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감시자…
‘베갯머리’내조형에서‘활동적’내조형으로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제1참모’ 역할을 수행한다. 단순한 배우자 이상이다.
5공화국이 들어서고 얼마 후 있었던 일이다. 전두환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가 육군사관학교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방송국 아나운서가 멘트를 처리하면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지금 귀빈석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앉아 계십니다.…” 방송국 간부가 이 방송을 보고 뒤에 미칠 화가 두려워 실수한 아나운서를 문책했다.
나중에 그 소문이 이순자 여사의 귀에까지 들어가 결국 아나운서는 제 자리로 돌아왔지만 이 사건은 그 후에도 방송국 안에서 널리 회자됐다. 그 만큼 대통령의 부인 ‘끗발’은 대단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여성정치연구소는 전국 1000여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영부인에 관한 전화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전체 응답자의 67.3%가 ‘육영수 여사를 좋아한다’고 응답했고, 응답자의 19.4%는 ‘좋아하는 영부인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 외에 프란체스카 여사(8.0%), 공덕귀 여사(2.0%), 손명순 여사(2.0%), 이순자 여사(1.0%) 등의 순서였다.
육영수 여사에 대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알려주는 조사결과였다.

대통령의 ‘제1참모’

아울러 이 조사에서는 여성 유권자의 54.7%가 ‘대통령 후보 부인을 보고 대통령을 선택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부인에 대한 평가 기준은 대통령과는 많이 달랐다. 설문조사 응답자들은 각 후보 부인들에 대해 ‘한국 맵시가 난다’ ‘육영수 여사를 닮았다’ ‘너무 나서는 유형이어서 싫다’는 등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 평가에 의해 호오(好惡)가 좌우되는 경향을 보였다. 아쉽게도 누가 영부인으로 사회활동을 잘 해내고, 대통령의 제1참모로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여부는 기준이 되지 않았다. 영부인을 그저 대통령 ‘안사람’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 영부인 역할도 함께 변화하고 있다. 관습적이고 공식적 역할수행에만 치중하던 과거와는 달리 적극적인 활동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이전과는 다른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장관들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에 영부인 이희호 여사도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장관들도 임명장 수여식에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형식을 취했다. 당시 고위층 공직자 부패에 배우자가 관련되는 사건들이 생기면서 배우자의 책임감을 고양시키고자 이러한 형식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쨌든 획기적인 사건임에는 틀림없었다.
우리 사회는 유교적 전통으로 대통령인 남편 뒤에서 조용히 내조하는 영부인을 선호해왔다. 자칫 잘못 나섰다가는 구설수에 오르기 쉽다. 이 때문에 대통령 부인에 대한 평가는 기준에 따라 엇갈린다. 대한민국 출발에서부터 국민의 정부까지 배출된 총 8명의 영부인들은 시대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대 대통령 부인들과 ‘안방정치’

초대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방인이었다. 그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외부 정보는 일절 차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인의 장막’을 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윤보선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전형적인 한국의 며느리였다. 일본 유학까지 마친 신여성이었지만 청와대에 있는 동안 그는 아주 조용한 영부인으로 지냈다. 물론 청와대에 머문 1년 8개월은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는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국민들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인물이다. 청와대 안주인이 되면서 ‘청와대의 지독한 야당’이 되겠다고 국민 앞에 공언하기도 했다. 이전과는 달리 공식적 역할과 함께 퍼스트레이디용 사업인 ‘양지회’ 결성 등 정책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한편 최규하 대통령 부인 홍기 여사는 혼란스러운 과도정부라는 성격 때문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249일이라는 짧은 임기로 인해 편치 않은 영부인 생활을 했다.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는 ‘연희동의 빨간 바지’로 일반인들에게 기억된다. 별명에서도 드러나듯이 다소 튀는 스타일이다. 개성 표현에 솔직했던 그는 한복에 금박이나 수를 놓은 화려한 스타일의 의상을 선호해 국민들로부터 사치스럽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육영사업 등 각종 ‘영부인용 사업’이 남편에게 정치적 부담을 줬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노태우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는 전임 이순자 여사 때문인지 온화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의도적으로 ‘그림자 내조’를 택했다. 그러나 퇴임 후 터진 비자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선천적으로 조용한 아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김영삼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는 전통적인 현모양처형이다. 원래 정치에 무관심했던 터이라 공식적이고 관례적인 역할만을 수행했다. 그는 여성 역할 변화가 두드러진 1990년대 시대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영부인직을 고수했다.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영부인 역할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50년 만의 정권교체 과정에서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아내 이전에 민주화 투쟁의 동지였다. 따라서 이희호 여사와 김대중 대통령과의 관계는 내조를 넘어선 동반자적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이희호 여사는 여성,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 문제를 직접 챙기고 있다.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신설과 여성부 승격, 정부의 여성 공무원 및 국회의 여성 정치인 증가 등은 영부인의 역할 확대와 관계가 깊다.

