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의 힘은 ‘아줌마 부대’에서 나온다?

줄곧 무소속으로 출마해 4선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몽준(51·무소속) 의원은 2002년 월드컵 유치와
성공적 개최로 국민들에게 친숙한 인물이 됐다.
그는 지금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 유력한 후보로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다.
큰 키에 수려한 외모, 국내 최대재벌의 아들이자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학력과 정치적 감각을 가진 정몽준 의원에게 쏠리는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정몽준 의원은 ‘현대’가(家)의 왕자로,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에 있는 청운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지금도 가끔 테니스를 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종로구 계동에 있는 중앙중학교와 중앙고등학교를 다녔다. 중앙중학교 시절 생활기록부에 ‘장난이 심하다’고 기록될 정도로 개구쟁이였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반장을 했을 만큼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는 경기고등학교를 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모교인 중앙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중앙고등학교 시절 그는 공부 잘하고 운동 좋아하는 모범생으로 통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문과생 160명 가운데 10등 이내에 들어 무난히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정 의원이 다녀가면 약국이 호황?

정 의원은 고등학교 시절 특별활동으로 ‘농구반’을 선택했고, 축구부와도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그는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중앙고등학교 시절 축구부 감독이었던 은사를 찾기도 했다.
정 의원은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스포츠를 좋아했다. 대회에 나가서 입상한 경력도 있다. 25살 때이기는 하지만 1976년 전국체전 승마 장애물 비월 경기에서 은메달을 차지했으며, 전국종합스키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해 4등에 입상했다. 고등학교 때는 권투 도장에 다닐 정도로 여러 가지 스포츠를 두로 섭렵했다.
그는 특히 축구를 좋아한다.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게 발로 배를 차는 게 아니겠느냐며 축구를 인간의 본능적인 동작에 비유한 적도 있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현대중공업 주변에서 약국을 경영했던 약사가 전해준 이야기다.
정 의원이 울산 현대중공업 공장에 다녀 간 다음에는 어김없이 회사 중역들이 회사 앞 약국에 파스를 사러 온단다. 정몽준 의원이 울산이 내려오면 예외 없이 축구경기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고문인 정몽준 의원과 축구를 하다 보니 회사 중역들도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뛸 수밖에 없다. 너무 열심히 뛰어서 경기가 끝난 후에는 매번 며칠씩 파스를 붙이고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지만 말이다.
지난 81년 9월 IOC총회가 열리는 독일 바덴바덴.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88년 올림픽 개최지를 발표하기 위해서 마이크 앞에 섰다.
“서울(SEOUL)….”
순간 올림픽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정주영 88 서울올림픽 유치위원장은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불과 4개월 전에 88 서올올림픽 유치위원장에 뽑힌 정주영 회장은 기적을 일구어냈다. 불리한 조건에서 거둔 값진 승리였다.
부전자전이라고 했던가. 정몽준 의원은 아버지 정주영 회장과 비슷한 절차를 거쳐 2002년 월드컵 개최권을 따냈다. 정 의원은 1993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이듬해 1994년, 2002년 월드컵을 한국에 유치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국제축구연맹(FIFA)부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선거 결과는 1표 차의 신승.
그는 일본보다 늦게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뛰어들었지만 저력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이홍구(전 국무총리) 씨를 월드컵유치위원회 초대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반대를 했지만, 먼저 기자들을 모아놓고 ‘월드컵유치위원회 초대위원장 추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선 사고부터 치고 나가자는 계산이었다. 결국 이홍구씨는 월드컵유치위원회 초대위원장직을 맡았고, 96년 마침내 2002년 월드컵 개최권을 일본과 동시에 거머쥐게 됐다.

아줌마들 인기 독점이 4선 비결?

정몽준 의원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T 경영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현대중공업 상무로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82년 현대중공업 사장에 취임한다. 그의 나이 31살 때 일이다. 84년 실업테니스연맹 회장을 맡으면서 스포츠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30대 젊은 사장 정몽준은 현대중공업을 발판으로 88년 4월 26일, 13대 총선에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민정당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무소속으로 입후보했다. 기업인 ‘정몽준’이 정치인 ‘정몽준’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87년 노동자 대투쟁 바람을 타고 현대중공업 노조 김진국 수석부위원장이 출마했지만, 결국 54.4%의 지지율을 기록한 정몽준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 후 정몽준 의원은 지금까지 울산 동구 국회의원으로 내리 4차례 당선됐다. 그가 울산 동구에서 당선된 원동력은 ‘아줌마’들을 잘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정몽준 의원은 ‘문화센터’를 활용해 현대중공업 직원들 부인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해 매번 선거에서 승리했다.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 오너 시절 노조와 계속 갈등을 겪었지만 자신이 직접 나서는 일은 드물었다. 그로 인해 외형적으로는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정몽준 의원은 ‘진보’나 ‘보수’ 혹은 이념 문제에 대해 자유로운 편이다.
정 의원은 보수를 역사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쪽에 가깝고, 진보는 인간의 이성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해석한다. 재벌의 아들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대중들에게 보수와 진보를 유연하게 오갈 수 있다는 정치인이라는 인식을 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정몽준 의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정몽준 의원이 재벌답지 않게 성실하고, 겸손하다고 평가한다. 곽선희 소망교회 목사는 지난해 정몽준 의원 후원회에 참석해 “겸손하고 남을 설득할 줄 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가 어쩔 수 없는 ‘왕자’ 스타일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2002년 초 월드컵 조직위원장으로 민주당 거물급 정치인이 거론됐다. 그러나 정 의원은 이 거물급 정치인이 그 자리로 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자신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지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정 의원쪽에서 적극적으로 그 정치인이 오는 것을 막아 월드컵 조직위원장으로 가는 것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겸손 vs 왕자, 상반된 평가

그만큼 정 의원은 자신의 영역이 다른 사람에 의해 간섭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월드컵 경기 때문에 문화관광부에서 파견 나가 있던 공무원들 가운데도 정 의원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는 “모든 것을 정 의원 중심으로 사고하고 결정해 독재자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18일 몇 년만에 연 출판기념회 겸 후원회에서 미국 마틴루터 킹 목사의 연설에 나오는 ‘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다)’을 인용하며 2002년 대선을 향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대선을 5개월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그의 꿈은 현실로 실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 의원은 지난 6월 22일 한국이 스페인과 8강전에서 승부차기로 극적으로 승리하자 경기장을 한바퀴 돌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그때 경기장에 있는 붉은악마들은 ‘정몽준’을 연호하며 열광했다.
정 의원은 올 12월 대선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정몽준’을 부르며 연호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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