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노영민·김전호·이욱씨의 ‘오송 프로젝트' 성공담

“지리적 장점과 도민들의 합심이 좋은 결과 불러” 이구동성

12년 동안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유치운동을 벌인 충북도민들은 마침내 승리했다. 따라서 충북은 이제 명실공히 국토의 중심임을 자처할 수 있게 됐다. 지난 6월 30일 확정된 오송분기역은 충북이 대한민국 교통의 요지이며 물류의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모든 도민들이 몸으로, 마음으로 유치운동을 했지만 특히 몇 사람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정도로 물, 불 가리지 않고 뛰었다. 이들을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었다.

분기역추진위원으로 불철주야 ‘고생’하며 전국 누벼
이상훈 호남고속철도오송분기역유치추진위 상임대표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인근의 연기·공주로 오고 우리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주장한 X축 논리가 통했다. 게다가 평가단이 오송에 실사를 왔을 때 신도시가 개발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본다. 또 호남고속철도오송분기역유치추진위가 분야별 학자 230명과 워크샵을 하면서 오송분기역의 타당성을 설명한 것, 대전과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으면서 ‘윈윈전략’으로 호흡을 맞춰 평가단을 구성할 때도 충북과 대전이 원하는 대로 15개 시·도 추천 인사 75명으로 확정지을 수 있었던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충북지역사회에서 대표적인 ‘마당발’로 통하는 이상훈 충북지역개발회장은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으로 오송역이 확정된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지난해 7월 호남고속철도오송분기역유치추진위 상임대표를 맡은 이래 약 1년 동안 오송분기역 유치를 위해 뛴 그는 금년 1월 국토연구원에서 전국 12명의 인사로 구성한 분기역추진위 위원으로 들어가면서 오로지 오송분기역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이 회장은 “오송분기역 유치는 충북도민 모두가 애쓴 결과다. 90년 시작된 경부고속철도 충북권유치운동이 93년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유치운동으로 이어졌는데 남궁윤, 권태성, 최병준씨가 하다가 이상록 회장 다음으로 내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그래서 경부고속철도 유치운동까지 치면 15년이고 오송분기역유치운동만 따지면 12년이다. 오송분기역이 확정되고 돌아가신 남궁윤, 최병준 회장 묘에 꽃다발을 바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그는 충남과 호남권 평가단이 평가를 포기하고 자리를 이탈한 6월 28일부터 최종 발표가 있던 30일까지 너무 긴장해 몸무게가 2kg이나 빠졌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분기역추진위에서 평가포기자들을 불참이 아닌 ‘기권’으로 규정하고, 나머지 55명의 평가단이 자신들의 평가를 인정해 달라는 건의문을 건교부와 분기역추진위에 전달한 것도 예정대로 최종 발표를 하게 한 요인이 됐다고 전했다. 전국체전과 장애인체전, 소년체전 등 전국단위 행사가 열릴 때마다 오송분기역의 타당성을 알리는 홍보물을 임원들에게 돌리고 전국 안 간데 없이 누비며 오송분기역을 주장한 이 회장은 이 일이 마무리되자 마자 바로 충주 기업도시 유치 행동대에 들어가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정부여당 설득 창구 맡아 신나게, 원없이 뛴
노영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국회 건교위 소속인 노영민 열린우리당 의원(청주 흥덕 을)은 오송역이 확정된 순간 기분이 어떠했느냐고 묻자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지역 국회의원들의 생사가 걸려 있다고 할 정도로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남들이 ‘쇼’라고 하든 말든 오송분기역 유치가 실패했으면 의원직을 사퇴하고 극렬투쟁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그는 “이원종 도지사, 이상훈 오송분기역유치추진위원장과 함께 핫라인을 만들고 인식을 공유했다. 지역여론이 어떻게 흘러가든, 비관론이 나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대처해온 것이 주효했다고 본다. 한마디로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인화(人和)가 모여 목적을 달성했다. 시기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이루려는 때를 만나 하늘이 도왔고, 오송이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데다 충북도민들이 힘을 합쳐 이룩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오송분기역을 놓쳤을 경우 선출직 인사들에게 미치는 타격은 엄청났을 것이다. 도지사와 정치권이 이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당시 지역여론이었다. 구체적으로 노의원을 비롯한 충북지역 의원들은 건교부, 청와대, 총리실, 동료의원들을 1주일에 10번 가량 만나 오송분기역에 대한 충북도민들의 염원과 정서를 전달하고 안되면 ‘뒷감당’이 어렵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범 정부여당은 평가단이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

