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 법난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선언한 법타스님

10.27 법난 대책위 상임대표를 맡은 법타스님은 청원군 낭성면이 고향이다. 청주중학교, 청주상고를 졸업했으며 고교 재학 시에는 한일 외교협정과 관련해 굴욕외교를 반대하는 각종 시위를 주동했다.
“일찌감치 출가를 결심한 터라 걸리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청주상고 재학시절 2,3학년 담임을 맡았던 이상록 전 오송분기역 대책위원장은 법타스님에 대해 “정의감이 강해 불의를 참지 못하는 올곧은 성품의 소유자였다”며 “청주시내 고교생들의 시위를 여러 차례 주도해 집에 피신시켜준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법타스님이 사회의식에 눈을 뜬 것은 고 윤벽산스님이 주지로 있던 청주시 수동 우암산 초입에 있는 대한불교수도원 고등부학생회에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됐다. 수도원 학생회는 그 역사성에서 전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50여년 전통의 원조 불교 학생회로 법타스님을 비롯해 연꽃마을 이사장인 각현스님, 현재 수도원 주지인 설곡스님 등을 배출했다.

법타스님은 “특별한 결사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학교의 리더들이 모여 거사를 논의했다”며 “수도원에서 자주 모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법타스님은 고교 졸업과 함께 속리산 법주사에서 추담스님을 계사로 출가했으며 2년 뒤 해인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한다.
법타스님의 행장(이력)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일관된 노력이다. 1992년 평화통일불교협의회를 만들어 회장에 취임한 뒤 수차례 북한을 넘나들며 통일운동에 앞장서 온 것이다.

특히 1997년에는 북한 황해북도 사리원시 정방산 성불사 인근에 ‘금강국수공장’을 만들어 북측의 식량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3.1절 남북공동행사, 6.15남북공동행사에서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2004년에는 만해대상을 받았다.

법타스님은 이밖에도 불교신문 부사장을 비롯해 대구불교방송 사장에 이어 대구불교방송 운영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불교언론에서 중책을 맡아 왔다.
법타스님을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는 ‘시원 시원한 성격에 막힘이 없이 화통하다’는 것이다.

스님은 10.27법난과 관련해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견해를 쏟아 놓았다. “정통성이 없는 신군부가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부패집단으로 매도하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세우려 했다”는 것이 스님의 주장이다. 그러나 “국민들로부터 수천억을 훔쳐가고도 29만원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속에서 모든 진실이 드러났다”며 “당시 종교와 교직 등을 싸잡아 부패집단으로 매도한 데서 국민들의 정신적 방황이 시작됐다”고 법난의 폐해를 지적했다.

법타스님은 또 “불교계의 피해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스스로 역사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으로 본다”며 “종교의 자정능력을 무시한 정통성 없는 정권의 장난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난 대책위는 앞으로 10.27법난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피해자 진상조사에 착수하는 한편, 피해자에 대한 보상, 전국 순회강연회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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