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내면 저산리 윤천석씨, 지서로 끌려가 총살당해

지난 6월 6일 CJB청주방송이 현충일 특집으로 마련한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실태 프로그램을 보고 청주에 거주하는 30대 여성이 인터넷 <충북인뉴스>로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의 시조부가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으로 끌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하소연이었다.

희생자는 청원군 강내면 저산리에 살던 윤천석씨(당시 36세)로 현재는 맏아들 윤기중씨(74)가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었다. 사망한 윤씨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은 손주 며느리인 정운학씨였다. 7남매의 자식을 두고 먼저 떠난 남편의 얼굴조차 잊은채 구순의 세월을 견뎌낸 시조모 김상희씨(94)의 인생이 너무나 억울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시조부님의 사진이 유일하게 한 장 남아있었다. 결혼후 30대 초반의 젊은 모습인데, 사진관에서 깔끔하게 손을보고 시할머님께 보여드렸더니, 누군지 알아보시지도 못하고 당신 아드님 젊을 때 사진으로 여기셨다. 55년의 세월속에 남편 얼굴조차 잊으셨다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미어졌다”

보도연맹원으로 학살당한 윤씨는 한국전쟁 발발직후 마을로 찾아온 경찰에 의해 강내면 지서 유치장으로 끌려갔다. 윤씨 이외에 저산리에서만 6명이 연행됐고 지서에는 40여명의 농부들이 비좁게 갇혀 있었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맏아들 기중씨는 왕복 30리가 넘는 길을 오가며 도시락 심부름을 해야만 했다.

“지서에서 가족면회하구 음식 전달하는 것은 내버려 뒀기 때문에 식구들이 번갈아가면서 한나절씩 다녀야 했다. 여름에 땀냄새가 진동을 하니까, 경찰들이 미호천으로 데려가서 목간도 시켰다고 한다. 그때 경찰에서 일부러 기회를 준 것인데, 눈치를 챈 사람은 몰래 도망쳐서 살아났다는 얘기도 있다. 한 열흘쯤 지나고 났더니 면에 사는 친척이 유치장있던 사람들을 모두 총살했다고 알려줘 작은아버지가 시신을 수습하러 가게 됐다”

학살현장은 강내면 탑연1리의 야트막한 뒷산이었고 군인들의 총격에 의해 참혹한 모습으로 숨져 있었다. 7남매의 맏이인 윤씨는 이후 학교도 포기한채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고 어머니 김씨도 온갖 행상을 하며 자식들을 돌봐야 했다. 취재진이 만난 두 모자는 지난 55년간의 세월의 무게 때문에 정작 남편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꿈조차 꾸지 못한 듯 보였다. 전쟁은 한 인간의 물리적 죽음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의 삶까지 박제시킬 수 있다는 비극을 보여주고 있었다. / 권혁상기자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