노의원의 말이다. “모두들 충북 의원들이 이렇게 집요하게 달려드는 것 처음 보았다고 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뛰었다. 우리에게 우호적이었던 강동석 장관이 건교부장관직에서 물러나고 추병직 장관이 왔을 때는 바로 추장관을 만나 그동안 진행돼온 과정을 모두 설명했다. 그랬더니 추장관도 오송분기역의 타당성을 이해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위기가 10번 정도는 있었다. 그동안 어려웠던 것은 호남권의 민심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30일 발표 당일도 충남과 호남이라는 핵심적인 이해당사자가 빠진 상태에서 나머지 평가위원들이 평가한 것을 발표하지 않을까봐 전방위적으로 노력했다. 청와대, 총리실, 호남지역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결과를 발표하는 것에 동의해줬기 때문에 가능했지 국토연구원과 건교부에서는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었다.”

오송분기역을 유치 하면서 쌓인 ‘야사’를 언제 털어놓을 자리가 있을 것이라는 그는 지난 6일 충남과 호남권이 반발해 소집했던 건교위 상임위를 비공개 간담회로 바꾸는데도 일조했다. 호남권은 호남고속철도 조기착공, 충남은 행정도시를 건설하면서 충북과 협조해야 하는데 굳이 이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켜 서로 감정을 상할 일이 있느냐고 동료 의원들을 설득했다는 것이다.

학계전문가 400명에게 오송 ‘주입’시킨 일꾼
김전호 충북도 교통과장


김전호 충북도 교통과장은 지난 3월 15일 법무통계담당관에서 느닷없이 교통과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이 때 김과장에게 주어진 임무는 교통과 내 TF팀 7명을 이끌고 오송분기역을 유치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임무를 수행했다. 김과장이 공무원 신분인 관계로 항간에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었느냐고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목적달성을 위해 내뿜는 특유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혀를 내두른다.
“오송분기역이 확정되는 순간 정말 기뻤다. 77년 공무원에 발을 디딘 이래 약 30년 동안 이렇게 감격적인 순간은 없었다. 내가 이런 업무를 맡게 된 것도 행운이다. 28일 일부 평가단이 이탈한 뒤 호남과 충남쪽에서 법적인 하자 운운하면서 발표를 못하게 하면 우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단계별 대책을 내놓으려고까지 준비했다”는 그는 “발표 당일 이상훈 회장과 국토연구원에 가서 계획대로 결과 발표 안하면 이 사업 자체를 거부하겠다고 강하게 말했다. 만일 발표를 미루면 모든 사람이 결과를 의심하니까 평가점수를 만인이 보는 앞에서 공개해야 할 것도 적극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오송분기역을 유치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김 과장은 “16개 시·도에 걸쳐 평가단에 들어갈 만한 교수 등 학계 전문가 400명을 방문하여 자료를 주고 오송역의 타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이 인사들 중 많은 사람들이 평가단에 포함됐다. 이들은 오송에 대한 인상을 좋게 가졌고 인간적으로도 친해지게 됐다. 강원도의 어떤 교수는 멀리까지 찾아 왔다며 감격했고, 어떤 사람은 ‘충북 정말 끈질기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여기에 오송이 행정도시의 관문역이 되면서 지리적으로 매우 유리한 위치를 점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과 지리적 장점으로 오송역은 5개 평가항목에서 모두 1등 했다. 만일 이탈한 평가위원들이 모두 천안에 100점을 주고 오송에 40점을 주었어도 결과적으로는 오송이 최종 선정되는 위치에 있을 정도로 앞서가 기분이 좋았다는 그는 공을 이원종 도지사에게 돌렸다. 이지사가 실무진들이 일하는데 간섭하지 않고 100% 믿어줘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요일도 반납하고 전국을 누빈 김 과장은 이지사가 위기가 있을 때마다 찾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오송이 신도시와 맞물려 세계적인 도시가 될 것”이라며 “이제는 교통과 내 다른 업무를 챙겨야겠다”고 여유있게 말했다.

