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쓴 그레타 가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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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쓴 그레타 가르보
  • 임병무 고문
  • 승인 2005.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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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가르보(1905~1990)는 스웨덴 출신 미 영화배우로 세계 영화계에 금자탑을 세운 불멸의 스타다. 비록 오스카상을 받지 못한 불운의 스타였으나 ‘크리스티나 여왕’ ‘니노치카’ ‘춘희’ 등을 통해 수많은 영화팬의 심금을 울렸고 그 뇌살적인 미소는 아직도 영화의 전설로 남아 있다.

전 세계를 울리고 웃긴 여인,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만은 그녀의 진가가 인정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토속어인 ‘갈보’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왠지 모르게 심정적 평가절하를 당하였으며 심지어는 ‘갈보’의 어원이 그레타 가르보에서 나왔다는 생뚱맞은 이야기도 오랜 시간 나돈다.

한국의 ‘갈보’와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와는 전연 무관하다. 일설에는 6.25 당시 미군이 진주하면서 몸짱 여인을 지칭해 “가르보와 닮았다”라는 데서 ‘갈보’의 어원이 파생되었다고 하나 이는 전형적인 짜 맞추기 해석이다.

1914년에 발간된 일인 이마무라의 ‘조선 풍속집’에는 ‘갈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그레타 가르보와 연관이 있다면 그가 10살도 되기 전에 스타가 되어 이 말이 우리나라에 까지 퍼졌다는 말인가

오오꾸마 쇼지(大熊春峰)는 그의 저서 청주연혁지에서 ‘갈보’를 한자 식으로 번역하여 갈보(鞨甫)라고 소개하고 있다. 요리집조합에 대한 그의 기록을 보자 “전매(田每:요리집)는 처음에는 대흑정(大黑町)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후에 청수정(淸水町:약전골목)으로 이전하였다...한국인 예작부(鮮人藝酌婦:기생 또는 갈보)를 두고 요정을 영업한 태평관(太平館), 영어관(永與館)은 한국인(鮮人)이 경영하였고...” 이상의 기사에서 보면 ‘갈보’라는 명칭이 일제강점기에 보편적으로 쓰였던 것 같다.

조선시대에는 매음집단의 하나로 ‘갈보’이전에 ‘논다니’라는 말이 있다. ‘논다니’는 ‘놀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즉 ‘노는 계집’ ‘웃음과 몸을 파는 계집’으로 해석되며 한자 식으로는 유녀(遊女)라 했다.

논다니는 기녀(妓女)의 반열에 오르지 못해 뭇 남성을 상대로 술과 웃음, 그리고 몸을 팔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녀는 기생조합인 권번(券番) 출신이 아니면 행세를 못했고 1패 기생, 2패 기생, 3패 기생 등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었다.

성 접촉을 하지 않은 동기(童妓)는 ‘화초머리 기생’이라 하여 누가 머리를 얹어주느냐에 대해 선비, 한량간의 화제를 모았고 나이가 많아 현역에서 물러난 퇴기(退妓)는 ‘코 머리 기생’이라 하여 뒤치다꺼리나 하였다.

그러나 기녀(妓女)라고 하여 몸을 함부로 하지 않았으며 더구나 감동, 어우동, 황진이같은 인물은 유교사상으로 무장된 조선사회에서도 상류계층과 숱한 스캔들을 뿌렸으니 남녀 사이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필자가 80년 초반, 남한강이 흐르는 청풍 장날을 취재하고 있을 때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술집인 ‘언덕 집’에서 들은 얘기다. “인천에서 올라온 소금 뱃사공은 북진(北津)나루에 물건을 풀어놓고 몇날 며칠 여기서 술과 음식을 먹고 지냈는데 그때 ‘꽁지 갈보’가 시중을 들었지...” 꽁지 갈보는 머리를 쌍 갈래로 땋은, 꽁지 머리를 한 작부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갈보’는 왕년의 스타 그레타 가르보와 전연 연관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 언론인·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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