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문화의 밑바탕에는 동그라미(O)의 문화가 깔려있지만 상대적인 가위표(X)의 문화도 만만치 않다. 막연히 O는 긍정이고 X는 부정이라고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생활의 주변서 X자의 미학을 숱하게 발견한다. 기독교에서 X자는 안드레아의 십자가요 구원의 표식이다.

지금부터 2 만 년 전, 후기 구석기인들은 물 좋고 바람 좋은 단양 수양개에 모여 살았는데 그 문화는 공주 석장리로, 보성강 유역인 전남 화순 대전으로 이어지며 일본 큐슈로 건너갔다. 해안선과 강을 따라 남진하던 신석기 시대의 질그릇 문화도 충북에서 다시 숙성하며 경상도로, 전라도로 전파된다.

초기 철기시대 봉명동에서 출토된 마형대구(馬形帶駒)는 말 모양의 허리띠 버클이다. 이 마형대구는 방향을 틀어 경상도 쪽으로 전파된다. 마형대구는 청주~상주~김해를 거쳐 일본 혼슈 오카야마로 향한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만든 새 발자국무늬토기(조족문토기:鳥足文土器)는 경기도 일부~청주 신봉동~전북 나주~일본열도의 이동 루트를 형성한다. 고대의 유물전파는 청주 일대를 고리로 하여 소위 X축을 형성하며 남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물류의 이동에 효율적이었다고 추정해 보는 것이다.

석기문화와 철기문화, 그리고 질그릇 문화가 X자로 교차하는 청주는 고대로부터 문화의 십자로다. 삼국이 정립하기 이전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났고 삼국 정립 후에도 X축 문화 전파양상은 도처에서 나타난다.

청원군 북일면 비중리에 있는 일광삼존불은 하나의 광배(光背)에 세 분의 부처님을 모신 귀중한 유물이다. 관련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신라양식이다, 고구려 양식이다 논란이 많다. 충북은 삼국의 문화를 수용한 까닭에 어느 양식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신라와 고구려 양식이 결합되었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사항이다.

이 석불이 고구려 양식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석불 옷 주름 아랫부분에 X자 무늬가 연속적으로 새겨져 있다. 이 양식은 북위(北魏)의 양식이고 고구려가 여기에 영향을 받아 이같은 석불은 조성했던 것이다.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를 보면 X자 무늬가 수없이 교차한다. 서울 암사동 식은 빗살무늬가 가늘고 부산 동삼동 식은 굵은데 충북에서는 가는 무늬와 굵은 무늬가 함께 출토된다. 즉 금강의 문화는 한강과 낙동강, 섬진강 문화의 어떤 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송은 ‘오송바이오엑스포’를 통해서 알려지듯 그 심벌이 X축이다. 주중동 행사장에 서 있는 바이오 엑스포 심벌은 유전자 지도 DNA를 상징하는 것으로 X자로 꼬여있다. 충북의 미래는 바로 X자에서 해답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충북과 오송이 X자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다. X자는 슬며시 O자와 결합한다. 오송(五松)은 다섯 그루의 소나무라는 뜻이다. 누군가 소나무 다섯 그루(사방 네 그루, 가운데 한 그루)를 심어놓고 오송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한다. 충주 조동리서에는 강자갈로 안경처럼 이어 만든 청동기 시대의 화덕이 나왔다. 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시너지 효과다.

오송과 오창과학단지도 이 화덕 모양으로 둥글게 붙어있다. 이른바 O의 철학이다. 이처럼 청주, 오송 등 충북일대는 OX의 문화가 교차하며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충북의 미래는 여기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 언론인·향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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