9월 청주인쇄출판박람회장의 전시품 가운데 고대의 천문도 4점이 눈길을 끌었다. 전시품 대여자는 나일성박사였고 청주와 첫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당시 박람회 큐레이터인 최모씨가 나박사를 만나 천문도 4점의 전시섭외를 성사시켰다. 박람회가 끝나자 나기정 전 시장은 전시품 대여자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이때 나 전 시장과 나박사의 첫 대면이 이뤄졌고, 시장의 문화마인드과 청주의 문화인프라에 대해 나박사가 호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는 것.
“청주시의 문화정책에 호감을 갖게된 나박사가 충북대 천문학과의 후배교수들을 만나 상당산성 남문의 대학 천문대시설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예천군의 나일성천문관과 비교할 때 지역기반과 인적기반이 큰 차이가 나고 서울과 접근성도 뛰어난 점등을 감안해 본인 스스로 청주 이전을 결심한 것이다. 청주방문 직후 큐레이터 최씨를 통해 천문자료 기증의사를 청주시에 전달했고 이때부터 실무적인 논의가 진행됐다” 청주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청주시는 예천 ‘나일성천문관’에 담당직원을 보내 전시자료의 종류와 상태등을 확인했다. 시는 충북대 천문대와 교육과학연구원 천체투영실(플라네타리움)등을 연계한 천문교육 체험의 장으로 우암어린이회관내 건립중인 제3전시관을 꼽았다. 시관계자는 “어린이회관 전시공간이 비좁아 제3전시관을 건립키로 이미 49억원의 예산이 편성된 상태였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제3전시관 1층에 김동섭 한국운석광물연구소장이 기증한 공룡모형 30여점을 전시하고 2∼3층에 나일성천문관의 기증자료를 전시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워 나 전 시장님의 결제를 받았다”고 말했다.
전시관을 천문관으로 활용키로 한 시는 지난해 3월 나박사로부터 256점의 물품을 기증받기로 하고 기증식을 가졌다. 이에따라 지난해 7월부터 천문관 공사가 시작됐고 나박사의 까다로운(?) 요구사항이 제시됐다. 천문관내 연구실 제공과 석사급 2명의 연구진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비롯해 사단법인 설립후 운영권을 달라는 주장을 펼쳤다는 것. 결국 연구비 지원과 운영권 보장요구는 거부됐고 연구실 제공만 합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올 7월 청주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 천문학 기기와 기록에 관한 국제회의’를 열기로 했다. 국제회의의 준비요원으로 자신의 딸(32·천문학 전공석사)을 추천해 지난해 10월부터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에 근무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4일간의 국제행사 준비명목으로 9개월간 공무원 6급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고 특채한 것이다. 지난 7월 시예산 8000만원이 투입된 천문학 국제회의가 무난하게 치러졌고 오는 9월 청주천문관 개관이 순로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동양일보에 예천 ‘나일성천문관’ 전시품의 청주시 이전기증이 여의치않다는 기사가 실리면서 사태는 돌변했다. 나박사의 청주시 기증서명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예천군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만났고 군청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나박사와 청주시에 대한 비판글이 잇따랐다. 예천군의 반발이 거세지자 나박사는 ‘전시품 청주이전 불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주시에는 “예천군으로부터 실제적인 지원을 받은 것은 없다. 전시품에 대한 소유권은 내게 있다. 군과 협의해 상당부분의 전시품은 청주시로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양측에 전달된 내용이 어긋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주시측은 “당초 나일성천문관이 예천군의 예산지원을 받은 사실을 몰랐다. 알았다면 군과 사전협의했을 것이다. 어차피 개인소유 천문관이기 때문에 전시물품 반출여부는 나박사와 예천군이 협의할 일이다. 우리 시에 조건없이 256점을 기증키로 서약을 했기 때문에 개관전에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예천군측은 “청주시 직원들이 수차례에 걸쳐 나일성천문관을 방문하고도 예천군과의 관계를 몰랐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나일성천문관 일대에 ‘별의 동산’ 조성사업을 벌여 이미 10억원을 투자한 상태다. 아무런 보상대책도 없이 전시품을 그냥 옮겨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얘기다. 나박사도 이전하지 않겠다고 확약했고 며칠전 방문한 청주시 직원에게도 ‘군에 등록된 물품 가운데단 한점도 가져갈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번 소동은 원로학자의 판단착오로 보기에는 석연치않은 점이 많다. 우선 4억원이 넘는 시설지원을 받고 매달 운영경비까지 보조받아온 상황에서 예천군과 아무런 사전협의없이 청주시에 기증서약을 한 자체가 상식밖이다. 이어 청주시에 연구비 지원, 법인설립, 운영권 위임등의 무리한 요청을 한 것도 상식밖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소동이 불거진 이후 나박사의 말이 예천군에서 다르고 청주시에서 다르다는 사실이 비상식적이다. 이에대해 지역 인사들은 “상식을 빗나간 원로학자의 노욕(老慾)에 휘둘린 청주시가 ‘상식밖의’ 행정을 한 것이다. 49억원을 들여 천문관을 짓고, 8천만원을 들여 국제학술대회까지 열어주었는데 결국 전시품 하나 받지 못한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만약 기증약속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시시비비를 가려 청주시도 나박사에 대한 법적대응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천군, ‘나일성천문관’ 어떻게 건립됐나
태양천문관 추가건립, ‘별의 동산’ 조성에 10억 군비투자

나일성천문관은 지난 99년 6월 경북 예천군 감천면 덕율리에 세워졌다. 나박사가 사재를 털어 부지를 확보하고 건축까지 마쳤다.
평생 자신이 수집한 천문도와 천체관련 고문서, 세계 각국의 해시계 모형, 사진등의 자료를 전시하고 연구활동에 활용해온 관측장비 등을 일반에 공개한 민간사설 천문관이었다. 교단에서 은퇴한 노교수가 일생의 작업을 정리하고 소장품을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가 컸다. 이같은 뜻에따라 예천군은 진입도로와 주차장 조성공사에 3억여원을 지원했다. 또한 건립식을 기념한 국제 천문학술대회 개최에 때맞춰 나일성천문관의 유물복원비로 1억원의 예산을 보조하고 매월 운영비로 200만원씩을 지원했다. 예천군관계자는 “외국 학자들의 학술대회 초청, 체류비가 컸고 개관 이벤트 행사와 일부 유물의 복원작업에 예산지원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더구나 작년에는 나박사 제자가 참여한 태양천문관 건립사업에 예천군이 사업비의 50%를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은 2개의 천문관을 묶어 ‘별의 동산’으로 이름짓고 지역명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획했다. 올해는 4억5000만원의 예산을 편성, ‘별의 동산’ 내에 연수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예천군관계자는 “청주시가 나일성천문대 전시물을 기증받는다는 언론보도로 연수관 건립계획이 보류된 상태다. 주민들은 ‘예천군은 뭣하고 있는 것이냐’며 담당부서에 항의전화를 하고 군의회에는 경과보고를 하느라 제대로 업무를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재정자립도도 낮은 군지역에서 지금까지 1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고 올해에도 4억50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니 청주시로 전시품을 그냥 옮겨간다는 것이 군민들에게 받아들여 지겠는가? 청주시의 무책임한 행정 때문에 애꿎은 예천군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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