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에서 어렵사리 민주당 비례대표 1순위를 받고도 도의원이 되지 못한 내게 어떤 분이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격려의 말을 했다. “당을 잘못 타서 떨어졌지 뭐야, 이번 기회에 아예 당을 옮겨 버려요!” 걱정해주는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나는 마치 모욕당한 기분이어서 순간 얼굴색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 당은 당선을 위해 갈아타는 말이고 당을 갈아타고 당선한 사람은 승자이며 낙선자는 단지 패자일 뿐이다.
“언제는 침몰하는 신한국당에서 뒤도 안돌아보고 잘 나가는 자민련에 몸을 싣더니 이번에는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조잘대며 한나라당에 줄줄이 올라 타더군요”라고 빈정거려도 “당선만 돼봐라. 부끄러운건 떨어진 놈 몫이다”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참 주민 봉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변명하지만 어쩐지 진실이 와 닿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무슨 색으로 표현할까? 아마도 모든 색을 뒤섞은 검정색이라고 할 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때고 다른 색과 뒤섞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정당에는 색깔이 있다. 그것이 바로 당이 표방하는 정신이며 정강정책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당을 선택하는 개인은 자신의 신념과 정당이 표방하는 정책노선이 같은가 그렇지 아니한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당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들이 그런 고민을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유권자의 투표행태에도 문제는 있다. 대통령아들 비리에 대한 심판이라고는 하지만 지방자치 선거에서 일당에 마치 한풀이하듯 표를 다 몰아준 것은 그 결과가 지방정부에 대한 견제력 부재라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고 결국 유권자의 피해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념도 정책도 없이 이당 저당 옮겨 다니는 정치건달(?)을 양산하는데 기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6·13 지방선거에서 어떤 유권자가 “나는 아무 것도 안보고 ○○당이 미워서 ○○당에 다 찍어 버렸어!”라고 하는 말이 내 귀에는 “또 내 발등을 찍어 버렸어!”라고 하는 말로 들려왔다.
당장 충북도 의회에서 의장 선출을 둘러싸고 정당이 깊게 간여한 부자연스러운 일이 그러하다. 앞으로 정당이 도의회 권한인 자치단체장 부정감시 권력남용에 대한 견제에 대해서도 그 수위를 조절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정치는 책임을 동반한다. 유권자가 일정기간 권한을 부여한 것에 대한 실천의지와 능력에 대한 책임이다. 공당을 끼고 나온 정치인으로서 응당 당의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도 함께 나누고 자신의 실정은 더더욱 스스로의 책임으로 치부해야 하는 것이 도리인데, 과실은 모두 당의 책임으로 돌리고 자신은 살짝 빠져나와 다른 당으로 가버리는 행태는 양심적인가?
이런 정치인에게 권력욕 말고 무얼 기대할 수 있을까? 당을 옮기라는 말에 모욕감을 느낀 건 이런 사람들의 대열에 나도 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하는 심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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