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끝난지 한달이 지나 가는데도 우리 사회는 아직 월드컵 감동의 긴 여운에서 빠져 나오고 싶지 않은 심리상태인 듯 하다. 다만 이번 월드컵에서도 예외없이 판정 시비가 제기됨으로써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건 유감이었다. 더구나 한국이 심판을 매수했다는 이탈리아의 음모설은 우리에게 모멸감을 넘어 분노감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심판의 눈을 피해 팔꿈치 가격 등 교묘하게 이뤄진 이탈리아 선수들의 더티플레이는 얼마나 치사했는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룰이 아주 단순한 축구경기에서 이처럼 오심과 편파판정 시비가 빈발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전문가들은 넓은 운동장을 단 3명의 심판이 공을 좇아 뛰어다니며 22명의 선수들을 일일이 ‘감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타 스포츠처럼 오심이나 편파판정 시비를 줄이기 위해 비디오를 통한 재심의나 심판 증원배치 등의 조치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지만, 아직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잇따라 터진 미국 기업들의 회계부정 스캔들이 복잡한 상념을 일으키고 있다. 스캔들 리스트에 오명을 올린 기업들은 엔론 월드컴 등 20개 기업이나 된다.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례를 포함하면 얼마나 더 많은 기업들이 연루돼 있을 것인지 미국조차 자신없는 눈치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이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것은 바로 기업들의 반칙을 막아야 할 회계법인들이 오히려 이를 묵인했다는 데에 있다. 심판(회계법인)이 선수(기업)의 반칙을 눈치채고도 눈을 감아버리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편파판정’을 한 것이다.
이로써 그동안 자본주의의 지존을 자처하며 오지랖넓게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 온갖 참견을 다 해온 미국은 왕창 체면을 구기게 됐다. 그래서 IMF이후 한국경제의 투명성 문제를 들먹이며 별별 훈수를 하던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가 기본부터 흔들리는 몰골을 보며 “너네들도 별 수 없으면서...”식 쌤통심리의 묘한 쾌감에 젖는 사람이 많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한풀이식 감정배설을 즐길 여유가 있는 것일까. 사건이 터지자 회계감시체계 강화 등 신속한 대응을 통해 위기에 빠진 미국식 자본주의에 구명정을 띄우고 나선 그들을 보면서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 시스템의 건강한 작동을 통해 민주주의 꽃을 개화시켜온 미국의 진면목을 다른 한편으로 목도하는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는? 수많은 기업은 물론이고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심판-사회 감시시스템-을 적절히 배치하는 작업에, 그리고 사회를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유리창’ 다는 일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 진다. 더구나 공동체의 건강을 담보하기 위한 이런 조치들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심판이 무능하거나 딴 마음을 갖고 있는 한, 그리고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유리창을 늘 깨끗하게 닦는 일에 마음이 없다면 이 모든 것들은 도로아미타불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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