집안 단속은 ‘기본’

역대 영부인 8명의 모습은 시대 변화에 따라 영부인의 역할도 다양하게 변화해 왔음을 반증한다. ‘베갯머리’ 내조형에 머물렀던 영부인이 점차적으로 ‘활동적’인 내조형으로 바뀌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희호 여사 참석이 가능할까요. 참석이 어렵다면 영상 메시지라도 부탁드립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대기업은 2001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시상식 행사에 영부인 이희호 여사를 모셔오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그 만큼 영부인의 힘은 막강하다. 특히 이희호 여사가 대외활동에 적극적인 편이기 때문에 ‘영부인 모시기’에 더욱 공세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부인의 활발한 활동이 외부에 ‘꼭’ 좋게만 비춰지는 것은 아니다. 건강 문제로 김대중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했던 4월 이희호 여사의 일정이 대폭 늘어났다. 5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 어린이특별총회에는 정부 대표단 수석대표 자격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희호 여사의 활동 폭이 넓어지는 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희호 여사가 낳은 셋째아들 김홍걸씨가 ‘비리게이트’의 표적이 되고 있는 마당에 자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민들은 대통령 집안 문제가 터지면 책임을 ‘안사람’에게서 찾는다. 그게 일반적인 ‘국민정서’다. 대다수 국민들은 21세기에 걸맞은 활동적인 퍼스트레이디를 원하면서도, 영부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집안 단속’으로 간주한다. 때문에 보좌하는 처지에서는 집안 문제로 혹 영부인 이름이 언론에 거론될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만큼 마이너스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적극적 조언·감시자의 역할 필요

영부인은 대통령의 ‘복제자’다. 그 만큼 조심스럽고 요구가 많은 자리다. 따라서 영부인에게 시대 변화에 따라 다른 역할을 요구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통령학 전공자인 함성득 교수(고려대 행정학)는 바람직한 영부인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국정운영 전반에 관한 전문지식이나 경험 없이 영부인들의 역할만을 확장해서는 위험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될 경우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자리에서 오는 힘을 남용해 오히려 혼란과 부정부패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사회봉사 활동에 주력하면서 충실한 안방마님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국민의 소리를 바로 듣고 남편인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조언하는 감시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국가 비전과 정책 대안을 고민하는 영부인상이 21세기를 맞아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고 봅니다.” ◑

박근혜씨도 영부인? … 육 여사 사후 실질적인 역할 수행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사이의 장녀인 박근혜(현 한국미래연합 대표)씨는 어머니가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에 의해 저격당한 후 실질적인 영부인 역할을 수행했다. 박정희 대통령 딸이라는 후광도 있지만 그가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배경은 영부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쌓은 인지도에 기댄 측면이 있다. 어머니가 죽자 박근혜 의원은 프랑스 유학 도중 귀국해 당시 22세부터 5년 동안 아버지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박정희-카터 정상회담 만찬 등 수없이 많은 공식 행사에 참여했고, 외국 사절들을 접견했다.
1976년 일종의 퍼스트레이디용 사업인 ‘구국여성봉사단’을 만들어 충·효·예의 실천운동을 벌였지만 물의를 일으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밖에도 박근혜씨는 ‘새마음 봉사단’ 총재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특히 불우이웃과 노인을 위해 그가 운영한 ‘야간무료진료센터’는 호응이 좋았다.
실질적인 영부인이었던 박근혜씨는 20대 초반에 벌써 정치인의 길에 접어든 셈이다. 이러한 큰 경험이 지금 대중들에게 그를 대권후보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영부인 관련 공식업무
제2부속실서 관장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김대중 대통령 소개 메뉴 가운데 하나가 이희호 여사에게 할애돼 있다. 거기에는 이희호 여사의 약력과 주요활동 등이 소개돼 있다.
영부인과 관련된 공식적인 업무는 청와대 제2부속실에서 관장하고 있다. 경호 업무는 별도로 관리된다. 제2부속실이 대통령의 부속실에서 독립한 것은 3공화국 시절인 박정희 대통령 재임 중인 1972년 7월이었다. 당시 영부인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 실장의 직급은 ‘2갑’에 해당되었다. 이 직급은 전두환 대통령의 5공 시절 ‘2급’으로 변경되었다가 노태우 대통령의 6공화국 시절인 1991년 제2부속실 실장의 직급은 ‘부이사관(3급)’으로 바뀌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제1부속실 실장의 직급이 ‘1급 상당’으로 조정되었고 제2부속실의 실장은 ‘2급 상당’으로 변경됐다.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 제2부속실 실장 직급은 ‘1급’이다. 한국방송공사 출신인 김영희(64)씨가 집권 초기 제2부속실 실장을 맡았다가, 2000년부터 일간스포츠 편집부국장 출신인 성인숙(54)씨가 이 일을 맡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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