천안분기역 확정 음모 파헤쳐 ‘역사의 물줄기’ 돌린
이욱 청사모 기획위원장


지난 2003년 7월 4일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호남고속철도건설 연구용역을 맡은 교통개발연구원에서 최종 공청회를 열기로 돼있었다. 그러나 교통개발연구원 홈페이지에 공고 후 불과 3일만에 기습적으로 실시된 이 날 공청회는 분기역을 이미 천안으로 결정해 놓은 형식상의 행사였다. 그래서 연구용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진 서류를 들고 충북도민 350여명은 공청회가 열리는 과천시민회관으로 몰려가 회의실을 점거한 뒤 행사 자체를 무산시켰다. 이렇게 기민한 대처가 없었으면 호남고속철 분기역은 이 때 천안으로 결정됐을 것이다.

공청회 하루 전날, 도민들을 끌어 모으고 행동강령을 제시해 ‘역사의 물줄기를 돌린’ 주역은 청주청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청사모)이었다. 이욱 기획위원장(전 사무국장)의 말이다. “사전에 자료를 입수하고 이 연구용역이 잘못된 점 10여가지를 찾아냈다. 그리고 공청회 배부용과 건교부 납품용의 자료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공청회 자료에는 수요측면에서 대전-오송-천안 순, 비용측면에서 천안-오송-대전 순으로 유리하다고 돼있어 오송이 가장 좋은 조건에 있었다. 그러나 건교부 납품용에는 수요측면에서 대전이 유리하고 비용측면에서는 천안이 유리하다며 오송 자체가 빠져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짜맞추기식 통계자료와 엉터리 논리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공청회를 막지 못하면 오송분기역은 물론 신행정수도 유치마저 어렵다고 보고 9대의 버스가 과천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통계조작과 특정지역 지지 목적으로 만들어진 연구자료 원천무효’ ‘공청회 무기한 연기하고 재조사 의뢰’를 요구했고 결국 연구책임자의 공개 사과를 얻어냈다. 이 위원장은 이 때 ‘죽은 목숨을 살려놓았다’며 공청회가 시작되기 2시간 전부터 회의실을 점령한 채 점심도 도시락으로 때우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원종 지사는 청사모측에 기민하게 도민들을 소집하여 공청회를 저지시킨 것에 고마움을 표현했다는 후문이다.

청사모는 지난 2000년 창립하면서 충북을 전국 1시간대 교통중심도시로 만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따라서 오송분기역유치운동은 이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선택한 것이었다. 청사모 사무실에 가면 오송분기역유치운동과 관련한 각종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동안 오송분기역을 유치하기 위해 숱한 논리를 개발하고 현수막걸기운동, 정치권의 관심 유도에 발벗고 나선 이 위원장은 만일 오송이 안 될 경우 건교부와 교통개발원을 ‘호되게’ 야단칠 수 있는 문서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슬쩍 내비쳤다. 홈페이지 상에서 오송분기역 관련 사이트를 운영하며 많은 정보를 확산시킨 그는 발표 당일에도 도민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즉각 즉각 상황을 설명하는 민첩함을 발휘했다.

한편 이들 외에도 ‘미스터 오송’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인 홍재형 의원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상록 호남고속철도오송분기역유치추진위 초대 회장, 황희연·박병호 충북대 교수, 박종호 청주대 교수, 호남지역 버스투어에 나선 충북지구 JC 등이 오송분기역을 유치하는데 몸으로 뛴 사람들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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